웨스트 코스트의 쿨 재즈(Cool Jazz)를 대표하며 바리톤 색소폰의 명인이었던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은 1960년대 초 뉴욕의 재즈 클럽 빌리지 뱅가드(Village Vanguard)에서 연주하기 위해 6인조 섹스텟(sextet)을 구성했다. 여기에는 밸브 트롬본의 밥 브룩마이어, 트럼펫의 아트 페퍼, 기타의 짐 홀 등 웨스트 코스트 재즈를 대표하는 쟁쟁한 뮤지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제리 멀리건 섹스텟’이라 불린 콤보는 1962년 9월 뉴욕의 스튜디오에 모였는데, 이때 녹음한 음반 <Night Lights>(1963)는 부드럽고 잔잔한 선율의 발라드로 구성되어 연인들이 로맨틱한 데이트를 즐기거나 밤에 홀로 술을 마시며 듣는 대표적인 재즈 음반으로 평가된다.

제리 멀리건 <Night Lights>에 수록된 ‘Night Lights’

이 음반은 모두 여섯 곡의 부드러운 발라드로 구성되었는데, 작곡가로도 상당한 경력을 보유한 만큼 멀리건이 세 곡을 작곡하였다. 그의 오리지널 중 하나인 타이틀곡 ‘Night Lights’에는 피아노 소리가 먼저 들리는데, 주 악기가 바리톤 색소폰인 제리 멀리건이 피아노 연주 실력을 살려 직접 연주하였다. 두 번째 곡 ‘Morning of the Carnival’은 브라질의 보사노바 스타 루이스 봉파(Luiz Bonfa)의 오리지널이며, 다음 곡인 프랭크 시나트라의 히트곡 ‘In the Wee Small Hours of the Morning’와 쇼팽의 클래식 원곡 ‘Prelude in E Minor’ 역시 보사노바 리듬으로 재탄생하였다. 여섯 곡 중 세 곡이 브라질의 보사노바 스타일로 편곡되었고 쇼팽의 고향이 폴란드인 점을 고려하여, 어떤 평론가는 이 음반에 대해 “폴란드가 브라질을 만나다”라 한마디로 정의했다.

제리 멀리건 <Night Lights>에 수록한 루이스 봉파 오리지널 ‘Morning of the Carnival’

유튜브에 이 앨범의 전곡이 업로드되어 있는데, 조회 수가 580만 회에 이를 정도로 재즈 음반으로는 상당한 인기다. “크림과 버터의 앙상블 사운드”라는 이색적인 평가와 함께 제리 멀리간이 리더로서 출반한 60여 장의 음반 중 가장 높은 인기와 명성에도 불구하고, 재즈 전문가들의 평가는 의외로 냉담했다. 별 다섯 만점의 평가에서 셋 이상을 받은 적이 없었고, 펭귄 가이드의 제리 멀리건 디스코그라피에 올라오지도 않을 만큼 이 음반은 저평가되었다. 올뮤직(Allmusic)은 “주안점은 발라드였고, 창의력은 발휘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즐겁고 느긋하다”며 저평가에 대한 이유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제리 멀리건 <Night Lights>에 수록된 쇼팽의 ‘Prelude in E Minor’

제리 멀리건의 <Night Lights>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상업적으로 많이 판매된 음반 임에도 불구하고, 명반 리스트에는 오르지 못할 정도로 저평가된 앨범이다. 귀에 익은 멜로디에 부드럽고 절제된 연주를 들려주지만, 발라드 연주 음반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전문적인 평이 우세했다. 게다가 음반사는 재즈 전문 레이블이 아닌 네덜란드 국적의 필립스(Phillips)였다. 결과적으로 재즈와 보사노바의 크로스오버 음반이라는 공은 이듬해 발매된 스탄 게츠의 <Getz/Gilberto>(1964)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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