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잘 모르는 이들조차 영화 <식스 센스>(1999)가 반전 영화라는 것은 안다.  ‘<식스 센스> 이후 최고의 반전’이라는 수식어를 반전 영화의 홍보 문구로 빈번하게 사용할 만큼 <식스 센스>는 반전 영화의 상징이 되었다. <식스 센스>의 감독 나이트 샤말란은 관객과 평단의 환호와 야유를 함께 들어오며 영화를 만들어왔다. <레이디 인 더 워터>(2006), <해프닝>(2008), <라스트 에어벤더>(2010), <애프터 어스>(2013)를 연달아 연출하던 당시에는 혹평과 함께 나이트 샤말란이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게 힘들 거라고 전망하는 이들도 많았다. 

결과적으로 나이트 샤말란은 올해 <올드>(2021)로 한국 관객을 만나는 등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유령부터 미스터리 서클까지, 초현실적인 소재를 통해 인간의 감정에 대해 말하는 그의 방식은 여전하다. <식스 센스>로 나이트 샤말란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를 반전 영화감독으로 기억하겠지만, 그는 할리우드에서 자신만의 개성으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아티스트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현상을 인물들의 감정을 통해 표현하는 나이트 샤말란의 작품들을 살펴보자.

<싸인>(2002) 속 나이트 샤말란. 나이트 샤말란은 작은 배역으로라도 자신의 연출작 대부분에 출연했다, 이미지 출처 – imdb

 

<식스 센스>

아동 심리학자 ‘말콤’(브루스 윌리스)은 그동안의 업적으로 시에서 주는 상을 받고, 아내 ‘안나’(올리비아 윌라암스)와 자축을 한다. 말콤과 안나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중에, 말콤의 예전 환자 ‘빈센트 그레이’(도니 월버그)가 집에 침입해서 총을 들고 그들을 위협한다. 위험했던 순간을 지나 1년 뒤 말콤은 ‘콜’(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증상을 살피는 데 집중한다.

영화 연출을 20년 넘게 해온 나이트 샤말란이지만, 여전히 많은 관객이 그를 <식스 센스>(1999)의 감독으로 기억할 만큼 <식스 센스>의 임팩트는 강렬하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나이트 샤말란은 <식스 센스>로 영화계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한다. 액션 배우의 인상이 강했던 브루스 윌리스에게도 분기점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식스 센스>를 시작으로 이후에도 나이트 샤말란과 <언브레이커블>(2000), <글래스>(2018)로 호흡을 맞춘다.

앞으로도 반전 영화를 논할 때 <식스 센스>는 계속해서 언급될 거다. 그러나 단순히 반전만으로 기억되기에는, <식스 센스>는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이다.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를 보다 보면 초현실적인 소재나 반전 등도 일종의 맥거핀으로 느껴진다. 결국 그가 집중하는 건 인간의 감정으로, 그중에서도 특히 믿음에 대해 말할 때가 많다. <식스 센스>는 정답이 있는 것 같은 ‘믿음’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믿는 것과 믿지 못할 것들, 그 기준은 결국 자신에게 있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은 과연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인지, 내가 믿을 수 없는 것 중 사실 믿어야 하는 것이 있는 건지 의심하는 과정은 인간에게 필연적이다.

 

<언브레이커블>

럭비 선수 출신으로 경기장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은 열차 사고를 당한다. 승차하고 있던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사고에서, 데이빗은 상처 하나 없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데이빗은 피해자 합동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에 의문의 쪽지를 받고, 쪽지에 적힌 주소지에 가서 ‘엘리야’(사무엘 잭슨)를 만난다. 엘리야는 선천적으로 쉽게 뼈가 부러지는 체질로, 자신 같은 체질이 있다면 반대로 쉽게 다치지 않는 이도 있을 거라면서 그게 데이빗일 거라고 주장한다.

<언브레이커블>(2000)은 나이트 샤말란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든 히어로영화다. 마블과 DC 등 히어로영화가 대세가 된 지금보다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재평가받으며 자주 언급되고 있다. 처음 제작 당시부터 후속편을 염두하고 만들어진 영화로, 후에 <23 아이덴티티>(2016)과 <글래스>(2018)로 이어지는 세계관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언브레이커블>에는 화려한 액션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데이빗은 신체적으로 특출나지만, 나이트 샤말란은 그를 화려한 초인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나이트 샤말란은 인간의 타고난 능력보다 자신의 의지로 지향하는 방향성을 강조한다. 데이빗은 자신의 강한 신체를 뽐내기보다 가정과 직장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며 살고 있다. 누군가는 가진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내 삶을 잘 꾸려가는 것만큼 멋진 목표가 있을까.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는 일은 히어로가 되는 일보다도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싸인>

‘그래함 헤스’(멜 깁슨)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신부 생활을 그만두고, 동생 ‘메릴’(호아킨 피닉스), 아들 ‘모건’(로리 컬린), 딸 ‘보’(아비게일 브레슬린)와 함께 농장에서 조용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집 앞 옥수수 농장에 미스터리 서클이 발견되고,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와서 한 짓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뉴스를 통해 전 세계에 미스터리 서클이 발견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고, 의문의 존재에 대한 의심은 점점 커진다.

<싸인>(2002)은 멜 깁슨과 호아킨 피닉스가 형제를 연기하며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호아킨 피닉스는 <싸인>에 이어 <빌리지>(2004)까지 나이트 샤말란의 작품에 두 번 연속으로 출연한다. 히치콕 영화를 연상시키는 음악이 인상적인데, 음악을 맡은 제임스 뉴튼 하워드는 지금까지 130편이 넘는 영화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베테랑이다. 나이트 샤말란과는 <식스 센스>(1999)로 처음 만난 후로 <애프터 어스>(2013)까지 그의 모든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했다.

<싸인>은 전개될수록 미스터리 서클보다 인물들이 지닌 가치관에 집중하게 된다. 말로 설명 못할 현상들을 어떤 계시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여러 우연이 겹쳤을 뿐이라고 믿을 것인가. 아내를 잃고 신도 믿지 못하게 된 그래함 입장에서,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극적인 순간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내게 일어나는 불행들이 어떤 뜻이 있어 생기는 거라고 순응하는 건, 미스터리 서클을 이해하려는 것보다도 힘든 일이 아닐까?

 

<23 아이덴티티>

‘클레어’(헤일리 루 리차드슨)의 생일 파티에 절친한 ‘마르샤’(제시카 술라)와 늘 혼자 다니는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가 참석한다. 이들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케빈’(제임스 맥어보이)에게 납치당해 갇힌다. 케빈은 유일하게 ‘플레처’ 박사(베티 버클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데, 자신의 24번째 인격이 깨어나려는 것을 느낀다. 갇힌 세 사람은 탈출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케이시는 어린 시절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23 아이덴티티>(2016)는 나이트 샤말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한동안 침체기를 겪은 이후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공을 거둔 영화이고, <언브레이커블>(2000)의 세계관과 연결되는 작품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제임스 맥어보이와 안야 테일러 조이의 연기가 특히 돋보이는 작품으로, 두 사람은 다음 작품인 <글래스>(2018)에도 함께 출연한다.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는 작품마다 완성도의 편차는 있지만, 그 어떤 작품을 봐도 클라이막스에서 보여주는 감정적인 여운이 크다. <23 아이덴티티> 또한 마찬가지다. 케빈과 케이시는 묘하게 공통점을 가진 인물이다. 세상에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어릴 적 기억이 자신의 성장에도 크게 작용한다. 상처는 상처를 알아본다. 아픈 이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케빈의 여러 자아가 얼마나 다른 모습인지 살펴보는 것보다, 어떤 상처로 인해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더 마음이 쓰인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