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고, 섹시하고, 지적이고, 재밌고,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남성의 관음적 시선에서 자유로운 오롯한 여성 캐릭터는 찾기 무척 힘들다. 우리에겐 더 많은 강하고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필요하다. 어리숙하지만 꿈 많은 소녀들이 열광하고 흉내 낼 수 있는 ‘멋진 언니’의 여성상이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최근 주목한 캐릭터들을 소개한다. 누군가의 여성성 중 강인한 부분에 분명 불씨를 지필 만한 캐릭터들이다. 모두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테레사 멘도자, <남부의 여왕>

My name is Teresa Mendoza. I am from Mexico. I was born poor, not that that's bad, but take it from me, I've been poor and I've been rich. Rich is better. Believe me.

(내 이름은 테레사 멘도자. 고향은 멕시코.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가난하게 태어난 건 사실이지. 그리고 부자가 됐어. 돈이 많은 편이 나아. 진짜야.)

강렬한 도입부터 그를 열렬히 사랑하게 될 거란 걸 직감했다. 뜨거운 심장과 날카로운 판단력을 가진 보스 중의 보스 ‘테레사’. <나르코스> 여자 편이라는 말로는 <남부의 여왕>(Queen of the House) 테레사의 카리스마를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는 길거리 환전상에서 마약 카르텔 보스가 되기까지 수많은 역경을 겪는다. 뒤가 구린 동료부터 극악무도한 적의 우두머리까지 그가 상대해야 할 인물 군상도 다양하다. 그런데 그는 흔들림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를 마주하든 최선의 결과를 위해 계산하고 밀어붙인다. 머리에 총구가 겨눠진 상황에서도 테레사는 침착하게 생각하고, 계산한 대로 명령하고, 앞장서서 행동한다. 확신에 찬 눈빛, 그리고 추잡한 상대일지라도 용서할 줄 아는 대인배다운 면모에 보는 이의 마음도 같이 웅장해진다.

캐릭터의 카리스마를 한껏 녹여낸 이 작품은 5개 시즌으로 완결이지만 넷플릭스에는 현재 네 번째 시즌까지 올라와 있다. 보고 나면 왠지 터프하게 살고 싶어진 스스로에게 놀랄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베스 볼란드, <굿 걸스>

‘애 넷 딸린 주부가 뭘 하겠어.’라는 편견에 도전함과 동시에 오히려 이를 십분 활용하는, 테레사와는 또 다른 유형의 보스가 있다. 이름하여 ‘베스 볼란드’(Beth Boland). 그는 엄마로서의 책임감과 일탈의 짜릿함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우리 주변의 인물이다. 중고차 딜러인 남편의 사업 실패로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한 베스는 각자의 이유로 생활고에 지친 그의 여동생 ‘애니’, 절친 ‘루비’와 마트를 털기로 한다. 현생이 힘겨워 농담으로 던졌던 “마트나 털어볼까?”를 실행에 옮긴 셋은 갱단과 연루돼 ‘어둠의 세계’로 걷잡을 수없이 빠져든다. 1달러짜리 지폐를 가져다 10달러짜리로 위조하는 기술까지 터득해 돈 세탁을 하고, 알록달록 털실로 짠 마스크를 쓰고 상점을 턴다. 집 세탁실에서 돈 세탁을 하고, 갱단과 어설픈 거래를 해내는 이들은 범죄 조직이라기보다 콩트 트리오에 가까워 보고 있으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베스가 특별한 건 평범해서다. 전형적인 애 키우는 주부 베스는 주부라는 타이틀에 안주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베스의 “I'm a mom”이라는 대사가 거의 매 시즌마다 나온다.). 베스는 집 밖에선 생존을 위해 과감히 일탈을 저지르고, 집 안에선 남편과 아이들을 진두지휘하는 가모장이 된다. 그 평범함 속 강인함은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로도 다 담아낼 수 없는 특별한 힘이 있다. 현재 이러저러한 상황에 있지만 내가 살고 싶은 나로 살겠다는, 그 고유한 자기에 대한 의지가 베스를 엄마이자 하우스 와이프이기 전에 열정 넘치는 한 인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그런 열정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니 혹시나 무기력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굿걸스>(Good Girls) 정주행을 추천한다.

 

젠 하딩, <데드 투 미>

한 여자가 남편을 뺑소니 사고로 잃었다. 그리고 그 뺑소니범과 절친이 됐다. 데드 투 미는 앞의 두 문장 사이의 아이러니에서 출발한다. 물론 보다 보면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여인이 친구가 됐다는 사실이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된다. 오히려 이들의 우정을 응원하게 될 거다. <데드 투 미>(Dead to Me)의 주인공이자 남편을 뺑소니 사고로 잃은 ‘젠 하딩’은 복수심과 죄의식 그리고 외로움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이다. 겉으로 보기엔 거침없고 당당하지만 젠은 외롭고 혼란스럽다. 게다가 친구라 믿었던 ‘주디 헤일’이 남편을 죽인 범인이라니. 여간 꼬인 인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꼬임을 우정이 풀어준다.

젠과 주디의 관계를 설명하는 모든 단어 앞에 ‘진정한’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진정한 우정, 진정한 용서, 진정한 신뢰 그리고 진정한 위로. 강한 관계, 건강한 관계는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그 관계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했든 진정으로 함께하면 실로 ‘복잡한 세상도 편하게 살 수 있다’. 젠과 주디의 관계가 그렇다. 수많은 오해와 난처한 상황들 속에서도 그들은 끈질기게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시킨다. 삶에 고단함과 그것이 주는 외로움에 사무쳐 어느 날 갑자기 끈끈한 시스터후드(sisterhood)를 느끼고 싶다면 <데드 투 미>를 보자. 답답했다가 마음 졸였다가를 반복하는 스릴러물을 좋아한다면 더욱 추천한다.

 

케이트 포스터, <워킹맘 다이어리>

‘케이트’는 어렸을 적 꿈꾸던, (그가 결혼했다는 사실 정도만 빼면) 지금도 꿈꾸는 나의 30~40대 모습이다. 친구 같은 남편과 아들 한 명을 낳아 기르며 직장에선 성공적인 커리어를 척척 쌓는, 동시에 친구들과의 유쾌한 만남을 즐기는 커리어 우먼. 그래, 케이트는 정말이지 ‘유쾌하다’. PR 홍보 전문가답게 늘 거침없는 언변과 센스를 자랑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니 현실에 있다면 꼭 친구로 두고 싶은 캐릭터다.

<워킹맘 다이어리>(Workin' Moms)는 전반적으로 캐나다의 워킹맘들의 현실을 적나라하면서도 재치 있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한국과 비슷한 듯 다른 육아 문화를 비교하며 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여기 나오는 워킹맘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대부분 엉망진창이지만 일과 육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 감정들을 서로 공유하고 처리를 돕는다. 케이트의 진가는 거기서 드러난다. 위기를 맞닥뜨리면 네 문제, 내 문제 할 것 없이 일단 F-Word를 크게 외치고 재치 있게 극복해 낸다. 바쁜 직장일과 육아, 친구들의 드라마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지만 케이트는 항상 활기 있다. 그 에너지가 정말 매력적이다. 비관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근데 이제 유머를 곁들인 커리어 우먼의 우당탕탕 좌충우돌을 간접 체험하고 싶다면 <워킹맘 다이어리>가 제격이다.

 

네 편의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자잘한 로맨스는 소개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각각의 작품에는 물론 사랑하고, 이별하고, 바람 피우고, 지지고 볶는 등의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 드라마가 잘 녹아 있기도 하다. 이 역시 무척 흥미진진하니 놓치지 마시길.

 

Writer

읽고 씁니다. 밤낮으로 물구나무를 서고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사람이 아름다움을 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궁금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