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본다면 누구나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시 묻는다면 어떨까? “한 권의 책을 쓸 만큼 설레는 것이 있나요?” 2017년 <아무튼, 피트니스>를 출발점으로 '아무튼 시리즈'는 사소한 어떤 것이든 책 한 권의 주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함께 기획하고 돌아가며 출판하는 이 독특한 시리즈는 가수, 에디터, 피디, 작가, 마케터, 연구원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기록한 일상 속 소중한 기쁨을 소개한다. 주제를 뭉뚱그려 운동, 영화, 노래라고 하지 않고 달리기, 스릴러, 클래식같이 구체적으로 한정하기 때문에 시리즈마다 특징이 살아있는 에세이로 완성된다. 출판계에 불어닥친 불황에도 5년째 40여 권의 시리즈가 진행형으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관심사로 쌓는 내적 공감대

<아무튼> 시리즈 입문은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한 흥미로 하게 된다. 홀로 마음속에 간직했던 관심사를 한 권의 이야기로 접할 때 느끼는 반가움이 흔쾌히 정가 9,900원의 얇은 책을 구매하게 만든다. 일례로 ‘패션의 완성은 양말’이라는 말에 완전히 동의하거나 특별한 날 신는 양말이 따로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튼, 양말>을 보고 손이 안 갈 수 없을 것이다. 혹은 어렸을 적 문구점에서 살다시피 하고 문구점 사장님을 장래 희망으로 적었다면 <아무튼, 문구>의 표지에서 ‘문구인’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친구와 카페에서 두세 시간 함께 본 영화나 함께 다녀온 여행에 대한 수다를 떨 듯, 가볍게 풀어낸 타인의 일상이나 취미생활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시리즈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시리즈가 작가의 본업과 상관없는 주제라서 순수한 열정과 즐거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전문성을 어필하기보단 자연스러운 경험담의 포맷을 취해 쉽게 소화할 수 있는 것도 포인트이다. 골라 읽고 이입하는 동안 잊고 있던 독서의 즐거움까지 되찾아 준다.

<일놀놀일! 일하듯이 노는 문구덕후 김규림은 누구?>

 

영감과 호기심 선사하는 새로운 것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는데 시도하지 못한 것이나 실천하기 어려워 미뤄두었던 것이 있다면, 때론 먼저 도전해본 사람들의 경험담이 도움이 된다. <아무튼, 외국어>는 점수를 따기 위해 공부하는 영어와 동떨어진 책이다. 중국어를 금방 잘하게 되는 꿀팁같은 것도 없다. 대신 해외여행을 갔을 때 알아듣는 몇 단어에 희열을 느낀 순간과 좋아하는 영화를 자막 없이 보고 싶어 시작한 중국어가 사실 광둥어와 달랐다는 좌충우돌 경험담이 웃음을 선사한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외국어를 공부하는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사실 외국어는 3개월만 공부해봐도 괜찮은 취미라고 가능성을 열어주는 책이다. <아무튼, 달리기> 역시 달리고 있는 사람보다 달리고 싶은 사람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실연에 허덕이다 어느 날 밤 나가서 달리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허술한 시작도 괜찮다고 등을 밀어준다. 몇 분만 달려도 숨이 턱 끝까지 차서 구역질하던 출발선에서 외국에서 열리는 마라톤 완주기까지 3부에 걸친 짧은 에세이는 청춘 드라마 못지않게 반짝이는 성장이 담겨있다. 이러저러한 핑계로 미루던 것이 인생을 바꿀 조커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목격하면 뭐라도 시작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할지도 모른다.

<달리기, 하다보니 5,000km를 달려버렸다...?>, <아무튼, 달리기> 저자의 직장인-러너 병행기 영상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발레, 스윙처럼 특정 집단만의 향유물일 것 같은 분야도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적은 책도 있다. 마흔이 넘어서 ‘몸을 좀 움직여볼까?’ 할 때, 발레를 떠올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발레에 대한 고정관념을 하나씩 깨준 <아무튼, 발레>와 저자의 20대와 40대를 잇는 스윙 댄스를 담은 <아무튼, 스윙>은 다소 마이너한 취미처럼 보이는 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구이다. 막 입문한 시절 전문용어를 하나씩 외우고 기본동작을 수없이 반복한 글쓴이들의 기억은 낯선 장르의 문턱을 낮춰준다. 새로운 배움을 겁내는 사람들에게 <아무튼> 시리즈는 잘하는 사람도 초보 시절이 있고 못 해도 즐길 수 있다고 끊임없이 알려준다. 책을 읽고 바로 발레학원에 등록하거나 스윙클럽을 가입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요즘같이 알고리즘에 의해 편집된 정보만 접하거나 관심사에 대한 것만 찾아볼 수 있는 시대에 낯선 분야의 경험담을 읽는 것은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마신 기분을 준다.

이야기는 인간의 생존 기술이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조너선 갓셜은 이야기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다각도로 다루었는데 그것은 공감 능력이 되었다가, 서서히 형성되는 신념이 되었다가 복잡한 사회를 헤쳐나가는 기술이 된다. 흥미와 재미에서 비롯된 <아무튼> 시리즈는 항상 행복한 이야기만 전달하진 않는다. <아무튼, 비건>은 신념을 실천하기 어려운 한국의 환경을 지적하고, <아무튼, 딱따구리>는 딱따구리가 상징하는 건강한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실천해야만 하는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 이슈들은 더는 어려운 개념으로 남아있지 않는다. 구체적인 행동과 기록으로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지게 되니까 말이다. 지속되는 격리의 시절, 다양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한 권의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가 조금씩 변화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모든 이미지 © 예스24

 

Writer

넓고 깊게 이야기를 담고 싶은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