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현재 가장 주목하는 영화감독을 묻는다면 다양한 대답이 나오겠지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은 아마도 데이빗 로워리일 거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데뷔하자마자 주목받은 감독이 아니다. 장편 영화로 데뷔한 뒤에도 다른 감독의 작품에 편집, 촬영 스텝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확실한 건 데이빗 로워리는 계속해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며 전진 중인 감독이라는 거다. 

<에인트 뎀 바디스 세인츠>(2013)는 뻔할 수 있는 소재를 데이빗 로워리만의 분위기로 끌고 나가는 극이고, <고스트 스토리>(2017)는 영화의 예산과 완성도가 전혀 상관없다는 걸 다시 느끼게 할 만큼 큰 울림을 준다. <미스터 스마일>(2018)은 시대를 풍미한 배우에 대한 가장 근사한 헌사이며, 가장 최근작인 <그린 나이트>(2021)는 오랜 시간 회자되어 온 고전에 현대적인 해석을 덧붙인 작품이다. 가장 놀라운 건 이 작품들이 모두 한 감독의 작품이 맞나 싶을 만큼 다른 개성을 가졌다는 거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데이빗 로워리는 다른 이들이 딱히 응시하지 않는 지점을 영화로 만들고 있다는 거다.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감독이자,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는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작품을 살펴보자.

데이빗 로워리 감독(왼쪽)과 배우 루니 마라(가운데), 케이시 애플렉(오른쪽), 이미지 출처 – paste

 

<에인트 뎀 바디스 세인츠>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러스’(루니 마라)와 ‘밥’(케이시 애플렉). 러스는 경찰에게 총을 쏘고, 밥은 러스가 벌인 일도 자신이 했다고 하며 감옥에 들어간다. 러스와 밥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밥이 감옥에 간 뒤 러스는 딸을 출산한다. 밥은 러스에게 가기 위해 탈옥을 시도하고, 경찰인 ‘패트릭’(벤 포스터)은 러스의 곁을 지킨다.

<에인트 뎀 바디스 세인츠>(2013)는 보고 나면 제목의 뜻이 궁금해지는데,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기억나지 않는 노래의 가사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하며 따로 뜻은 없다고 밝혔다. 루니 마라와 케이시 애플렉이 데이빗 로워리 감독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이때의 좋았던 기억으로 인해 이들은 <고스트 스토리>(2017)에서 다시 함께하게 된다. 데이빗 로워리의 모든 작품에서 음악을 맡은 다니엘 하트의 음악이 돋보이는 영화로, 데이빗 로워리만의 감성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 다니엘 하트의 음악은 늘 혁혁한 공을 세운다.

<에인트 뎀 바디스 세인츠>의 러스와 밥은 마을 어른의 보살핌 속에 한집에서 자란다. 이들은 함께 살 번듯한 공간을 원했지만 헤어지게 된다. 데이빗 로워리의 작품은 인물만큼이나 공간을 응시하는 순간이 많다. 러스와 밥이 범죄를 저지르는 선택 대신 작은 집에서라도 함께 살아가기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러스가 딸과 머무는 집, 탈옥한 밥이 머무는 집, 두 곳은 아주 많이 다르지만 러스와 밥이 공존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만은 비슷하다. 안정감 없는 사랑은 기초공사가 부실한 공간을 바라보는 것처럼 위태롭게 느껴진다.

 

<고스트 스토리>

‘C’(케이시 애플렉)와 ‘M’(루니 마라)은 교외에 있는 집에서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C가 세상을 떠난다. C는 영안실에서 유령으로 깨어나 M이 홀로 남은 집으로 찾아온다. 그곳에서 C는 M을 바라보기도, 아무도 없는 빈집을 응시하기도 하며 머문다.

<고스트 스토리>(2017)는 데이빗 로워리 감독이 디즈니에서 제작비 6,500만 달러의 <피터와 드래곤>(2016)을 찍은 다음 연출한 작품으로, 제작비는 전작과 비교도 안 되게 적은 10만 달러다. <에인트 뎀 바디스 세인츠>(2013)에 출연했던 케이시 애플렉과 루니 마라와 다시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영화 초반 루니 마라의 롱테이크 장면과 내내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유령으로 등장한 케이시 애플렉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고스트 스토리>는 유령이 나타났을 때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 다루지 않고, 유령의 입장을 체험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1.33: 1의 화면비와 둥글게 처리된 프레임 모서리는 옛날 사진을 보는 듯한 인상과 함께 유령의 입장으로 영화를 보게 만든다. 너무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리면, 내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잊고 기다림만 남게 된다는 영화 속 대사가 마음에 남는다. 나는 누군가의 집이 되기를 바랐는가, 추억이기를 바랐는가? 집은 결국 철거되고, 추억은 결국 사라질 텐데. 이런 냉소 속에서도 유령으로라도 세상에 남고 싶다는 건 너무 희망적인 것일까? <고스트 스토리>는 유령, 집, 상실, 역사, 사랑 등 그 어떤 키워드를 중심으로 해석이 가능한, 분명 고정된 화면이지만 매 장면을 360도 여러 방면으로 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미스터 스마일>

‘포레스트 터커’(로버트 레드포드)는 은행을 터는 노인으로, 그를 목격한 이들은 하나 같이 그를 신사답고 행복해 보인다고 말한다. 웃으며 은행을 터는 포레스트 터커는 우연히 만난 ‘주얼’(씨시 스페이식)에게 호감을 느낀다. ‘존 헌트’(케이시 애플렉) 형사는 포레스트를 잡기 위해 그의 흔적을 추적한다.

수십번 탈옥에 성공하고 평생 은행을 털어온 포레스트 터커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영화적인 설정이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포레스트 터커의 삶이 영화 같다면, 포레스트 터커를 연기한 로버트 레드포드의 삶은 영화 그 자체이다. <내일을 향해 쏴라>(1969)를 통해 ‘선댄스 키드’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며 선댄스 영화제까지 만든 로버트 레드포드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 등 무수히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보통 사람들>(1980)부터 <흐르는 강물처럼>(1992) 등 여러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미스터 스마일>(2018)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은퇴작이라고 밝힌 작품이었는데(후에 발언을 후회한다고 밝히고 연기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가 왜 자신의 은퇴작이라고 했을지 이해가 될 만큼 로버트 레드포드에 대한 헌정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미스터 스마일>의 원제는 ‘The Old Man and the Gun’으로,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총을 들고 다니던 선댄스 키드가 노인이 되었을 때의 삶이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게 된다. 포레스트 터커는 은행을 터는 일이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 그 자체라고 밝혔다. 이 대사 속 ‘은행을 터는 일’을 ‘영화’로 바꾼다면, 그게 바로 로버트 레드포드의 삶이 아닐까. 데이빗 로워리 감독이 <미스터 스마일>을 통해 바친 로버트 레드포드에 대한 헌사는, 은행 강도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따뜻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린 나이트>

‘아서왕’(숀 해리스)의 조카 ‘가웨인’(데브 파텔)은 원탁의 기사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다. 아서왕은 가웨인에게 무용담을 들려달라고 말하지만, 가웨인에게는 그럴 만한 경험이 없다. 이때 갑작스럽게 나무 모양을 한 ‘녹색 기사’(랄프 이네슨)가 등장하고, 1년 뒤 자신에게 똑같이 돌려받는 것을 전제로 맞설 이를 찾는다. 가웨인은 호기롭게 녹색 기사의 목을 자르고, 시간은 금세 흘러서 가웨인은 녹색 기사를 찾아 떠난다.

<그린 나이트>(2021)는 데이빗 로워리 감독이 <고스트 스토리>(2017)의 제작사였던 A24와 다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원작은 중세 서사시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로, 데이빗 로워리의 해석을 더해서 각색했다. 원작인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는 기사를 무조건적으로 멋지고 낭만적으로 묘사하기보다,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고뇌하는 모습을 드러낸 작품이다. 가웨인이 녹색 기사의 제안에 응하고 여행을 떠나는 그 모든 동기는, 대부분 타인의 시선 때문이므로 수동적인 것에 가깝다. 딱히 내세울 만한 무용담이 없어서 녹색 기사의 제안을 받았고, 소문이 퍼져서 가웨인이 녹색 기사에게 1년 뒤 보복을 당하는 것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없기에 모험을 떠날 수밖에 없다.

많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기사의 모험담은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 가웨인에게는 시련의 연속이다. ‘명예’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과연 삶을 바칠 만큼 대단한 것일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명예를 가져다줄 모험담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 된다면 그때부터 내가 만드는 이야기의 주인은 과연 내가 맞을까? 남들이 뭐라든, 초라해 보여도 내가 선택한 이야기가 진짜 값진 이야기가 아닐까? <그린 나이트>는 ‘이야기’에 비유되는 삶에서, 삶의 주체가 누가 될 때 가치 있는지를 말하며, 아주 먼 옛날부터 내려오던 질문을 던진다. 네가 만들고 있는 이야기, 즉 삶의 주인은 네가 맞냐고.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