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음악의 단위는 몇만 ‘장’에서 몇만 ‘뷰’가 되었다. 다종다양한 뮤직비디오는 음악을 듣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고 썸네일이 좋아서 듣는 음악도 부지기수. 뮤직비디오 감독이 어떤 곡에 참여했는지도 척하면 척이다. 보기 좋은 음악들을 하나의 주제로 엮어 만든 뮤직비디오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한다.
범상치 않은 싱글 ‘Desert Eagle’로 돌아온 실리카겔의 크레딧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넷플릭스, 나이키와의 광고 작업부터 EXO, 새소년과의 뮤직비디오 작업까지. 현 시점 모든 영역을 망라하며 가장 활발히 작업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의 크루 ‘KEEPUSWEIRD (이하 K.U.W)’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한다.
실리카겔 ‘Desert Eagle’
오랜 공백 후 선보인 싱글 ‘Kyo181’을 발매한 지도 1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새로운 곡을 발표할 때마다 “마침내 돌아온”이라는 수식어가 매번 따라붙는 밴드 ‘실리카겔’(Silica Gel)이다. 그만큼 지난 2년 6개월 여의 공백이 크게 느껴졌다는, 이들이 너무나 그리웠다는 의미겠다. 신곡 ‘Desert Eagle’은 실리카겔과 유령들이 함께 사막을 횡단하는 가상의 스토리를 묘사한 곡으로, 모래 한 줌 없이도 광활한 사막을 연상하게 하는 뮤직비디오는 백윤석(The Docent) 감독이 함께 했다. 앞서 새소년의 싱글 ‘난춘’의 뮤직비디오를 작업하기도 했던 ‘The Docent’는 다큐멘터리(DOC)와 엔터테인먼트(ENT)를 함께 녹여낸 그 이름처럼, 혹은 전시장의 도슨트처럼 사람과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번 뮤직비디오 출연진에는 이동찬 배우가 ‘데저트 이글’로, 실리카겔 전 멤버가 섬광을 찾아 떠나는 도굴꾼으로 참여했다. 더불어 본작과 이전 ‘Kyo181’ 양측에서 모두 의미심장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가수연 역시 K.U.W.의 멤버다. 이어 가수연(Ga) 감독의 영상을 뒤이어 살펴보자.
Director | 백윤석 (The Docent)
Production Company | KEEPUSWEIRD
실리카겔 인스타그램
안다영 ‘원래 그런 사람’
밴드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의 프런트 퍼슨 ‘안다영’의 정규 1집 <ANTIHERO>. “나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해 다다른 도착지와 같은 이 앨범은, “인간은 입체적입니다.”라는 해답으로 현 사회를 살아가며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러 협업자가 함께한 앨범으로서 작업물의 의도가 음악가의 해석에 의해 변형되거나 단정 지어지는 것을 소망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완성되었다. 다시 말해 음악가는 앨범을 만들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 협업자들은 본인만의 해석으로 앨범의 의미를 표현해낸다는 뜻. 타이틀곡인 ‘원래 그런 사람’의 뮤직비디오 역시 영상 작업자 가수연만의 화법과 해석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영상일 테다. 뮤직비디오에는 ‘나가는 사람’, ‘머무는 사람’, ‘지키는 사람’, ‘정리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각 인물은 드래그퀸 아티스트 ‘모어’(모지민)를 비롯해 흥미로운 위치에서 각자의 활동을 이어가는 출연진들이 함께했다.
Director | Ga (가수연)
Production Company | KEEPUSWEIRD
안다영 인스타그램
WOOZE ‘Party Without Ya’
영국 브릭스턴 ‘머디 야드 컬렉티브’ 출신의 한국인 테오 스파크(Theo Spark)와 영국인 제이미 씨(Jamie She)로 구성된 밴드 ‘WOOZE’. 데뷔 싱글 ‘Hello Can You Go’를 시작으로 ‘Party Without Ya’ ‘I’ll Have She’s Having’ 등으로 이어지는 곡들의 뮤직비디오가 모두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흥미롭다. 을지로~종로 일대, 다방, 무도장을 주된 배경으로 한국의 과거를 보여주고 있다. 두 멤버가 한국에 놀러 올 때마다 노래방을 방문하며, “노래방에 우리 음악이 등록되면 좋겠다” 품었던 소망은 ‘Hello Can You Go’의 뮤직비디오 속 모티프가 되었고, 정누리 감독은 이들의 상상을 실현했다. 앞서 언급한 서울 배경의 다른 뮤직비디오 역시 모두 정누리 감독의 작업물로 단편영화, 커머셜 필름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감독의 감각이 두드러진다. ‘Party Without Ya’의 뮤직비디오는 <쥬만지>에서 영감을 받아 보드게임의 말처럼 서울 곳곳을 누비는 멤버들의 모습과 팀의 시그니처 컬러인 노란색, WOOZE의 초현실적인 세계를 그려내며 음악과 영상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
Director | 정누리 (COSMO)
Production Company | KEEPUSWEIRD
Wooze 인스타그램
새소년 ‘집에’
멤버 각자 재정비 후 돌아온 밴드 실리카겔과 새소년의 첫 신보엔 모두 Meltmirror 감독이 함께했다. 커머셜 필름과 뮤직비디오, 아이돌과 밴드 등 장르나 주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상 외에 다양한 전시에도 참여한다. isvn이라는 팀을 꾸려 게임을 만들고, 동반자들과 함께 ‘CAT%’라는 팀을 결성해 스플릿 앨범을 발표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실리카겔과는 정규 1집 타이틀곡 ‘9’의 작업을 시작으로, ‘Neo Soul’ ‘Kyo181’ 등 인연을 이어가며 뗄 수 없는 파트너가 되었고, 새소년과는 ‘집에’로 첫 작업을 함께 했다. ‘집에’는 어느 순간 세상에 길들여지고 있음을 깨닫고 그 길들임 후에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활시위를 당기는 사람’,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 ‘무거운 것을 버티는 사람’ 등 고민을 형상화한 듯한 이미지의 연속으로 명확한 스토리텔링을 배제하고 음악가의 고민을, 청자의 고민을, 각자의 이야기를 대입하게끔 한다.
Director | Meltmirror
Production Company | KEEPUSWEIRD
새소년 인스타그램
신세하 ‘1000 (feat. Uhm Jung Hwa)'
신세하(Xin Seha)의 정규앨범에 엄정화가 참여했다는 놀랍고 반가운 소식을 들은 게 벌써 2년 전이다. 그 사이 신세하는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의 신보가 궁금해지기 좋은 시기다. 2019년 발매한 신세하 정규 2집 <1000>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테마로, 확고한 태도로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목소리에 관해 이야기한다. 붉은색의 앨범 커버는 사진가이자 영상 제작자 ‘뇌’ (N’Ouir) 감독이 촬영했고,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색깔이 된 붉은색은 타이틀곡 <1000>의 뮤직비디오로도 이어졌다. 본인만의 빈티지한 감성을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담아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뇌는 신세하, 김사월 등 뮤지션들의 앨범 커버와 뮤직비디오, 포스터, 전시 등을 통해 여러 작업물을 선보여왔다. 뇌의 이름을 언제 발견해도 낯설지 않은 이유다. 이번 뮤직비디오에는 모델 겸 타투이스트 ‘푸새’(Pusae)를 비롯해,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단단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출연했다. 한 명 한 명에게 붉은빛을 쏘며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출연진들이었다고 하니,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 역시 궁금해진다.
Director | N’Ouir
Production Company | KEEPUSWEIRD
신세하 인스타그램
아티스트 크루 K.U.W 홈페이지
K.U.W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