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티스 리그>(2017)는 개봉과 함께 혹평에 시달린 작품이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2021)가 공개됐다. 극장판의 혹평을 호평으로 바꿀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기에, ‘차라리 감독판이 극장판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봉 당시에 감독의 의도가 온전히 담기지 못한 편집본의 영화로 개봉했다가, 후에 감독의 의도가 담긴 감독판으로 재평가 받는 영화가 적지 않다.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는 힘이 워낙 크다 보니,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감독들조차도 최종 편집권을 가지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르지오 레오네와 리들리 스콧 같은 거장들조차도 자신의 의도대로 편집하지 못한 영화를 세상에 공개했다가 후에 감독판으로 자신이 원하는 버전의 영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감독판으로 재평가를 받은 작품은 기본적으로 극장판에서 매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품고 있다. 몇몇 영화의 경우에는 반드시 감독판으로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만약에 보게 된다면 감독판을 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감독판으로 재평가 받은 작품들을 살펴보자.

* 이 글에서는 러닝타임 3시간 이상의 감독판 영화만 다뤘습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누들스’(로버트 드니로)에게는 ‘맥스’(제임스 우즈)를 비롯해서 유년기부터 성장할 때까지 늘 함께해온 친구들이 있다. 늘 함께할 것 같던 그들이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누들스는 자신이 자라온 도시를 떠나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도시로 돌아온 누들스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몰랐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는 <석양의 건맨>(1965), <석양의 무법자>(1966) 등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를 개척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유작이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혼신을 다해 만든 작품이었지만, 워너브라더스를 통해 공개된 버전은 시대순으로 전개되는 139분짜리 버전이었기에 감독의 의도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혹평 받으며 흥행에도 실패했다. 2012년에 칸 영화제에서 246분짜리 복원판이 공개되었고, 세르지오 레오네가 원했던 버전에 가장 가까운 영화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250분짜리 확장판 감상이 가능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미국 사회의 혼란을 세르지오 레오네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누들스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유년, 청년, 노년까지 교차편집을 통해서 보여주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계속 맴돌게 된다. 누들스와 친구들의 관계를 보면서 우정이 지속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그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사람과 성공이 우정보다 먼저인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우정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그저 나눌 시간만 있다면 시작할 수 있던 우정인데,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어른이 되어 유지하는 우정은 아슬아슬해 보인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클로즈업된 누들스의 표정을 보며, 그가 과연 어떤 장면을 꿈꾸고 있을지 상상해본다.

 

<킹덤 오브 헤븐>

십자군 전쟁이 계속되는 시기, 대장장이 ‘발리앙’(올랜도 블룸)은 아들과 아내를 잃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 이벨린의 영주인 ‘고프리’(리암 니슨)는 발리앙에게 사실 자신이 아버지임을 고백하고, 발리앙은 고프리를 따라 전쟁에 참전한다. 발리앙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이슬람 지도자 ‘살라딘’(가산 마소드)과 맞서면서도 자신의 신념에 따른 선택을 이어나간다.

리들리 스콧은 이미 <블레이드 러너>(1982)를 통해 감독판으로 재평가받은 적이 있는 감독으로, <킹덤 오브 헤븐>(2005) 또한 감독판 공개 이후로는 관객들 사이에서 ‘무조건 감독판으로 봐야 하는 영화’로 불리는 작품이 되었다. 극장판과 감독판의 러닝타임이 50분 가까이 차이 나기 때문에, 감독판을 보고 나면 왜 굳이 극장판에서 이런 장면들을 편집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극장판과 달리 감독판에서는 인물들이 하는 선택의 개연성을 더해줄 만한 장면이 좀 더 많이 제공되어서, 서사 전개가 매끄럽게 느껴진다.

<킹덤 오브 헤븐>은 신념, 종교 같은 가장 민감할 수 있는 단어를 과감하게 품고 전개되는 작품이다. 발리앙이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이 어떤 곳인지 묻자 ‘아무것도 아니야, 모든 것이기도 하고’라고 답하는 장면은 <킹덤 오브 헤븐>의 메시지를 가장 잘 함축해서 보여준다. 혼돈이 당연한 시대에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기 힘들고, 그러므로 세상에 휩쓸리거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해야만 한다. 십자군 전쟁이 아니어도 개개인의 삶은 들여다보면 각자의 사정으로 혼란하다. 그 안에서 하루하루를 어떤 생각으로 살아갈 것인가? <킹덤 오브 헤븐>의 배경은 아주 먼 곳의 머나먼 과거이지만, 매번 갈림길을 만날 수밖에 없는 삶이기에 마치 나의 일처럼 인물들의 선택을 바라보게 된다.

 

<왓치맨>

히어로의 활동을 금지하는 법이 생긴 이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활동 중인 히어로 ‘로어셰크’(잭키 얼 헤일리)는 과거에 함께 활약했던 히어로 ‘코미디언’(제프리 디 모건)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다른 히어로들을 만난다. 로어셰크에게 소식을 들은 ‘나이트 아울’(패트릭 윌슨)은 ‘오지맨디아스’(매튜 구드)를 만나고, 로어셰크는 ‘닥터 맨해튼’(빌리 크루덥)과 ‘실크 스펙터’(말린 애커맨)를 만난다. 그러나 이들이 품고 있는 생각은 모두 제각각이다.

잭 스나이더는 리들리 스콧에 이어서 감독판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감독이다. 올해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2021)가 감독판으로 공개된다고 했을 때 관객들이 기대한 이유는 <왓치맨>(2009) 때문이다. <왓치맨>은 원작 그래픽 노블의 팬들이 워낙 많기에 영화화에 대한 우려가 컸던 작품인데, 40분 가까이 분량이 추가된 감독판을 통해 극장판을 보고 실망한 팬들의 혹평을 호평으로 바꾼 영화다.

<왓치맨>은 히어로들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다. 같은 히어로지만 이들이 품고 있는 이상은 제각각이다. 오지맨디아스는 사업에 뛰어들고, 나이트 아울은 히어로가 아닌 일상의 자신일 때는 자신감이 떨어지고, 로어셰크는 히어로 활동을 하며 쓰고 다니는 가면이 자신의 진짜 얼굴이라고 믿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평화로운 시대는 히어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짜 평화가 도래해서 히어로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이들은 히어로가 아닌 자신을 인정하며 살 수 있을까? <왓치맨>의 가치는 히어로의 화려함 대신, 가면을 벗고 퇴장하는 히어로의 마음을 헤아리게 만드는 데 있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행성을 파괴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마더 박스’는 3개로 분리되어 보관되고 있다. ‘슈퍼맨’(헨리 카빌)이 세상을 떠나고, ‘스테픈울프’(키어런 하인즈)는 마더 박스를 찾아 지구를 습격한다. ‘배트맨’(벤 에플렉)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과 함께할 영웅을 찾고, ‘원더 우먼’(갤 가돗),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 ‘사이보그’(레이 피셔), ‘플래시’(에즈라 밀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저스티스 리그>(2017)가 개봉했을 때, 전 세계의 많은 관객이 잭 스나이더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잭 스나이더가 연출 도중 하차하면서 <어벤져스>(2012)와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을 감독한 조스 웨던이 <저스티스 리그>의 나머지 연출을 맡게 된다. 조스 웨던이 새롭게 연출을 맡으면서 각본이 수정되고 재촬영이 진행되었지만, <저스티스 리그>의 부족한 완성도는 잭 스나이더 때문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2021)가 공개되면서, 잭 스나이더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바뀌었다. 조스 웨던 버전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어두운 무드로 바뀌었고, 인물의 전사와 감정선을 심도 있게 다루었으며, 잭 스나이더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액션의 쾌감은 더해졌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의 공개 이후, 팬들은 잭 스나이더가 저스티스 리그 시리즈의 후속편을 맡기를 바라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확정되지 않았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는 수많은 히어로들이 등장하지만, 히어로들이 마음에 품은 건 늘 인간이다. 지구를 지킨다는 명분조차도 그 안은 인간으로 가득하다. 관객들이 히어로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히어로들이 결국 인간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이 아닐까?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기꺼이 지키기 위해 자신의 한 몸을 다 바치는 존재가 있다는 건, 스크린으로 봐도 무척이나 든든한 일이니까.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