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일본은 물론, 세계가 사랑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적 주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늘 그랬듯 ‘가족’, ‘부재’, 그리고 ‘아이들’ 이다. 아이들의 연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감독의 재량은 작품에서 어김없이 발휘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긴 그의 대표작을 소개한다.

 

1. <태풍이 지나가고>

After the Storm|2016|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출연 아베 히로시, 키키 키린, 마키 요코, 요시자와 타이요

<태풍이 지나가고>는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채 유명 작가를 꿈꾸는 사설탐정 료타(아베 히로시)가 태풍이 휘몰아친 밤, 헤어졌던 가족과 함께 예기치 못한 하룻밤을 보내며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과거에 가족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그와 비슷하게 변해가는 무능력한 아버지 료타. 그의 하나뿐인 아들 싱고(요시자와 타이요)는 한 달에 한 번 자신을 만나러 오는 아버지에게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 하고 천연덕스럽게 묻는 11살짜리 아이로,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슴에 상처를 안은 채 빠르게 세상을 배워간다. 아직 철들지 않은 아빠와 조금 더 나은 인생을 바라는 어른들을 통해 영화는 ‘꿈꾸던 어른’이 되지 못하고 ‘어쩌다 어른’이 된 우리에게 묵직한 여운과 감동을 전한다. 맑고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지닌 아역배우 요시자와 타이요는 고레에다 사단으로 불리는 아베 히로시, 키키 키린, 릴리 프랭키 같은 굵직한 일본의 유명 배우들 사이에서 주연 배우로서 훌륭한 연기 첫발을 내디뎠다.

<태풍이 지나가고>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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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I Wish|2011|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출연 마에다 코우키, 마에다 오시로, 오다기리 죠, 오츠카 네네, 키키 키린

고레에다 감독이 각본은 물론 편집까지 도맡은 작품으로, 기적을 바라는 아이들의 막연하지만 희망찬 여행을 유쾌하게 그렸다. 일본 전역의 공개 오디션을 통해 뽑힌 7명의 아이 중 단연 눈에 띈 인물은 통통한 볼과 귀여운 외모를 지닌 주인공 형제, 마에다 코키와 마에다 오시로. 오사카 지역에서 만담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 광고 등에서 콤비로 등장하는 재능 넘치는 형제로, 감독은 이들의 잠재능력에 완전히 매료되어 애초 소년과 소녀가 등장하는 시나리오에서 ‘부모님의 이혼 후 떨어져 사는 형제’로 영화의 설정까지 바꿨다. 또한, 아이들에게 미리 대본을 주지 않았으며 촬영 당일 장면에 대한 대사만 전해주고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도록 한 후 마치 실제 같은 상황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영화는 어린이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력을 바탕으로 어른의 감상이 아닌 아이들의 눈높이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제59회 산세바스찬 국제영화제’ 최우수 각본상 및 ‘제3회 타마 영화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으며, 주인공 형제는 ‘제26회 다카사키 영화제’에서 최우수 신인남우상을 나란히 받았다. 동생 마에다 오시로는 후에 감독의 작품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조연으로 깜짝 등장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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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무도 모른다>

Nobody Knows|2004|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출연 야기라 유야, 키타우라 아유, 키무라 히에이, 시미즈 모모코, 칸 하나에, 유

사라진 엄마와 아파트에 남겨진 네 남매. 영화 작업에 앞서 사회 비판적 시선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다수 제작했던 감독은, 1988년 도쿄에서 일어난 ‘스가모 어린이 방치 사건’을 소재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 초고만 약 15년간 다듬었다. 실화의 비극을 다루기보단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을 이어 나가는 아이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으며, 일반적인 극영화의 기승전결 구조를 버리고 아이들이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어떻게 사는지를 관찰 카메라에 가까운 시각으로 촬영했다. 공개 오디션에서 발탁된 아이들은 연기를 배운 아역배우가 아니었다. 하지만 촬영은 2002년 가을부터 다음 해 여름까지 1년간 이어졌고, 어린 배우들의 발육은 영화의 이야기와 맞물려 성장해 갔다. 감독은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역할 설명을 하지 않았고 이들이 대본에 얽매이기보다는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기를 원했다. 덕분에 장남 ‘아키라’ 역을 맡은 야기라 유야는 만 14살에 2004년 칸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칸 영화제의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결국 기억에 남은 것은 주인공 소년의 표정뿐이다"라고 극찬했다. 담담한 어조로 생명의 위대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작품은 ‘제47회 블루리본상’(2005) 작품상, 감독상 및 ‘제78회 키네마준보영화상’(2005) 작품상 등 다수의 수상을 차지했다.

<아무도 모른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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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 <태풍이 지나가고>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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