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항(1987~2017)

친구를 찍었다

렌항(航任, Ren Hang)은 2008년부터 사진을 찍었다.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그는 학업에 무료함을 느끼고 사진기를 집어 들었다. 맨 처음 무엇을 찍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전혀 기억은 못 하겠다고 밝혀왔지만, 사진의 대상이 친구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그는 그대로 행했다. 친구를 불러모아 집에서 찍거나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다 괜찮아 보이는 곳을 발견하면 멈춰서 사진을 찍었다. 미리 생각한 것보다 즉흥적으로 보고 느끼는 것에 더욱 기댔다.

렌항의 사진 속 여성 피사체가 대부분 빨간 립스틱을 칠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의도한 바는 아니다. 그조차도 도대체 왜 사진기 앞에 서는 여자친구들이 죄다 붉은 립스틱을 바르는지 몰랐다. 보는 사람은 그의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물고기며 새에 분명히 의도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역시나 의미를 둔 것은 아니다. 옷을 벗어 던지고 감이 오는 장소에서 맘에 드는 소품을 이용해 찍어댔을 뿐이다. 값싸고 조작이 단순한 사진기로 지금 눈앞에 있는 것에만 집중해 찍었다. 조명을 설치하거나 사진기의 기능을 조작하는 짧은 시간도 아깝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찍은 뒤 포토샵으로 보정하는 일은 일절 없었다.

피사체가 된 친구들 또한 어쩐지 예술가일 거라는 짐작도 여지없이 빗나간다. 그들은 그냥 학생이고, 평범한 회사원이다. 벌거벗은 채로 사진을 찍다가 배가 고프면 그대로 주저앉아 밥을 먹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 명성을 얻은 후에는 인터넷을 통해 지원하는 ‘모델’을 찍었지만, 그는 늘 정말 친구들과의 편한 작업을 가장 즐겁게 여겼다.

 

엄마도 찍었다

초창기에 그는 자신의 엄마도 찍었다. 역시나 즉흥적으로 엄마를 찍어야겠다고 번뜩 생각이 들었고, 그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렌항의 엄마는 “나도 벗어야 하니?”라고 응수했다. 렌항은 자신이 주로 누드 사진을 찍는 걸 부모님이 아는지 모르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전화 한 통으로 ‘안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엄마의 누드를 찍는 일에 바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브래지어 차림이면 괜찮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의 엄마는 어떤 옷이라도 입을 수도, 입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촬영 날 그의 아빠는 “내가 돼지머리를 구해올 수도 있는데...”라며 돼지 머리를 구해왔다. 어떨 때는 공작새를 싸게 살 수 있는 곳을 알아오기도 했다. 그는 언젠가 아빠도 찍어야겠다고 말했지만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벗은 몸을 찍었다

렌항은 무수히 많은 사진을 남겼다. 사진집도 수십 권 남겼다. 8할은 벗은 몸을 찍었다. 그는 스스로 말했다. 섹스를 즐기고 좋아한다고. 벗은 몸을 찍는 것은 금기에 도전하는 일 따위가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겹겹이 포개진 몸과 몸, 신체의 부분이 무늬처럼 겹쳐지고 서로를 지우거나 놀래키며 솟아나기도 한다. 그런 사진 속에 옷이라는 천 조각은 필요 없어 보인다. 그는 벗은 몸에서 보다 사실적인 느낌과 존재감을 찾았다. 여성이 여성을 보듬고 남성과 남성이 핥고 있는 사진도 많다. 그래서 ‘퀴어 사진가’라는 설명이 붙기도 하는데, 정작 그는 사진 속 피사체의 성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되는대로 어울리는 모습을 찍었다.

 

중국을 떠났다

그는 베를린에서 죽음을 맞았다. 지린성에서 태어나 베이징에서 활동한 이 젊은 중국인 사진가는 모국의 여러 상황을 피해 거처를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다. 삼엄한 공산주의 국가는 그의 작업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방해했다. 엄마를 찍었을 때 그들을 나쁜 모자로 낙인 찍어 협박과 욕을 해댔다. 국가와 국민은 그를 중국의 수치로 여겼다. 성기와 음모를 잔뜩 노출한 사진을 인쇄할 곳도 없었으며 전시를 열지도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 게재할 곳도 없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적은 없었지만, 항상 불안함 속에 행동의 제약을 받았다.

상업 사진을 찍으면서 피사체의 인종이 바뀌거나 옷이 더해졌다
타셴에서 나온 동명의 사진집(좌), 2014년 베싸(Éditions Bessard)에서 나온 사진집 <The Brightest Light Runs Too Fast>(우). 제목을 더듬어 읽게 된다

뉴욕에 가 비로소 자유롭게 작업하면서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 러시아, 이스라엘 등에서 큰 전시를 열고, 브랜드, 톱모델, 패션 매거진과 작업하며 타셴(TASCHEN)과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오랫동안 찍어온 건 중국의 얼굴이었다. 친구의 방에서 건물 옥상에서 물속에서 바위 위에서 사진기로 연신 찍은 건 벗은 몸 위에 덩그러니 놓인 주위의 얼굴이었다. 1987 - 2017.

이것은 렌항 사진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못 올리는 사진이 더 많다.

 

Writer

매거진 <DAZED & CONFUSED>, <NYLON> 피처 에디터를 거쳐 에어서울 항공 기내지 <YOUR SEOUL>을 만들고 있다. 이상한 만화, 영화, 음악을 좋아하고 가끔 사진을 찍는다. 윗옷을 벗은 여성들을 찍은 음반 겸 사진집 <75A>에 사진가로 참여했다.
박의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