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에서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이탈리아에서 서부극을 찍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탐탁치 않아 한다. 릭 달튼 캐릭터는 현재는 감독으로 유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연상시킨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이탈리아에서 찍은 서부극인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 입지를 다졌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에 대한 오마주를 영화에 녹여냈다. 

기존 패러다임을 뒤엎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는 건 어떤 분야에서든 쉽지 않은 일이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그것을 해낸 감독으로, 그가 만들어낸 스파게티 웨스턴은 후대의 많은 감독에게 영향을 주었다. 기존 서부극의 권선징악 대신 선과 악의 구분이 무의미한 혼란한 세계를 보여줬고, 이는 스파게티 웨스턴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되었다.

후대에 서부극을 만든 감독 중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향력 밖에 있는 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날 옛적,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만들고 개척해나간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을 살펴보자.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오른쪽)과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음악을 맡은 엔니오 모리코네(왼쪽), 이미지 출처 – ‘imdb

 

 

<황야의 무법자> (A Fistful Of Dollars)

이름 없는 남자(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살인이 난무하는 도시 ‘산 미구엘’에 도착한다. 백스터와 로호, 두 세력이 서로를 견제하는 가운데 이름 없는 남자는 두 세력을 오가며 정보를 주고 총잡이 일을 하며 돈을 번다. 이름 없는 남자는 로호 세력의 실세 ‘라몬’(지안 마리아 블론테)과 지내는 여인 ‘마리솔’(마리안느 코흐)의 억울한 사연을 알게 된 뒤로 자신만의 계획을 세운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데뷔작 <오드의 투기장>(1961) 이후 발표한 <황야의 무법자>(1964)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요짐보>(1961)의 줄거리를 그대로 차용해서 논란이 된 작품으로, <요짐보> 측이 <황야의 무법자> 측을 고소한 뒤에 승소하며, 크게 흥행한 <황야의 무법자>의 수익 일부를 받게 된다. <황야의 무법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세르지오 레오네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황야의 무법자> 트레일러

세르지오 레오네를 논하면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인물은 엔니오 모리꼬네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 중 데뷔작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서 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맡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화음악가인 엔니오 모리꼬네가 영화음악으로 명성을 알리기 시작한 것도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을 통해서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를 안 본 이는 있어도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들어봤을 확률이 높을 만큼, 지금까지도 자주 회자되고 있다.

 

<석양의 건맨> (For A Few Dollars More)

현상금 사냥꾼인 ‘더글러스 모티머’(리 밴 클리프) 앞에 갑자기 다른 현상금 사냥꾼 ‘몬코’(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타난다. 둘은 다음 타깃으로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인디오’(지안 마리아 볼론테)를 쫓는다. 처음에는 서로를 견제하던 둘은 인디오를 잡기 위해 잠시 손을 잡는다.

<석양의 건맨>(1965)은 혼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기에 절대적인 선과 악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그저 각자의 사정에 따라 상대에게 총을 겨눌 뿐이다. 총잡이들의 대립이 주가 되다 보니 캐릭터 중심의 극으로,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세르지오 레오네의 페르소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에 출연하며 배우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석양의 건맨> 트레일러

클린트 이스트우드 외에도 <석양의 건맨>과 <석양의 무법자> 두 편에 연달아 출연하는 리 밴 클리프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전작인 <황야의 무법자>에도 출연하고 후에 프란체스코 로시와 장 피에르 멜빌의 작품에 등장하는 지안 마리아 볼론테,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는 클라우스 킨스키가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남북전쟁으로 혼란한 미국, ‘엔젤 아이즈’(리 밴 클리프)는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러 왔다가 큰 금액의 돈주머니가 비밀장소에 묻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블론디’(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현상금이 걸려있는 ‘투코’(엘리 웰라치)를 붙잡아서 현상금을 받고, 교수형 직전에 구해주는 방식으로 함께 돈을 벌고 있다. 블론디는 투코의 현상금이 더 이상 오를 것 같지 않다며 그와의 동행을 중단하고, 투코는 앙심을 품고 블론디를 잡으러 간다. 그 과정에서 투코와 블론디는 돈주머니가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쫓는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작품 중 최고작을 물으면 <석양의 무법자>(1966)를 첫손에 꼽는 관객들이 많다. 영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김지운 감독이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과 함께 촬영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세 명의 캐릭터가 쫓고 쫓기는 게 영화의 큰 줄기로, 남북전쟁이 배경이지만 이에 대해 결코 노골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석양의 무법자> 트레일러 

<석양의 건맨>에서 선한 역할을 맡았던 리 반 클리프가 악역에 해당하는 ‘the bad’를 맡았고, <황야의 7인>(1960), <서부 개척사>(1962) 등 서부극에 출연했던 엘리 웰라치가 ‘the ugly’를 맡았다. ‘the good’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에 출연하지 않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세르지오 레오네의 합작은 <석양의 무법자>가 마지막이지만, 스파게티 웨스턴의 정점에 세르지오 레오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함께 있다는 것만은 변함이 없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하모키나를 연주하는 남자(찰스 브론슨)는 ‘프랭크’(헨리 폰다)를 쫓고 있다. 자신의 청혼을 받아준 새 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브렛 맥베인’(프랭크 울프)과 그의 자녀들은 프랭크의 손에 죽게 되고, 프랭크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마을에서 유명한 범죄자 ‘샤이엔’(제이슨 보라즈)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증거를 조작한다. ‘질 맥베인’(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죽은 가족을 발견하고,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남자와 샤이엔은 각자의 이유를 품고 프랭크를 쫓는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8)는 세르지오 레오네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인 <순응자>(1970), <마지막 황제>(1987)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서스페리아>(1977), <페노미나>(1985)의 다리오 아르젠토가 각본에 참여한 작품이다. 촬영을 맡은 토니노 델리 코리는 <마태복음>(1964), <캔터베리 이야기>(1972), <살로 소돔의 120일>(1975) 등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작품 대부분에서 촬영을 맡은 이로, 세르지오 레오네와는 <옛날 옛적 서부에서> 외에도 <석양의 무법자>(1966),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에서 호흡을 맞췄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 트레일러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세르지오 레오네가 미국에서 찍은 작품으로, 여전히 기존 서부극을 뒤트는 방식을 보여준다. 미국 서부극을 대표하는 존 포드의 영화를 비롯해서 선한 역할을 주로 맡아온 헨리 폰다가 악역으로 나오는 것 또한 관객들에게는 반전의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저 상황 따라 선 혹은 악이 될 뿐. 세르지오 레오네는 절대적으로 선한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언제든 악이 될 수 있는 이들이 선한 선택을 하는 걸 보여주고, 오히려 이러한 지점이 지금까지도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