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 가상 세계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긴 역사였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탄생한 이야기들이 책으로 쓰이고, 무대로 세워지고,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변신해왔다. 이제는 증강현실이나 AI 인공지능처럼 고차원적인 영역으로 확장되어 우리의 삶 속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인간이 착각할 만큼 현실 같은 세계속으로 도피시켜주는 3D 렌더링 아트는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공간을 만드는 최신 기술이다.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시뮬레이터,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필수 콘텐츠로 다뤄지고 있다. 디지털 아트에서 렌더링은 이미지에 들어가는 빛과 색, 모양과 질감과 같은 데이터를 합성하여 누구나 인지 가능한 상태로 변환하여 출력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실제 공간을 구현하는 일은 가장 현대적이고 최신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고대의 조각가와 같은 멀티태스킹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도 하다. 빛, 색, 모양, 질감뿐 아니라 형태와 입체감, 전경과 배경, 여백과 채움, 공간감, 초점, 모두를 고려해야 하기에 디자이너의 높은 눈썰미와 구현 능력, 연구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실존하지 않아 더 아름다워지는 것. 무(無)로 의미를 갖는 아이러니함이 3D 렌더링의 매력이라 할 만큼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0’에서부터 시작하는 창작의 분야에서 그 세계를 어느 각도에서나 볼 수 있는 것. 그러면서도 제작자의 의도가 담긴 프레이밍이 중요한 요소라는 점 또한 흥미롭다. 한곳에 머무르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동시에, 다른 곳으로 떠나는 상상도 포기할 수 없는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곳이 아닐까?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최고조인 현재의 상황 속에서 묘한 해방감을 주는 작업들을 살펴본다.

 

 

1. alexiscstudio

© Alexiscstudio

디자이너 알렉시스 크리스토둘루(Alexis Christodoulou)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3D아트 컬렉션을 제작해왔다. 건축에 초점을 둔 그의 세계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 구조물의 직선과 곡선이 비정형의 자연물들과 만나 서로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준다. 때로는 과감한 색을 사용하여 주요 오브제에 주목성을 부여하며 고요하고 완벽한 유토피아를 보여주고 있다.

2019년 남아프리카 케이프 타운에 개인 스튜디오를 열고 2021년에 Color C Design Studio라는 이름으로 유럽지사에 새로운 스튜디오를 만들기까지, 꾸준한 활동으로 현재 약 23만명의 팔로워와 고객들이 그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이 추가된 시리즈들을 연달아 공개하고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더욱 생동감 있는 상상 속 세계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alexiscstudio 인스타그램

 

 

2. Simon Kaempfer

© Simon Kaempfer

스위스 출신 디자이너 사이먼 캠프(Simon Kämpfer)는 독립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전까지 조명, 가구 및 가정 용품 관련 컬렉션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이후 제품, 가구 인테리어 디자인부터 광고 캠페인 및 브랜드 아트 디렉션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3D 렌더링 기반 아트워크를 제작하고 있다.

사이먼의 작품에는 그의 경력 답게 다양한 오브제가 등장한다. 의자, 소파, 침대, 풀장 등 휴식에 어울리는 가구들과 휴양지를 연상케 하는 풍경, 단순하고 정갈하면서도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와 닮은 자유로움이 묻어난다. 시리즈마다 컨셉에 충실하여 정해진 조건 안에서 다양하게 변화하는 장소들을 감상할 수 있다. 건축요소가 없는 오브제 시리즈에도 금색의 농구공, 푹신한 털 재질의 수류탄 등 현실에 없는 모양과 질감, 색을 사용한 흥미로운 시도들을 엿볼 수 있다.

Simon Kaempfer 인스타그램

 

 

3. Carlos Neda

© Carlos Neda

카를로스 네다(Carlos Neda)는 온두라스에서 활동하는 디지털 아티스트다. reisinger 스튜디오에서 아트디렉터를 겸하고 있다. 자연의 유기적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과감한 모양의 오브제들이 자주 등장한다. 언뜻 조각품처럼 보이는 중심 개체들은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하며 그의 개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빛의 깊이, 색으로 구현할 수 있는 창백한 마감, 다양한 모피의 재질 등 3D 렌더링 아트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는 그는 고전 화가들의 작품이나 개인적인 경험에서 느낀 감정, 동화 또는 꿈 속의 장면과 같이 다양한 곳에서 영감의 땔감을 모은다.

Carlos Neda 인스타그램

 

 

4. nicolemadethat

© nicolemadethat

니콜(Nicole)은 호주에서 활동하는 3D 디자이너 및 아티스트이다. 초현실적인 풍경에 대한 애정과 건축에서 얻는 영감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물, 암벽, 나무, 잔디, 들판과 같은 자연물이 자주 등장하며 이런 요소가 건축물과 어우러져 현대적으로 재해석 된 듯한 공중정원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특히나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등장하는 홀로그램 시리즈가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분홍색 배경과 반짝이는 홀로그램을 바탕으로 프레임 속에 주요 개체만 등장시켜 압도적이고 강렬한 시각적 세계를 완성했다. 우리 인간 모두가 비행을 꿈꾸며 무중력의 느낌을 상상하고 끝없이 펼쳐진 구름을 유영하는 상상을 그려내면서 지상의 억압적인 무게감을 하늘로 탈출시키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 시리즈는 보석, 심해, 암호 화폐 등 니콜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러 주제와 연결되어 다양한 버전으로 탄생했다.

nicolemadethat 인스타그램

 

 

Writer

그림으로 숨 쉬고 맛있는 음악을 찾아 먹는 디자이너입니다. 작품보다 액자, 메인보다 B컷, 본편보다는 메이킹 필름에 열광합니다. 환호 섞인 풍경을 좋아해 항상 공연장 마지막 열에 서며, 동경하는 것들에게서 받는 주체 못 할 무언가를 환기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