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 가득한 영상은 이제 우리에게 단순히 촌스러운 옛 자료가 아니다. ‘베이퍼 웨이브’, ‘글리치 아트’ 등 20~30년 전 그래픽들은 어느새 대중에게 ‘레트로’가 되었다. 레트로의 또 다른 이름은 '다시 돌아온 영광' 정도가 아닐까? 밈을 넘어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흐름은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대가 시간과 맞물려 다시 그리움을 만들었고 유튜브에서는 옛날 풍경을 복원한 리마스터링 영상들이 주목받고 있다. 화면에 담긴 이름 모를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은 겪어보지 않은 시절에 대한 묘한 노스탤지어를 일으킨다. 짧게는 몇십 년, 길게는 백여 년 전까지 기록되어 돌아갈 수 없지만 다시 볼 수 있는 리마스터링 채널들을 소개한다.

 

 

1. Denis Shiryaev

데니스 시리야에프(Denis Shiryaev)는 비디오를 고품질로 변환시켜주는 스타트업의 CEO이다. 영상의 품질을 높여주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원본 해상도의 최대 4배까지 높일 수 있는 업스케일링, 얼굴의 세부적인 부분들을 다듬는 안면 복원, 통상적인 색의 체계를 학습한 채색 기능, 인간의 눈에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의 초당 60프레임까지 늘려주는 인공지능 기술이 있다. 데니스는 소프트웨어 자체를 직접 개발하는 전문 개발자는 아니지만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활용하여 취미의 일환으로 많은 사람들과 결과물을 공유하고 있다.

<A Trip Through the Streets of Amsterdam>(1922)

위는 1922년 암스테르담의 풍경으로 사람들이 춤을 추고, 마차를 타고, 거리를 거닌다. 지금보다 훨씬 거대하고 생소하게 느껴졌을 카메라를 신기하게 보면서도 미소로 응시하는 사람들까지 9분 남짓한 시간동안 100년 전의 하루가 생생하게 우리에게 닿는다. 100년 후 누군가가 작은 화면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상상도 못했을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눈을 마주친다는 것은 굉장히 오묘한 경험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것 또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영상 속의 모든 색들은 명확히 말하면 실제 색과 같다고 할 수 없다. 인공지능이 수만개의 이미지 데이터를 수집하여 세계에 존재하는 실제 색의 조합을 훈련한 결과물일 뿐이다. 즉, 인간의 눈에 자연스러운 색의 조합 정도로 이해해야 하며 데이터의 대부분이 기계가 학습하고 추출한 작업이므로 역사적으로 완벽한 고증은 될 수 없다. 하지만 과거의 세상은 흑백이 아니었다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입증할 필요도 없는 사실을 우리가 종종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Denis Shiryaev 유튜브 채널

 

 

2. Rick88888888

<Beautiful Giethoorn in The Netherlands in 1921>

네덜란의 동화 같은 분위기로 유명한 마을 히트호른(Giethoorn)의 100년 전 모습이 담긴 영상이다. 운하의 나라 답게 여러 갈래의 물길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의도해서 만든 고요함과 아름다움처럼 완벽한 미장센을 보여준다.

이 채널의 영상의 대부분은 저작권이 소멸한 디지털 공유물들을 복원하고 있으며 대부분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기록들이다. 시청자들이 역사적 배경이 된 장소를 즐기고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운영을 시작했다는 Rick88888888은 현재까지도 200개에 달하는 리마스터링 영상을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다.

한편 고품질 영상으로 어떻게 복원하는지 이해를 돕는 영상도 공유하고 있다. 흑백에 색을 입히고 흔들림을 조정해주는 모션 안정화, 속도 보정, 대비와 밝기 조절, 선명도 향상 및 노이즈 감소, 먼지 및 얼룩제거까지 5개 정도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현재 우리의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그 정교함을 체감할 수 있다.

Rick88888888 유튜브 채널

 

 

3. guy jones

비틀즈와 롤링스톤스의 라이브, 존 F.케네디, 마틴루터킹, 간디의 목소리가 생생했던 시대. 베를린 장벽과 베트남 전쟁이 있던 한편,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착하고 트위기 스타일, 스파이더맨, 닥터 후, 스타트랙이 탄생한 시대.

<London Street Scenes>(1967)

영상 초반에 나오는 신문 속 'Swinging! a Charter for the teenagers'라는 헤드라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1960년대 영국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스윙잉 식스티즈(Swinging Sixties)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낙관주의와 쾌락주의를 추구하고 새로움과 현대적인 것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음악, 패션과 같은 예술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도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히피 운동이 확대되면서 세계 곳곳에서는 자유로운 복장으로 여성해방, 인종차별 반대, 반전운동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1967년 런던의 여름. 사회 변화의 물결을 타며 새로운 시도를 거부하지 않았던 격동의 시대는 약간의 채색 조절과 배경 소리를 입혀서 재탄생 되었다. 영상 속 높은 채도의 옷차림과 과감한 스타일링은 뜨겁게 성장했던 당대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guy jones 유튜브 채널

 

 

4. Michael Rogge

마이클로지(Michael Rogge)는 1929년 네덜란드 태생의 사진 작가 및 아마추어 영화 제작자이다. 은행업에 종사하며 20살에 홍콩으로 이주하여 6년을 지냈다. 이후에는 일본으로 거처를 옮겨 1960년까지 머무르며 홍콩과 일본에 관련한 영상들을 기록하였다. 그가 기록한 사진과 영상들은 동남아시아, 홍콩, 대만, 일본, 네덜란드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방송되기도 했으며 도쿄와 홍콩에서 사진전을 열고, 두 나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Fabulous Hong Kong in the seventies>

홍콩의 주권이 대영제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가기 전의 시절. 1970년대 후반의 리펄스 베이와 해안가, 도심 속의 사람들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마이클 로지의 영상은 특별한 인공 복원기술을 거치치 않고 다른 포맷으로 변환된 정도의 리마스터링이다. 때문에 노이즈가 빽빽한 클립들이지만 그 너머로 느껴지는 피사체에 대한 마이클 로지의 관심과 애정은 오히려 우리가 느끼는 가장 선명한 그리움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40만 명의 구독자가 그의 기록에 흥미와 존경을 동시에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젊은 시절부터 부지런히 촬영한 영상은 채널에만 1,200개가 업로드 되어 있으며 서울, 뉴욕, 발리, 쿠알라룸푸르, 베이징, 수단, 방콕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담은 사람들의 꾸며지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자료들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유해주었다는 것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Michael Rogge 유튜브 채널

 

 

5. Youtube Pedant

이제 조금 더 가까운 과거로 돌아가보자. 생동감 넘치는 뉴욕의 풍경 외에도 우연으로 인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얽혀 있는 영상이다. 'Techmoan'채널을 운영하는 매튜 테일러(Matthew Taylor)는 오래된 구형 기기부터 신형 기기까지 기록형 제품에 대한 리뷰를 하는 유튜버이다. 복고풍 기술에 관심이 높은 그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오디오 및 비디오 장비에 대한 제품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오래된 잡지나 신문, 카달로그를 뒤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며 기기들을 실제로 조작, 해부해보면서 심도 있는 리뷰를 만들고 있다.

<New York City in 1993 in HD>

그는 전과 같이 비디오테이프 브랜드 'D-Theater’의 제품을 리뷰하는 과정에서 당시 당사에서 판매를 위해 데모로 제작했던 1993년의 뉴욕 영상을 따로 추출했다. 아직 쌍둥이 빌딩이 건재하고 프렌즈 시즌 1도 시작되지 않았던 시절. 배경음악인 Kimiko Itoh의 ‘Autumn in New York’처럼 뉴욕의 가을을 실감케 하는 트렌치 코트와 스카프, 넓은 어깨의 정장을 걸친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혀가며 바쁘게 걸어간다. 그래피티가 점철된 벽들과 물이 쏟아지는 소화전, 센트럴파크의 전경과 브루클린 다리를 가로지르는 야경 등 어느 하나 뉴욕답지 않은 것이 없는 생생한 1990년대의 뉴욕이 기록되어 있다.

영상의 57초쯤에는 한 여성이 앞으로 걸어오고 머리를 묶은 한 남성이 옆을 스쳐 지나간다. 남성은 다시 뒤를 돌아 여성을 힐끗 쳐다보는데, 많은 군중 속에서 두사람만이 프레임 중심에 들어와 있어 마치 영화의 한 스틸 컷을 연상케 한다.

몇 년 후 영상 아래에는 “세상에! 저 포니테일 남자가 나야!”라는 댓글이 달렸다. 실제 영상 속의 남성이 25년 전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댓글의 남성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면 25년 후의 동일인물로 보이는 그의 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네티즌들은 이 흥미롭고도 신기한 광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이 영상은 더욱 유명해졌다.

Youtube Pedant 유튜브 채널

 

 

누군가는 기록을 했고, 누군가는 기술적 한계로 생긴 결함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리마스터링 채널은 우리에게 경험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그리움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절로 회귀하는 데에 마법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Writer

그림으로 숨 쉬고 맛있는 음악을 찾아 먹는 디자이너입니다. 작품보다 액자, 메인보다 B컷, 본편보다는 메이킹 필름에 열광합니다. 환호 섞인 풍경을 좋아해 항상 공연장 마지막 열에 서며, 동경하는 것들에게서 받는 주체 못 할 무언가를 환기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