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라> 중. 출처 작가 홈페이지

이일주의 <아무도 몰라(Nobody Knows)>(2014)는 2012년에서 2014년 사이 군 복무 기간 그린 그림과 짧은 만화를 모은 책이다. 그는 이 그림의 대부분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뒷면에 그렸다. 검은색의 펜이나 연필로 그린 그림들의 곁에는 일기처럼 날짜를 기재했다. 군 복무 기간의 일상과 감정들을 기록한 이 그림들 속에는 먼지, 풀, 바람, 불, 나무가 복잡하게 얽히고,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은 구멍이 뻥뻥 뚫린 것처럼 무표정한 듯, 겁먹은 듯 심사를 읽기 어려운 표정들이다. “군인으로서의 생활, 군을 둘러싼 자연환경, 군사 훈련, 그리고 심리적 불안, 부조리한 경험 등의 장면을 묘사한다”(출처 이일주 홈페이지)는 작가의 설명이 없어도 그의 그림은 매캐한 모래바람이나 비릿한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 폭력은 그의 주된 테마다. 낙서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강박적일 만큼 디테일한 묘사가 돋보이는 날카로운 정서는 우리 머릿속 어딘가에 눅진하고 검은 타르처럼 엉겨 붙은 감정을 쿡쿡 찌른다.

<아무도 몰라> 중. 출처 작가 홈페이지

한국은 징병제를 유지하는 특수한 국가다. 한국은 분단 국가고, 국가 방위는 법으로 규정된 국민의 의무다. 하지만 일상적 차원에서 전쟁으로 대표되는 집단폭력의 공포는 노골적으로 표면화되지 않는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기억이 멀어지면서 상명하복, 위계, 규율, 통제 등은 일상적 가치와 문화의 층위로 안착했고,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지적했듯 폭력의 참상은 타자화되고 시각적 스펙터클로 소비되면서 마치 우리와는 무관한 일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잔혹과 비참, 전쟁의 광기와 ‘안전한 사회의 나’ 사이에 적정한 수준의 거리가 확보되며 폭력에 동의하거나 동참한 당사자의 책임은 쉽게 지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 폭력이 우리 곁에 있다는 체감은 한국에서 그리 먼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20대 초반의 남성들은 체력 조건에 따라 각자에게 부과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진다. 짧은 머리와 유니폼은 그 자체로 개인의 정체성을 대신한다. 그들은 각자의 정해진 시간을 보내고 사회로 ‘복귀’한다. 군대는 집단폭력과 개인 사이의 안전한 거리 두기를 방해하는 경험이다. 재사회화 기관으로서 군대는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충실한 국민을 길러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와 폭력을 경험하게 한다. 어떤 쪽이건 군인으로서의 시기는 한 개인의 입대 이전과 이후의 삶을 분명하게 변화시킨다.

<아무도 몰라> 중. 출처 작가 홈페이지

이일주는 군대에서의 생활과 폭력의 경험을 자신이라는 구체적 개인의 감정적 소묘를 필터 삼아 보여준다. 검은 펜으로 촘촘하게 포개진 불길과 뭉게뭉게 피어올라 화면 밖까지 넘실거릴 듯한 공기, 위협적이고 답답하게 인물을 둘러싼 식물과 자연환경의 묘사는 불안과 분노, 고립 따위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이일주가 보여주는 현실은 사진적 현실과는 다르다. 사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객관성의 신화를 등에 업고 도리어 구체적인 경험들의 현실성을 증발시킨다. 말 그대로 온통 사진에 둘러싸인 21세기에 제복을 입은 군인들을 촬영한 현장 사진은 현장감과 감정이 휘발된 박제처럼 보이기 쉽다. 이일주는 그렇게 사진과 미디어 속에서 정형화되고 박제된 이미지 형식을 다시 그림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베트남전이나 오키나와를 떠올리게 하는 열대 식물의 이미지, 영어로 표기한 전투 용어는 미디어가 재현하는 전쟁 이미지와 전투 게임 속 풍경을 연상시킨다. 형식화된 불길과 포화의 도안적 표현, 빛과 폭발, 스파크의 만화적 어법은 컴퓨터 그래픽처럼 가볍고 납작하게 재현하는 대신, 작가의 몸과 시간이 투여된 거친 펜 선으로 그린다. 이들의 복잡한 형태가 과잉에 가까운 포화상태로 화면을 검게 채울 때 “아무도 몰라”라고 중얼거리는 한 군인-개인의 목소리는 보다 울림을 갖는다. 전쟁, 쿠데타, 최루탄 연기로 대변되는 공포와 폭력의 강렬한 이미지가 개인적인 삶과 감정의 풍경과 중첩되는 감각은 오히려 사진보다 현실적이다. 안전한 위치에서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시선이 아닌, 자기 고백적 태도가 획득할 수 있는 힘이다.

뒤이은 <2012clothing> 프로젝트 속 <War on the beach>를 비롯한 드로잉 작업에서 작가는 미디어적 이미지 변용의 범주를 더욱 넓힌 모습이다. 이국적 풍경의 해변과 싸움을 묘사한 작품에서 인물들은 더욱 도식화되었고, 배경과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아무도 몰라>의 자기 고백적, 감정적 서사 대신 훨씬 건조하게 폭력 그 자체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이제 그는 직접 폭력의 현장을 직조해내는데, 특히 <H. O. Zine> 1호(신도시, 2016)에는 혐오를 주제로 만들어 낸 드로잉을 담아냈다. 게임과 만화 같은 미디어에서 차용한 요소들을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한다. 스트리트 패션과 구닥다리 비디오 게임의 감성이 묻어나는 도시의 폐허, 고딕풍 갑옷과 투구를 쓰고 무기를 휘두르는 검사는 이제 폭력의 증언보다는 아예 폭력의 이미지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인물들은 칼로 신체를 자르고 쑤시며 공격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결투에 응하고, 먹잇감을 찾아 배회한다. 절단된 신체는 쓰레기처럼 버려져 널려있고 끔찍한 장면들 사이에는 만화적인 동작선, 생체와 금속이 혼합된 것 같은 정체불명의 기호와 조형물들이 그려졌다. 유서 깊은 죽음의 메타포인 해골들은 매 페이지를 장식하며 이 지옥도를 기이한 조롱과 무의미로 기린다. 책에 삽입한 두 점의 검은 그림들은 이 무절제의 아수라장에 무게를 싣는다. 마치 이 중 그 무엇도 농담이 아니라는 듯이. 두 그림 모두 도륙자의 손에 쥐어진 잘린 목을 그렸다. 그러나 첫 번째 작품에서 목을 쥔 손은 중세 검사의 장갑을 끼고 있고, 두 번째 작품에서는 맨손으로 죽은 머리를 거머쥐었다.

 

만약 이게 농담도 구경거리도 아니라면 작가가 만들어낸 이 무수한 폭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을 짚어가는 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작가의 그림체다. 처음 이일주의 그림을 본 사람이라면 그의 매끈하지 않은 톤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그의 선은 신경질적이고 강박적이며, 날카롭고 폭발적이다. 그의 그림은 악필의 고등학생이 일기장이나 교과서 따위에 서툴게 그린 낙서를 떠올리게 한다. 기술적 유려함과는 거리가 먼, 수학 문제를 풀던 연필이나 펜에 사춘기의 갈망이나 욕망, 분노와 슬픔 따위 주체할 수 없는 온갖 감정을 온 힘을 담아 힘껏 그린 시커먼 그림들, 저주나 욕과 함께 그려진 낙서들 말이다. 이일주의 그림이 기술적으로 훈련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낙서들의 통제되지 않은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그의 그림이, 우리가 손만 뻗으면 만날 수 있는 미려하게 손질된 그림들과는 너무나 다른 문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는 폭력을 다루는 데 특화된 톤을 가졌다. 불안하고 화난 듯한 그의 선이 섬세하게 조직된 구도 속에서 바쁘게 움직인다. 작가는 <H. O. Zine> 1권을 펴내며, “<H. O. Zine>은 혐오를 큰 주제로 하는 시리즈로 세상의 악에 대한 대체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직접 칼로 누군가를 찌르고 싶다는 기분을 느껴본” 적 있다면, 대신 자신의 그림을 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부디, 직접 찌르지는 말라는 말. 세상에는 나쁜 놈들이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르고, 우리는 때때로 그들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며, 그래서 복수의 칼날을 갈 때도 있지만, 찌르지는 마시라는 말. 꼭 내 마음속의 잔인함을 엿보기라도 한 듯, 나와 같은 일을 당해보기라도 했다는 듯 그는 묵묵히 피가 튀기는 장면들을 부지런히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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