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튼 켈리의 명반 <Kelly Blue>(1959) 표지

역대 최고의 명반으로 일컬어지는 <Kind of Blue>(1959) 녹음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피아니스트는 빌 에반스였다. 하지만 앨범에 수록된 다섯 곡 중 12박자 블루스 곡인 ‘Freddie Freeloader’만은 빌 에반스가 피아노에 앉을 수 없었다. 백인은 블루스의 정서와 음악을 이해할 수 없다며 마일스 데이비스가 ‘Freddie Freeloader’ 한 곡을 위해 다른 피아니스트를 불러들인 것이다. 그가 바로 당시 정상의 블루스 피아니스트로 인정받던 윈튼 켈리(Wynton Kelly)였다. 그는 먼저 10분가량의 긴 곡 ‘Freddie Freeloader’에 피아노 연주로 나서 마일스 데이비스(2:13), 존 콜트레인(4:30) 그리고 캐논볼 애덜리(6:24)을 선도했다. 1분 30초 길이의 솔로 연주는 악보로 남아 후학들의 연구와 학습 대상이 되었고, 존 헨드릭스가 붙인 가사에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이 그의 솔로 부분을 노래해 유명해지기도 했다.

‘Freddie Freeloader’에서 윈튼 켈리의 피아노 솔로 연주
Jon Hendricks & Friends의 ‘Freddie Freeloader’ 보컬 버전

윈튼 켈리의 멋진 솔로 피아노를 들을 수 있는 영상으로는, 이듬해인 1960년 3월 28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녹화한 TV 프로그램이 있다. 당시 폴 챔버스(베이스)와 지미 코브(드럼)로 구성한 윈튼 켈리 트리오(Wynton Kelly Trio)가 테너 색소폰의 쌍두마차 존 콜트레인과 스탄 게츠와 함께 발라드 메들리를 들려준다. 가장 먼저 윈튼 켈리가 ‘Autumn Leaves’의 멋진 즉흥연주를 들려주고, 그 다음에 존 콜트레인의 ‘What’s New’와 스탄 게츠의 ‘Moonlight in Vermont’로 이어진다. 이 영상은 그해 8월 독일 TV에서 방영되었다.

윈튼 켈리 트리오, 존 콜트레인, 스탄 게츠 ‘Ballad Medley’(1960)

윈튼 켈리는 동료들 사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재즈 피아니스트였지만, 밴드 리더보다 반주자나 사이드맨으로 더 알려졌다. R&B 밴드의 멤버로 뮤지션 생활을 시작하여, 여기저기 불려 다니다 톱 가수 다이나 워싱턴(Dinah Washington)의 피아노 반주자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이후에도 레스터 영, 디지 길레스피, 마일스 데이비스, 찰스 밍거스, 캐논볼 애덜리, 웨스 몽고메리 등 스타급 재즈 리더들에게 고용되어 활동하느라 정작 자신의 레코딩 커리어 관리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 스무 살에 첫 앨범 <Piano Interpretations>(1951)을 발매한 후 무려 7년 뒤에야 두 번째 앨범 <Piano>(1958)을 낼 정도였다.

앨범 <Kelly Blue>에 수록한 재즈 스탠더드 ‘Kelly Blue’

그의 세 번째 앨범 <Kelly Blue>(1959)은 그의 블루스 감성이 최고조에 이른 전성기 명반으로 꼽힌다. 이때부터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서 함께 나온 폴 챔버스(베이스)와 지미 코브(드럼)로 피아노 트리오 멤버가 구성되어 그의 레코딩 경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레코딩 아티스트로서 커리어는 오래 가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간질을 앓았던 그는, 가족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투어 여행 도중 토론토의 호텔 방에서 다시 급성 발작을 일으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이 때 그의 나이는 마흔 살에 불과했다.

웨스 몽고메리와 협업한 <Smokin’ at the Half Note>(1965) ‘Four on Six’. 이 앨범은 팻 매스니가 가장 위대한 재즈 기타 앨범으로 칭송했다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남긴 음반은 20여 장이 채 되지 않지만, 사이드맨으로 참가한 음반은 1백여 장에 이르며 재즈 스타들의 유명한 음반들로 즐비하다. 그만큼 동료들 간에 인정받은 연주 실력과 따뜻한 품성에 비해, 일반인에게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뮤지션이었다. 저명한 재즈 패밀리 출신인 윈튼 마살리스의 ‘윈튼’이 그를 따라서 지은 이름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작가 데이비드 로젠탈은 “켈리는 사이드맨의 전형을 탈피하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운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재즈 베이시스트 마커스 밀러, 래퍼 폭시 브라운(Foxy Brown), 피아니스트 랜디 웨스턴(Randy Weston)은 모두 그와 가족 관계에 있는 뮤지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