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런던데리 출생이지만 태어난 곳은 데리입니다. 그리고 에니스킬린에서 성장하였지만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이니스 캐슬린이죠. 그런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니 정말로 유별난 아이였지요. 그리고 고향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만 있다니 참으로 영특한 아이였고요.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을 웅크려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노래 ‘Sunrise’의 가사에서 나타나듯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의 정복과 저항의 오랜 역사에서 도시의 이름은 하나로 정해지지 못했습니다. 디바인 코미디(The Divine Comedy)의 실질적이고 유일한 구성원 닐 해넌(Neil Hannon)은 북아일랜드의 뮤지션입니다.

디바인 코미디의 음악은 오케스트라를 폭넓게 활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저음의 목소리로 씁쓸하고 지적인 서사를 늘어놓지만 드라마틱한 에너지와 재치 있는 유머, 달콤한 서정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록 밴드의 편성과 팝적인 곡 구성 위에 관현악을 풍부하게 쌓아 올려 전통 있는 양조장에서 만든 아이리시 위스키 같은 음악을 들려주는 독특한 스타일은 20년이 넘어도 변함이 없습니다. 앨범 <Foreverland>(2017)로 6년 만에 돌아온 디바인 코미디는 수록곡 ‘Catherine the Great’을 먼저 공개하였습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름 예카테리나 2세라고 하면 혹시라도 조금 더 친숙할까요. 행정 개혁과 내치, 문예 부흥에 큰 업적을 남겨 대제의 칭호를 받는 18세기 러시아의 여왕이지만, 닐 해넌은 그냥 이렇게 얘기합니다. “제가 요즘 BBC에서 하는 사극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요.”

The Divine Comedy ‘Catherine the Great’ 

1970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닐 해넌은 아버지로부터는 음악적 취향을, 어머니로부터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만, 신앙심은 물려받지 않은 모양입니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기는 했지만 그다지 신통치는 않았고,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는 했지만 그건 교회 집 아들내미기 때문이었죠. 고등학교에 다니며 친구들과 밴드를 하다가 1989년에 디바인 코미디라는 이름을 지을 당시의 닐 해넌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R.E.M.과 U2, Ride를 좋아하는 청년이었습니다. 첫 앨범 <Fanfare for the Comic Muse>(1990)는 그런 취향이 반영되어 만들어졌고, 그다지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하자 멤버들은 흩어지게 됩니다. 이후 닐 해넌은 다락방에 틀어박혀 작곡에 전념하고, 영화 <전망 좋은 방>(1985)과 원작자 E. M. 포스터의 여러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스타일을 마련하기 시작합니다. 얼터너티브와 인디 팝의 족쇄에서 벗어나 스콧 워커(Scott Walker)와 마이클 니만(Michael Nyman) 스타일의 오케스트레이션을 거리낌 없이 추구하게 된 것이죠. 머리를 짧게 자르고,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모습으로 앨범 <Liberation>(1993)과 <Promenade>(1994)를 내며 꾸준히 자기 세계를 구축한 디바인 코미디는 <Casanova>(1996)에 수록한 ‘Something for the Weekend’가 크게 히트하면서 성공 궤도에 오르게 됩니다.

The Divine Comedy ‘Something for the Weekend’ Live 

디바인 코미디의 노래에는 문학과 관련된 것들이 많습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Bernice Bobs Her Hair’, 안톤 체호프의 희곡을 가져온 ‘Three Sisters’,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를 모아 만든 ‘Lucy’도 그렇지만, ‘Booklovers’는 아예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처럼 작가들의 이름을 줄줄이 읊는 노래죠.(세어 봤는데, 73+2명입니다.) 그리고 마치 단편 소설처럼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들도 여럿 있습니다. ‘Something for the Weekend’의 가사는 주말에 재미를 좀 보려고 하는 남자의 욕망과 여자의 술수가 줄다리기하듯 묘한 긴장감을 이루다가 말 그대로 충격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이야기를 대화와 묘사로 표현한 것이고, ‘The Frog Princess’의 가사는 “당신은 날 정말로 사랑하지는 않죠. 하지만 괜찮아요.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니까”라는 말을 들은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The Divine Comedy ‘The Frog Princess’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노래도 있습니다. 앨범 <Promenade>에 수록한 ‘When the Lights Go Out All Over Europe’은 프랑스 영화에 대한 닐 해넌의 애정을 아낌없이 표현한 작품입니다. “온 유럽의 불빛이 모두 꺼지면 나는 옛 할리우드를 머릿속에서 지우게 돼. 프랑스 여배우들을 보면 기분이 아주 좋아지는데 도리스 데이는 절대로 딱 그렇게 되지는 않거든.” 이 노래의 중간에 나오는 독백은 영화 <네 멋대로 해라>(1960)에 나오는 진 시버그의 목소리를 샘플링한 것입니다. 또한 <Fin de Siècle>(1998) 앨범에 수록한 ‘The Certainty of Chance’는 영화 <달콤한 인생>(1960)에 나오는 대사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하지요. “우리는 열정이라든가, 그런 감정에서 멀어져야 하는 거야. 정지된 영상처럼, 한 폭의 그림처럼, 마법에 걸린 상태로 말이지. 우리가 시간에서 비껴서서 서로를 사랑하면 좋을 텐데. 따로 떨어져서, 그렇게.”

The Divine Comedy ‘The Certainty of Chance’ Live 

<A Short Album About Love>(1997)는 사랑에 대한 노래 일곱 곡을 모아 만든 미니 앨범입니다. ‘Everybody Knows (Except You)’에서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건 모두가 알아요, 당신만 빼고”라며 눈물 나게 우스운 짝사랑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Regeneration>(2001) 앨범에 수록한 ‘Perfect Lovesong’은 “당신의 사랑을 내게 주세요. 그러면 나는 완벽한 사랑의 노래를 당신에게 줄게요”라고 노래하는 곡입니다. 골든두들 부부는 본인들의 결혼식에서 듀엣으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The Divine Comedy ‘Perfect Lovesong’ 

그러고 보면 <Casanova> 앨범에 수록한 ‘Songs of Love’는 제목이 그대로 ‘사랑의 노래들’이로군요. 닐 해넌은 아일랜드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캐시 데이비(Cathy Davey)와 연인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두 사람은 강아지 여러 마리와 같이 살고 있는데요. 닐 해넌이 만든 노래의 이름을 딴 동물 보호 단체 ‘My Lovely Horse Rescue’의 후원도 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작업에 도움을 주고받으며 좋은 결과를 내는 이 커플은 앨범 <Foreverland>에 수록한 ‘Funny Peculiar’에서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The Divine Comedy ‘Funny Peculiar & Songs of Love (A Take Away Show)’

디바인 코미디의 레코딩은 대체로 많은 인원이 필요한 관현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라이브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려우므로 본인도 늘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공연에서는 굳이 오케스트라를 동원하지 않고도 6인조 정도의 편성으로 백 보컬을 강화하고 건반 악기를 짜임새 있게 배치하여 좋은 연주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앨범 <Foreverland>에 수록한 ‘To the Rescue’의 뮤직비디오에는 그런 요즘의 모습이 담겨 있지요. 프랑스의 전설적인 뮤지션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에 대한 오마주로 만들었다는 이 곡 소개하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The Divine Comedy ‘To The Rescue’ 

 

Writer

골든 리트리버 + 스탠다드 푸들 = 골든두들. 우민은 '에레나'로 활동하며 2006년 'Say Hello To Every Summer'를 발표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2012년 IRMA JAPAN 레이블에서 'tender tender trigger' 앨범을 발표하였다. 태성은 '페일 슈', '플라스틱 피플', '전자양'에서 베이스 플레이어로, 연극 무대에서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였다. 최근에 여름과 바다와 알파카를 담은 노래와 소설, ‘해변의 알파카’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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