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초 독일에서 활동하던 유타 힙의 음반

재즈 역사에서 유타 힙(Jutta Hipp)이라는 이름은 매우 낯설다. 레이드 마일스의 초록색 앨범 디자인으로 더욱 유명한 블루노트 음반 <Jutta Hipp with Zoot Sims>(1956)에서 주트 심즈의 콤보를 리드했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더는 재즈 음반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즈 평론가 스콧 야노우는 “이 음반은 매우 뛰어난 연주를 보여, 유타 힙이 재즈 세계에서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궁금할 정도”라 평하기도 했다. 전후 독일의 재즈 아이콘이었고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음반을 낸 최초의 백인 여성 뮤지션이었지만, 갑자기 음악과 담을 쌓은 채 35년 동안 뉴욕의 의류회사 직원으로 일하며 평범하고 외롭게 살다가 2003년 78년의 생을 조용히 마감했다.

앨범 <Jutta Hipp with Zoot Sims>에 수록한 ‘Just Blues’

유타 힙에 관해서는 그의 사생활이 먼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헝가리 출신의 유명 기타리스트 아틸라 졸라(Atilla Zoller)의 연인으로, 독일에서 함께 활동하며 약혼한 적이 있다. 또한 독일에서 연주하던 그를 미국으로 데려와 블루노트 레이블의 알프레드 라이언에게 소개한 재즈 평론가 레오나드 페더(Leonard Feather)가 그에게 반하여 접근했다는 풍문이 돌았지만, 당사자들이 이 사실을 확인한 바는 없었다. 라이프치히 출신인 그는 재즈를 금지하던 나치 치하에서 극심한 빈곤을 겪었고, 전후 서독 영토로 이주하여 독일의 재즈 클럽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를 소개받은 레오나드 페더의 주선으로 1955년 뉴욕으로 건너와 재즈클럽 히커리 하우스(Hickory House)에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독일에서 겪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심각한 무대공포증이 갈수록 악화되었으며, 뮤지션의 생활고를 염려하여 낮에는 의류회사에 취직하여 일하였다.

뉴욕 히커리 하우스에서 유타 힙을 소개하는 레오나드 페더

히커리 하우스의 실황 앨범 두 장과 주트 심즈와의 스튜디오 앨범 한 장 만을 낸 채, 유타 힙이라는 이름은 재즈 계에서 사라졌다. 그가 재즈 계에서 영향력을 지닌 레오나드 페더의 구애를 거절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독일에서 건너온 젊은 여성 피아니스트를 이용하여 돈을 벌어보려는 매니저들 때문에 질렸으며 레오나드 페더도 그 중 한 명이라는 설이 더 유력했다. 어쨌든 그는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고 첫 직장이었던 의류회사에서 은퇴할 때까지 35년 동안 일했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소외될 까봐 두려워하며 술과 마약에 파묻혀 외롭게 지냈다. 그와 연락이 닿았던 재즈 뮤지션은 리 코니츠(Lee Konitz) 정도였다고 알려졌으며, 블루노트 레이블은 저작권 수입을 보내기 위해 그의 주소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고 전해진다.

독일 재즈 페스티벌에서 Jutta Hipp Combo의 'Frankfurt Special'(1954)

그는 말년에 음악 대신 미술에 재미를 붙여, 예전에 함께 연주하던 재즈 뮤지션들의 모습을 스케치로 그리기도 했다. 독일 잡지 <Jazz Podium>과의 인터뷰에서 미술을 하게 된 이유로 “사람들이 나를 보지 않고 작품을 보기 때문”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 가족이 없었으나, 젊은 시절 독일에서 사내 아이를 낳은 적이 있었다. 당시 빈털터리로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 양육을 포기하고 입양을 보냈는데, 그의 이름을 재즈 뮤지션 라이오넬 햄프턴을 따라 ‘Hampton’이라 지었으며 최근까지 독일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전해지기도 했다.

박스 세트 <Hipp Is Cool: The Life and Art of Jutta Hipp>

그가 뉴욕에서 사망한 후, 독일 출신의 재즈 역사가 카차 본 슈텐바흐(Katja von Shuttenbach)의 열성적인 탐사 취재로 그의 음악과 생애가 다시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에 따라 뉴욕 재즈신에서 초기의 여성 아티스트로 추모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고, 그의 일생과 음악 그리고 그가 그린 스케치 작품들을 모아 <Hipp Is Cool: The Life and Art of Jutta Hipp>(2015)이라는 제목의 박스 세트로 출반하였다. 이어서 그의 고향 라이프치히에서는 그를 추모하여 ‘Jutta-Hipp-Weg’라는 도로명을 명명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라이프치히의 ‘Jutta-Hipp-Weg’의 도로명 부여를 기념하여 관계자들이 모였다.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Katja von Shuttenb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