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니 캐시의 <American> 시리즈 6장의 음반 표지

원곡 ‘Hurt’는 인더스트리얼 로커 트렌트 레즈너의 원맨 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가 1996년 발표하여 그래미 베스트 록 후보에 오른 곡이다. “I hurt myself today to see if I still feel”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곡은, 자해와 마약 중독에 관한 가사를 담아 논란을 낳았다. 이 곡을 71세의 레전드 컨트리 가수가 리바이벌하였고,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에서 20여 차례 수상한 명감독 마크 로마넥(Mark Romanek)이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뮤직비디오에 담았다. 감독은 장기간 문을 닫았던 개인 박물관 <House of Cash>를 둘러보고 뮤직비디오 콘셉트를 잡았다. 여기에 함께 출연한 자니 캐시의 아내 준 준 카터(June Carter)는 촬영 3개월 만에 생을 마감했고, 당뇨성 자율신경 이상증세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 역시 4개월 만에 아내의 뒤를 따랐다.

자니 캐시 ‘Hurt’(2003) 뮤직비디오

이 뮤직비디오는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MTV VMA ‘올해의 비디오’ 포함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최우수 촬영 부문 수상에 그쳤다. 이 뮤직비디오를 누르고 ‘Cry Me a River’로 최우수 남자 비디오상을 받은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수상 소감을 위해 무대에 올라, “말도 안 된다. 채점을 다시 해야 한다”면서, “나의 할아버지는 자니 캐시의 노래를 들으며 나를 키웠다. 그는 누구보다 충분히 이 상을 받을 만하다”고 그에게 영광을 돌렸다. 자니 캐시의 ‘Hurt’는 그 해 컨트리 뮤직 어워드(CMA)에서 ‘올해의 싱글’을 수상했고, 이듬해에는 역대 최고의 컨트리 뮤직비디오로 선정되었다. 또한 타임지는 역대 최고의 뮤직비디오 30선 중 하나로, NME(New Music Express)는 역대 최고의 뮤직비디오로 선정하였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오리지널 ‘Hurt’(1996)

자니 캐시는 1950~1960년대를 주름잡은 전설적인 컨트리 가수다. 그가 판매한 음반은 9,000만 장에 이를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지만, ‘무법자’(Outlaw)나 ‘검은 옷의 남자’(Man in Black)와 같은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반항적인 기질로 유명했다. 마약 복용과 투옥, 그리고 난잡한 사생활을 바로잡은 사람이 동료 가수였던 준 카터(June Carter) 였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난지 13년째인 1968년에 결혼하여 2003년 같은 해 사망할 때까지 35년의 생을 함께 했다. 두 사람의 드라마틱한 로맨스는 영화 <앙코르>(Walk the Line, 2005)에서 호아킨 피닉스와 리즈 위더스푼의 연기로 살펴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5개 부문 후보에 오른 화제작으로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영화 <앙코르>(Walk the Line) 예고편

전성기를 한참 지나 대형 음반사에서 외면하던 그를 다시 무대로 돌아오게 만든 사람이 비스티 보이즈, LL 쿨 J, 제이 지(Jay Z) 등을 낳은 명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이었다. 그는 왕년의 컨트리 스타와 깊은 정을 나누면서 다섯 장의 <American> 시리즈(1994~2010)를 남겼고, 이 중 첫 음반 <American Recordings>(1994)으로 그래미를 수상하였다.

자니 캐시 사망 2개월 전의 마지막 공연 영상(2003), 그는 아내의 유령이 자신을 지켜본다고 말하곤 했다

자니 캐시는 음악을 쉬지 말라는 아내의 유언을 따라 혼자 남은 마지막 4개월 동안 휠체어를 타고 40여 곡을 더 녹음했는데, 그의 사망 후 후 릭 루빈은 슬픔에 잠겨 2년 동안 이를 들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American V>(2006), <American VI>(2010), <Out Among the Stars>(2014)는 사후 한참을 지나 발매되었다. 뮤직비디오 중간에 아기의 모습으로 잠깐 등장한 자니 캐시 부부의 아들 자니 카터 캐시 역시 현재 가수로 활동 중이다.

자니 캐시의 아들 자니 카터 캐시 ‘Hurt’(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