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디 허버드의 그래미 수상 앨범 <First Light>(1971)

프레디 허버드(Freddie Hubbard)는 1960년대 최고 기량을 갖춘 20대의 젊은 트럼펫 연주자였다. 그의 연주에는 실수나 결점을 찾아보기 어려워 당시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자신의 레코딩에 사이드맨으로 그를 초대했다. 1960년대의 재즈 전성기에 탄생한 명반에서 허버드의 이름을 발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존 콜트레인의 <O’le Coltrane>(1961), <Ascension>(1966), 에릭 돌피의 <Out to Lunch!>(1964), 올리버 넬슨의 <The Blues and the Abstract Truth>(1961), 허비 행콕의 <Maiden Voyage>(1965), 웨인 쇼터의 <Speak No Evil>(1964) 등 손에 꼽히는 명반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이 기간 중에는 리 모건의 후임으로 아트 블레키의 재즈 메신저 멤버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붙박이 트럼페터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블루노트 콘서트에서 오랜 동료들과 함께 ‘Cantaloupe Island’를 연주하는 프레디 허버드(1985)

허버드는 1960년대의 전성기에 블루노트, 애틀랜틱과 계약을 맺고 자신의 이름으로 음반을 발표했지만 두드러진 성과는 내지 못했다. 그보다 사이드맨으로 참가한 음반이 오히려 명반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는 정상의 트럼펫 연주 실력과 명성을 보유했지만, 마일스 데이비스나 디지 길레스피 같은 스타급 트럼페터들에 비해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하였다. 재즈가 서서히 퇴조하던 1960년대 말, 그를 찾은 사람이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Creed Taylor)였다. 스탄 게츠의 보사노바 음반을 프로듀싱하여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테일러는 예술적인 측면과 상업적인 성공 간의 균형을 맞추는 프로듀서로 알려졌고, 자신의 레이블 CTI(Creed Taylor Incorporated)를 막 창업한 후였다.

앨범 <Red Clay>(1970)의 타이틀곡 ‘Red Clay’

프레디 허버드는 크리드 테일러와 함께 일을 하면서 클리포드 브라운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정통 재즈에서 벗어나, 솔(Soul)과 펑크를 받아들여 퓨전 재즈로 음악적인 방향을 틀었다. 그의 17번째 앨범 <Red Clay>(1970)은 CTI에서 낸 첫 음반으로 새로운 음악의 신호탄이 되었고, 작곡가와 밴드 리더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선보였다. CTI에서의 두 번째 음반은 <Straight Life>(1970)로, 재즈 평론가 스콧 야노우가 프레디 허버드의 최고 솔로를 들을 수 있는 베스트 음반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조 헨더슨(색소폰), 허비 행콕(피아노), 조지 벤슨(기타), 론 카터(베이스) 등 정예 동료 뮤지션들이 함께 콤보를 이룬 것도 큰 힘이 되었다.

앨범 <Straight Life>에 수록한 ‘Straight Life’ 실황

CTI에서의 세 번째 앨범 <First Light>(1971)은 특이하게도 바이올린, 첼로 같은 현악기가 대거 편성되어 클래식 음악과의 퓨전을 시도하였다. 이 앨범으로 이듬해 그래미 그룹 재즈 연주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음악적 변신이 완성되어 대중과 평단에 인정을 받았음을 증명했다. 평론가들은 세 장의 음반을 그가 새로운 음악적 변신을 시도한 CTI 3부작(Trilogy)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1974년 대형 음반사인 컬럼비아(Columbia)로의 이적은 그의 최대 실수라 여겨지며, 1970년대 후반 그의 앨범들은 과도한 상업주의로 흘렀다는 혹평을 면치 못하였다. 1980년대 다시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여 1992년 심각한 입술 부상을 입을 때까지 정상의 트럼펫 연주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앨범 <First Light>(1971)에 수록한 ‘First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