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음악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The Legend of 1900)에서 ‘재즈의 창시자’라 소개되며 주인공과 피아노 연주 대결을 벌이는 젤리 롤 모턴(Jelly Roll Morton)은 실존 인물이다. 그를 연기한 배우 외모로부터 알 수 있듯이 뉴올리언스에 많이 살았던 크리올(Creole, 프랑스계 이민자와 흑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 계층)이었던 그는, 1900년대 초부터 뉴올리언스 스토리빌의 홍등가에서 랙타임(Ragtime)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영화에서 연주된 탱고 음악 ‘The Crave’는 그가 작곡한 오리지널로, 당시 할리우드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후일 자신이 재즈를 창시했다고 주장하여, 후세의 재즈 평론가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기도 했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에서 ‘The Crave’ 연주 장면

많은 재즈 평론가들은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가 ‘Lively Stable Blues’ 녹음했던 1917년을 재즈가 창조된 시기라는 것을 정설로 인정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다른 주장도 있다. 이보다 20여 년 먼저 뉴올리언스에서 코넷을 연주했던 버디 볼든(Buddy Bolden)의 밴드를 재즈의 원조로 보기도 하며, 젤리 롤 모턴은 1938년 방송인 로버트 리플리(Robert Ripley)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를 통하여 자신이 10대의 나이인 1902년 스토리빌에서 연주를 시작할 때 재즈가 창조되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더 나아가 1906년 자신의 곡 ‘King Porter Stomp’가 최초의 스톰프 음악이며, 이듬해의 ‘Georgia Swing’이 최초의 스윙 음악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군터 슐러와 같은 음악가는 “과장이 지나친 주장”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Jelly Roll Morton의 ‘Jelly Roll Blues’(1926)는 최초로 악보 형식으로 출판된 재즈 음악이다

그의 ‘젤리 롤 모턴’이란 예명에는 재미난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10대부터 뉴올리언스의 홍등가를 돌아다니며 코미디를 하거나 피아노를 치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는데, 그는 외설적인 가사를 붙인 노래를 곧잘 부른다고 해서 ‘젤리 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여성의 성기를 이르는 그 지역의 속어였다. 당시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증조할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그가 공장이 아니라 홍등가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실망하고 분노했다. 재즈와 같은 악마의 음악을 하는 것은 가문의 수치이고 집안이 망하게 될 것이라는 증조할머니의 말을 듣고, 그는 우아한 성씨였던 ‘모턴’으로 바꿔 쓰게 되면서 그는 평생 젤리 롤 모턴이란 예명을 갖게 된 것이다.

젤리 롤 모턴의 오리지널 ‘King Porter Stomp’(1923)은 후일 베니 굿맨의 히트곡이 되었다

1920년대에는 뉴욕으로 이주하여 대형 음반사 빅터(Victor)와 계약에 성공하고 밴드 레드 핫 페퍼스(Red Hot Peppers)을 구성하였으나 별다른 히트곡을 내지는 못하였다. 그가 초창기에 작곡했던 ‘King Porter Stomp’가 30여년이 지나 베니 굿맨의 첫 히트곡이 되었으나, 당시 저작권법의 미비로 그에게는 한 푼도 돌아오지 않았다. 빅터와의 재계약에 실패하고 쪼들리게 된 그는 1935년 워싱턴 DC로 이주하여, 여러 클럽을 전전하며 연주했다. 하지만 클럽에서 일어난 싸움에 휘말리며 머리와 가슴을 찔리는 부상을 입게 되었고, 멀리 떨어진 유색인종 대상의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여 날이 갈수록 건강이 악화되었다. 새 출발을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다시 이주하였으나 그곳의 병원에서 51년의 생을 마감하였다.

8장의 CD로 구성된 <The Complete Library of Congress Recording>

그가 워싱턴 DC에 머무르던 1938년, 국회의사당의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클럽 뮤직박스(Music Box)에서 약8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직접 많은 연주곡을 녹음하였는데, 이는 재즈가 형성될 초창기 연구의 소중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2005년에 레코딩 전곡이 <The Complete Library of Congress Recordings>로 출반되었는데, 이에 대해 그래미는 그가 사망한지 65년이 지난 2006년, 그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