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올해 2월 열린 오스카(제89회 미국아카데미시상식) 이야기부터 꺼내야겠다. 그야말로 ’의외’의 장면이 많았으니까. <문라이트>의 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와 <펜스>의 비올라 데이비스가 각각 남녀조연상을 받은 것이 그 첫 번째. 그동안 유독 흑인 배우에게 수상의 영광을 주지 않았던 오스카가 두 명의 흑인 배우에게 주요 부문을 나란히, 게다가 흑인이자 ‘무슬림’인 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에게 상을 준 것은 현재 미국의 상황에서 봤을 때 여러모로 뜻밖의 결과였다. 배우들이야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블루리본을 달고 나왔지만.

<문라이트>가 만들어낸 의외의 순간은 더 있다. 흑인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인종차별과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묵직하게 던지는 이 영화가 대상 격인 작품상을 거머쥔 것. 그간 백인들의 잔치, 이른바 ‘화이트오스카’라는 오명이 붙은 보수적인 시상식에서 나온 결과인 만큼 의외를 넘어 이변으로 불릴 만하다. 특히 이번 작품상 수상은 89년 오스카 역사상 이례 없는 수상작 번복 실수까지 더해져 정말 역사에 남을 이변이 됐다.

오스카는 올해를 계기로 인종차별 논란을 잠식 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화계는 차별에서 자유로워진 걸까? 아쉽게도, 아직은 아니다. 적어도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훌륭한 작품과 배우가 ‘검은’ 색채를 띈다는 이유만으로 이변이 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알았다. 금년 국내 관객에게 찾아온 세 편의 영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각각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온갖 차별과 편견을 마주한 인물들이 어떻게 극복했는지 영화로 들여다보자. 검은 피부와 맞닿은 희망의 이야기들은 아직 더 나은 자유와 권리를 원하는 우리에게도 분명 필요하다.

 

편견을 뛰어넘은 평범한 사랑

<러빙>

Lovingㅣ2016ㅣ감독 제프 니콜스ㅣ출연 조엘 에저튼, 루스 네가

1958년, 타 인종 간 결혼이 불법이었던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지내던 ‘러빙’ 부부는 백인 남성(조엘 에저튼)과 흑인 여성(루스 네가)이 결혼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고 버지니아주에서 추방당한다. 지금이라면 있을 수 없는 ‘영화 같은’ 이 사건은 실제 리차드 페리 러빙과 밀드레드 지터의 이야기다. 러빙 부부는 미국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하여 1967년 6월 12일, 타 인종 간의 결혼금지법이 위헌임을 받아내며 그들의 사랑이 ‘무죄’임을 증명해냈다.

오롯이 사랑의 힘으로 헌법을 바꾼 러빙 부부의 실화는 2011년 낸시 부이르스키의 다큐멘터리 <더 러빙 스토리>(2011)로 먼저 제작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실화에 감명받은 배우 콜린 퍼스는 제작사 Raindog Films를 창립, 낸시 부이르스키의 각본을 토대로 영화 <러빙>을 기획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는 러빙 부부의 여정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도 그것을 지탱한 순수한 사랑에 집중한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를 원했던 평범한 두 사람의 용기가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섬세한 연출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온 제프 니콜스 감독이 담백하고 깊은 맛을 내는 사랑 이야기를 아주 예쁜 화면에 담아 냈다. 3월에 개봉하여 1만명의 관객을 끌어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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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웃음을 꿈꾼 흑백 광대 콤비

<쇼콜라>

Chocolatㅣ2015ㅣ감독 로쉬디 젬ㅣ출연 오마 사이, 제임스 티에레

프랑스 최초의 흑인 광대 ‘쇼콜라’(오마 사이)와 그의 파트너 ‘푸티트’(제임스 티에레)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쿠바에서 흑인 노예로 태어난 후 프랑스로 건너온 쇼콜라는 우연히 백인 광대 푸티트를 만나 함께 서커스를 하며 왕성한 인기와 성공을 거둔다. 실제 이들의 공연은 당시 인기에 힘입어 대중영화의 창조자 뤼미에르 형제가 촬영한 영화에도 실린 바 있다. 그러나 로디쉬 젬 감독의 영화는 끼와 재능을 인정받아 인기를 누리던 흑인 광대 쇼콜라에게 여전히 뿌리 깊게 박힌 인종차별의 시선을 조명한다.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백인들에게 검은 피부를 가진 쇼콜라는 그저 무대 위에 전시된 웃음거리일 뿐이다. 그런 시대에서 한 명의 인간이자 예술가로서 존중받기를 원했던 쇼콜라를 백인 광대 푸티트는 진심으로 인정해줄 수 있을까. 영화로 환생한 흑백 광대 콤비는 특유의 유쾌한 매력을 뽐내는 프랑스 국민배우 오마 사이와 전설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의 외손자로도 알려진 만능 배우 제임스 티에레의 만남으로 더욱 기대를 모은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서커스를 보러 왔다면 방심하지 말 것. 편견의 역사를 잊고 있던 세대에게 광대들은 절대 우스꽝스럽지 않은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금년 3월 9일 개봉하여 3천 7백명의 관객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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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엔 인종도, 성별도, 한계도 없다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ㅣ2016ㅣ감독 데오도르 멜피ㅣ출연 타라지 P. 헨슨, 옥타비아 스펜서, 자넬 모네

흑인은 전용 화장실을 따로 사용해야 하고, 여자는 회의 참석이 불가능하다? 도대체 어느 시대 얘기냐고 반문할 법한 영화의 내용은 실제로 최첨단 우주연구기관 나사(NASA)에서 행해졌던 실화다. 1960년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메리 잭슨’(자넬 모네)은 NASA 최초의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선발된다. 백인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던 당시 과학계에 발을 디딘 그들은 흑인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온갖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천부적인 수학 능력, 누구보다도 강인한 의지,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스스로 한계를 극복해 나간다. 올해 오스카의 변화를 이끈 <문라이트>에서 흑인 소년을 엄마처럼 보살펴 주는 테레사를 연기했던 자넬 모네를 포함한 세 배우가 유쾌한 연기 앙상블을 선보였다. 게다가 <문라이트>로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까지 더해졌다. 관록의 흑인 배우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통쾌한 결말로, 국내에서 45만의 관객수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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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이미지=<히든 피겨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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