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일상을 특별하게 그려내는 건 예술가에게 특별한 재능이고, 노아 바움백은 그런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춘 감독이다. 노아 바움백의 영화 속 인물들은 누구나 할 법한 고민인 자신의 미래, 가족과의 관계 등으로 고민한다. 뉴욕을 주요 무대로 하는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보고 있으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웃으면서 보다가도 울컥하게 되는 건, 어느 순간 그의 영화 속 캐릭터들의 고민이 나의 고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웃기고 슬플 수밖에 없는 삶의 풍경을 누구보다도 잘 그려내는 노아 바움백의 작품을 살펴보자. 

감독 노아 바움벡, 이미지 출처 – 링크

 

<오징어와 고래>

유명 소설가였지만 지금은 강의로 생계를 유지 중인 ‘버나드’(제프 다니엘스)와 소설가로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조안’(로라 리니) 부부는 이혼을 결심한다. 큰아들 ‘월트’(제시 아이젠버그)와 작은아들 ‘프랭크’(오웬 클라인)는 일주일의 반은 아버지 버나드, 반은 어머니 조안과 보내게 된다. 조안의 외도가 이혼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며 조안을 원망하는 월트, 버나드보다 조안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프랭크, 두 사람의 불안은 부모의 이혼과 함께 더욱 커간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최근작 <결혼 이야기>(2019)가 부부의 이혼에 집중한다면, <오징어와 고래>(2005)는 부모의 이혼이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한다. 지적 허영과 함께 남들을 쉽게 평가하는 버나드, 자식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려는 조안은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은 부부다. 이들의 갈등은 월트와 프랭크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준다.

<오징어와 고래> 트레일러

월트는 읽지 않은 책도 아버지가 졸작이라고 하면 졸작이라고 믿고, 여자친구도 아버지가 별로라고 하면 별로라고 믿는다. 무엇인가 경험하고 느끼는 것 대신, 아버지의 판단을 기준으로 삼는다. 상담사가 월트에게 좋았던 기억을 묻자, 월트는 어릴 적 어머니와 자연사박물관에서 오징어와 고래를 봤던 기억에 대해 말한다. 그 순간을 떠올리며 월트는 문득 생각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건 세상이나 타인이 말하는 그럴듯한 ‘기준’이 아닌,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경험’일지도 모르겠다고. 자연사박물관의 오징어와 고래가 사회적으로 가진 의미보다, 그 기억이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한지가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프란시스 하>

27살 ‘프란시스’(그레타 거윅)는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친구 ‘소피’(믹키 섬너)와 함께 살고 있다. 프란시스는 무용으로 성공하고 싶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는다. 프란시스는 애인의 동거 제안을 소피와 살기 위해 거절하지만, 소피는 다른 사정으로 프란시스와 살 수 없게 된다. 일부터 인간관계까지 제대로 풀리는 게 없는 프란시스는 문제들을 헤쳐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노아 바움백의 작품에 자주 출연하는 배우로는 아담 드라이버, 벤 스틸러 등이 있지만, 그의 작품을 대표하는 배우를 한 명 뽑으라면 그레타 거윅일 거다. 그레타 거윅은 <그린버그>(2010)에 출연하며 노아 바움백과 처음 호흡을 맞췄고, <프란시스 하>(2012)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에서는 연기뿐만 아니라 각본에도 참여했다. <프란시스 하>에서 프란시스 캐릭터에 공감하게 되는 건, 그레타 거윅이 실제로 했던 고민을 각본에 담고 연기했기 때문일 거다.

<프란시스 하> 트레일러

누군가 내게 근황을 묻는 게 두려운 시절이 있다. 그럴 때는 크게 두 가지 선택을 한다. 현실의 우울하고 힘든 부분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현실을 과장되게 포장해서 그럴 듯하게 말하거나. 프란시스는 모든 걸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 같지만, 불안에 시달리며 고민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술에 취해서 자신의 힘든 부분을 솔직하게 말하기도 하고, 당장 월세가 걱정이지만 걱정이 없는 척하기도 한다. 타협이 실패처럼 느껴지는 시절을 지나는 프란시스에게 오지랖 넓게도 말을 걸고 싶어지는 건, 불안한 시절을 지난 과거의 자신에게 말을 걸고 싶은 마음 때문일 거다.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제대로 고른 신작)>

‘해럴드’(더스틴 호프만)는 과거에 조각가로 제법 이름을 알리고, 최근까지 대학교수로 일했다. 다시 전시를 시작하고 재기를 노리는 해럴드는 고집스럽고 타인을 함부로 평가한다. 해럴드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첫째 아들 ‘대니’(아담 샌들러)와 둘째 딸 ‘진’(엘리자베스 마벨)을 낳은 뒤 재혼해서 막내아들 ‘매튜’(벤 스틸러)를 낳는다. 대니는 최근에 이혼 후 아버지와 여동생의 집에 머물고, 진은 늘 가족 곁에 머물지만 속을 좀처럼 알 수 없고, 매튜는 자신의 사업을 키우고 있다. 가족에 대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아버지의 일을 계기로 오랜만에 조우하게 된다.

노아 바움백이 넷플릭스에서 만든 첫 번째 작품인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제대로 고른 신작)>(2017)은 <오징어와 고래>(2005)를 연상시키는, 가족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부모의 성격과 성향이 자식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영화로, 좋아하기도 힘들고 미워하기도 힘든 가족 사이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제대로 고른 신작)> 트레일러

해럴드는 자식들 중에서도 매튜를 특히 아끼지만, 정작 매튜는 그런 아버지의 사랑이 부담스럽고 불편해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대니와 진은 아버지에게 딱히 애정을 받지 못했음에도 의무감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잘하려고 한다. 이들은 서로를 의아해한다. 왜 아버지에게 그렇게 매달리는지, 왜 아버지를 그렇게 홀대하는지. 성인이 되고 나서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마주한 이들은 아버지의 자식들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하며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 누구의 기준도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이상적인 가족이 아닌 ‘진짜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결혼 이야기>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LA에서 주목받은 영화배우였다가 현재는 뉴욕에서 연극 연출가 ‘찰리’(아담 드라이버)가 이끄는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 중이다. 부부인 니콜과 찰리는 여러 갈등을 겪다가 이혼을 결심한다. 니콜은 이혼 전문 변호사 ‘노라’(로라 던)를 소개받고 찰리와의 이혼 소송을 준비한다.

노아 바움백이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제대로 고른 신작)>(2017)에 이어 넷플릭스와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결혼 이야기>(2019)는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는 이혼을 준비하는 부부를 연기하며,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둘만 아니라 이혼 전문 변호사를 연기한 로라 던 또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해서 각종 시상식의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결혼 이야기> 트레일러

<결혼 이야기>는 니콜과 찰리가 서로의 장점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두 사람이 이별을 결심하고 쓴 서로의 장점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던 이유가 적혀 있다. 요약해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로 두 사람은 이혼을 결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사랑했던 시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사랑했던 시절을 지나 이혼하지만, 이혼이 관계의 마침표로 보이지는 않는다. 니콜과 찰리는 오히려 이전보다 서로를 더 존중하고 응원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과할지도 모르는 희망 혹은 관객의 욕심으로 둘의 앞날을 상상해본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