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이 왕복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 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중에서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본격화되기 직전이었던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약 열흘. 마치 우리에게 잠시 선물한 듯한 꿈 같은 가을을 틈타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는 매직스트로베리와 캐스퍼라이브가 주관한 색다른 이벤트가 펼쳐졌다. ‘창작자들의 라운지’, ‘작은 창작자들의 사회’로 불리는 공간 콘셉트에 걸맞은 소규모 관객 대상의 오프라인 융복합 공연이었다.

 

What you need is to be natural and calm
우리가 만난 이 자리에서

공연 포스터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re-union> 시리즈는 음악을 매개로 공간과 전시, 퍼포먼스가 한데 어우러진 융복합 공연으로 기획되었다. 오프라인 공연을 통해 코로나19로 흩어졌던 뮤지션과 관객, 예술가들이 그야말로 ‘다시 뭉치는’ 자리였다. 9월 초,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조치에 따라 이미 한 차례 연기를 겪은 후이기에 자리는 더욱더 애틋했다.

신스 사운드 기반의 몽환적인 레트로팝을 들려주는 아도이. 재즈, 알앤비의 무드로 다채로운 장르를 소화하는 선우정아. 다재다능한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프로듀서인 윤석철과 끈적한 블랙뮤직 사운드를 멋진 연주로 구현하는 까데호. 블루스록과 사이키델릭을 트렌디한 빈티지 및 로파이 사운드로 완벽히 승화한 새소년과 한국식 모던록 감성을 대표하는 9와 숫자들. 마지막으로 짙은 감성의 모던록 발라더 짙은까지. 장르 불문 오늘날 한국 인디 음악 신을 대표하는 7개 팀 뮤지션이 번갈아 가며 혹은 함께 무대를 빛냈다. 이들은 <re-union>의 독특한 콘셉트에 맞춰 저마다 돋보이는 감성과 음악색을 들려줬고, 관객은 음악과 더불어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었다.

송재경(보컬) of 9와 숫자들 무대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새소년 무대 © 캐스퍼 라이브

 

<re-union>, 당신의 오감을 깨웁니다. 

‘re-union’이라는 제목과 융복합 공연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공연은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시각예술 작품 전시와 티 세레머니, 그리고 로파이 프로듀서 그룹 로파인더스(Lofinders)*의 디제잉이 한 공간에서 이뤄졌고, 이후 바로 옆 공간에서 뮤지션의 메인 무대가 펼쳐졌다.

전시작은 디자이너 윤새롬**의 아크릴 작품이다. 그는 월페이퍼의 <디자인 어워드 2018>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파네라이 넥스트 제너레이션 디자이너’(Panerai Next Generation)로 당당히 선정된 라이징 스타다. 마치 티테이블처럼 티 세레머니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윤새롬의 작품은 <크리스털 시리즈>(Crystal Series)로 명명한 그 이름처럼 아크릴 아닌 영롱하고 오묘한 색감의 크리스털처럼 보인다.

* 로파인더스 인스타그램
** 윤새롬 작가 인스타그램

관객과 작품이 공존하는 자리에 로파인더스의 ‘칠(chill)’한 음악이 깃든다. 눈앞에서는 티 아티스트이자 식품 연구가인 김담비 작가*의 신비롭고도 편안한 티 세레머니가 펼쳐지고, 강렬한 칵테일처럼 화려한 색감의 티는 은은한 향과 맛을 풍기며 눈과 입을 만족시킨다.

<re-union>의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지상층과 천장 모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이다. 자연광과 공연 조명이 함께 투과해 공간과 어우러짐으로써 아크릴 작품의 멋이, 티 세레머니의 분위기가 더욱 한껏 살아났다. 토요일 무대를 맡은 새소년과 선우정아는 각기 하루 두 차례씩 공연을 펼쳐, 낮 시간과 저녁 시간 변화하는 조도에 따라 셋 리스트와 무대 연출을 다르게 선보이기도 했다.

* 김담비 작가 인스타그램
낮 시간 티 세레머니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저녁 시간 티 세레머니 © 캐스퍼 라이브
낮 시간 선우정아 무대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저녁 시간 선우정아 무대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콜레라는 갑작스럽게 시작된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 전염병의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숫자를 밝히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가장 일상적인 장점 중 하나가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콜레라 시대의 사랑> 중에서

<re-union>이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것이 여러 프로그램을 한데 준비하면서도, 거창한 기술이나 콘셉트를 앞세우는 게 아닌, 편안한 공간과 따스한 빛을 통해, 눈코입에 스미는 자연스러운 감각과 좋은 음악을 통해 다가왔다는 점이다.

기나긴 불안과 아주 가끔 찾아오는 짧은 안정이 반복되는 코로나 시대. 자연히 만남은 급격히 줄어만 간다. 전에 겪어보지 못한 갑작스러운 비대면 일상은 저마다 단지 외롭고 쓸쓸한 감정만 남기는 게 아니라 때때로 우리의 감각마저 무디게 한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주인공 ‘아리사’는 19세기 당대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콜레라보다 더욱 지독한 상사병을 앓은 끝에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데 성공한다. 사랑하는 이를 무려 50년 넘게 기다린 후였다.

코로나19의 고통은 얼마나 지속할까? 그리고 우리는 얼마 만에 이 시대에 익숙해질까? 6개월? 1년? 아니면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릴까? 분명한 건 도시와 질병의 소요에도 우리의 감각과 감성은 늘 고요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견딤과 기다림 어느 사이, 그 사실을 일깨워준 작은 선물을 회상하며 이들의 다음 선물을 기대해본다.

정다영(베이스) of 아도이 무대 © 캐스퍼 라이브
짙은 무대 © 캐스퍼 라이브
이태훈(기타) of 까데호, 윤석철 X 까데호 무대 © 캐스퍼 라이브

 

참여 아티스트

10/30 아도이
10/31 새소년
11/1 윤석철, 까데호
11/6 짙은
11/7 선우정아
11/8 9와 숫자들

 

메인 이미지 오주환(보컬, 기타) of 아도이 무대 © 캐스퍼 라이브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인스타그램

캐스퍼라이브 유튜브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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