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가 어떻게 들어왔을까?’ 싶은 곡들이 ‘과일’ 차트 상단에 보인다. 바로, 코난 그레이의 ‘Maniac’, 루엘의 ‘Painkiller’과 이썸의 ‘12:45(Stripped)’이다. 지금은 유명해졌지만, 발매 당시엔 ‘나만 알고 싶은 음악’에 더 가까웠다. ‘떼껄룩(take a look)’이란 유튜브 채널과 트위치 스트리머인 ‘주다사’를 통해 소개된 게 차트 진입의 계기라고 한다. 과연 개인의 감각과 취향을 믿고 따르는 플레이리스트 시대가 왔다.

이미지 출처 – ‘Genius’

팝 차트는 보통 이런 식이었다. ‘누구누구의 음반이 나왔대.’ 할 정도로 이름 있는 가수의 음악은 자연스레 소문이 났다. 해외 유명 차트의 흐름이 국내에 흘러들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대체로 국내 음반사에서 열심히 미는 곡들이 차트에 올랐다. CF나 TV 방송에 소개되는 건 완전 치트키. 그러나 이제는 앞의 조건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음악이 세상에 알려질 기회가 왔다. 플레이리스트가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덕분이다.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이들은 앞에 한두 곡을 들어보고 오늘의 감정 상태에 적중하거나 느낌이 좋다 싶으면 그대로 쭉 듣는다. 기존의 마케팅 대신 개인의 느낌과 감정에 반응하는 것이다.

Conan Gray ‘Maniac’
Ruel ‘Painkiller’

해외에선 일찍부터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플레이리스트가 갖는 존재감도 크다. 어마어마한 팔로워를 보유한 플레이리스트는 그야말로 음악 홍보를 위한 최적의 도구.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음악이 인기 플레이리스트에서 몇 번째 순서에 있는지 확인하기도 한다(보통은 순서대로 감상하니 앞에 수록될수록 감상 횟수가 가장 많다). 예로 인디포스트에서 소개하기도 한 톰 미쉬의 게시물을 가져와 봤다. 이로 인해 해외엔 플레이리스트 관련 회사도 생겨났다. 어떤 홍보 대행사는 개인이 운영하는 유명 플레이리스트에 돈을 주고 특정 음악을 넣어달라고 청탁하는 일만을 담당하기도 한다. 개인의 남다른 선곡에 팔로워는 물론 돈도 유입되는 것이다.

아직 플레이리스트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면, 일종의 노래 모음으로 정리해본다. 처음엔 기능적인 면이 강했다. ‘운동할 때 듣는 음악’ 같이 특정 활동, 시간대에 어울리는 곡을 모아두는 식이었다. 여기에 무드가 씌워지기 시작했다. 제목에 ‘로파이’, ‘빈티지’가 붙은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해보면, 낡고 투박한 레코드판 재질의 곡이 몇 시간이고 흘러나온다. 앞서 소개한 ‘떼껄룩’ 채널은 하이틴 재질의 음악을 종종 들려준다. 그의 채널은 구독자들이 미국의 학생이 된 것처럼 하이틴 설정 놀이를 하며 팝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떼껄룩 ‘들으면 내심장 쿵쾅쿵쾅쾅쾅 와그작 와장창’ 플레이리스트

플레이리스트 제작자들은 각기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마법처럼 하나의 느낌, 분위기로 엮어낸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나서, 유튜브나 음원사이트에 가면 내 기분에 딱 맞는 플레이리스트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곡을 찾을 수도 있지만, 수록된 음악을 음악으로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들을 때의 기억으로, 그 무드에 젖어 좋아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바뀐 현실이고 새로운 즐거움이 있는 건 분명하다. ‘나만 알고 싶은 노래’가 스트리밍, 동영상 시대에 드디어 기회를 얻고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Writer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신샘이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