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만한 동네 가게,
염리동의 젊은 흐름 ‘초원서점’ 인터뷰 (1)

재개발이 한창인 아현동을 뒤로하고 이화여대 맞은편에 자리 잡은 염리동은, 골목이 많고 지대가 높아서인지 서울보다는 작은 시골 마을 같다. 할머니들이 손부채를 펄럭이며 지나가고, 야채 트럭 아저씨의 소리가 드문드문 들리는 염리동 한 켠에 ‘초원서점’이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동네의 마스코트인 강아지 ‘해피’가 제집 드나들 듯 가게를 오갔다.

 

음악에 중점을 둔 서점을 연 계기가 궁금해요.
오래 전부터 ‘서점이 많았으면 좋겠다’, ‘골목골목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카페, 술집은 너무 많은데 서점은 진짜 없잖아요. 최근 3년 사이에 많이 생기긴 했는데, 전에 살던 동네 서점에는 제가 찾는 책이 항상 없었어요. 아무래도 작다 보니까 수용이 한정적이죠. 작은 서점을 하면 이런 문제가 있겠다 싶어서, 그럴 바에는 그냥 한 가지 전문분야를 내세우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사실 엄청 고민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좋아해서 하게 된 거죠. 초원서점은 제가 좋아하는 것들의 집합체에요. 책이랑 음악, 오래된 것들의 집합체.

5월 2일 책방 오픈 후 두 달이 흘렀는데,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서적의 양을 점점 늘리고 있고, 책의 배치를 조금 바꾼 정도? 처음엔 의자 두 개만 놓았는데 손님들이 편히 쉴 자리가 필요해 보여 테이블도 놓았어요. 콘텐츠 면에서는 시리즈로 기획해서 SNS에 올리는 ‘초원서점 책이야기’나 ‘뮤지션들의 추천 도서’를 소개하고 있고요.

처음 서점에 왔을 때 아늑한 다락방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주인장의 취향이 여기저기 묻어 있을텐데, 인테리어 할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원래 오래된 것을 좋아해요. 요즘 나오는 건 그냥 흉내 낸 빈티지 느낌이 너무 강해서 안 예뻐 보이는 거예요. 옛날 한국 가정집처럼 꾸미고 싶었어요. 이 책장이 너무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바람에 거기에 맞추다 보니까, 조금 더 부유층 집처럼 됐지만요. (웃음)

가구들은 다 길에서 가져온 거라고 들었어요.
조문기 오빠(밴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보컬)가 제 별명도 붙여줬어요. ‘쓰레기 감별사’, ‘쓰믈리에’라고. (웃음) 이젠 친구들이 좋은 거 버려져 있으면 가끔 문자도 보내요. 또 여기가 재개발 지역이라 버리는 게 많기도 하고요. 그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가져와서 깨끗하게 닦고 또 닦고 쓰는 거죠. 생활이 묻어 있는 가구가 예쁘더라고요.

동네 사람들이 ‘여기가 뭐 하는 곳인가’ 궁금해하지 않나요?
처음엔 책을 안 들여놓고 가구만 있을 때는 ‘농방’이라고, 할머니들이 ‘장롱 파는 데’라고 그러셨어요. ‘서점’이라고 쓰여 있는데도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하다고. 저번엔 할머니 한 분이 낮에는 약간 부담스러우니까 못 들어오시고 밤에 오셨어요. “난 여기가 궁금해. 여긴 뭐하는 데여?” 하시길래 서점이라 그랬더니 “나랑 상관이 없고만.” 이러고 가셨어요. 빈티지 숍이나 가구 숍,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손님들이 가장 관심 있게 보는 서적이 있나요?
책 한 권에 집중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매우 다양해요. 많이 팔린 책들이 있긴 하지만 어떤 한 권을 유독 많이 찾으시거나 하는 건 아직 없어요.

그럼, ‘이건 우리 가게에 있지만, 진짜 팔기 아깝다.’ 싶을 만큼 아끼는 책이 있나요?
책이 아까우면 안 팔아요. 입구 선반 위에 있는 것도 안 파는 거고, 여기 가운데 진열장은 중고 책을 모아온 건데 ‘비매품’이라 붙여놨어요. 열람은 할 수 있는데 판매는 안 해요. 가격을 매기기 아까우니까. 그중 귀한 걸 꼽으라면 김현식 씨의 책과 시집, 김민기 씨 책. 간혹 구매를 물어보는 분들이 있지만 얄짤 없어요. (웃음) 여기 두면 어쨌든 오시는 분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데 가져가면 못 보잖아요.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서점에 오시는 분들의 예상치 못한 반응이나 일들.
한 아주머니가 오셔서 책을 한참 고르셨어요. 결국 밥 딜런 책이랑 음악 잡지 등 4권을 사 가셨어요. 또 한 분은 아기를 안고 들어오셨어요. ‘뭘 사실까?’ 궁금했는데 강헌 씨 책을 사셨어요. 한번은 거의 9만 원 어치 사 간 아저씨가 계셨는데, 그분은 레드 제플린 책이랑, 비틀스 사진집이랑 이것저것 사 가셨어요. 저는 그런 분들이 반갑더라고요.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고객층이 아닌 사람들. 다양한 나이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오니까 되게 기분 좋았어요. 그리고 이 동네 분위기가 좋아요. 옛날 시골 마을 같은 느낌? 여기 지하에 작업실이 있는데, 최민수처럼 멋있는 아저씨가 있어요. 미술 작업도 하고 빈티지 물건들도 수집하는 분인데 맨날 먹을 거 가져다 주고, 비 오면 부침개 해서 갖다 주시고.

요즘 염리동에서 눈여겨보고 있는 재미난 장소가 있나요?
여기 책방이 두 개 더 있거든요. ‘일단멈춤’이랑 ‘퇴근길 책한잔’. 다 특색이 있어요. 오는 길에 있는 ‘식물성’ 아세요? 식물 팔면서 전시회하고 워크숍도 해요. 카페 ‘머스타드’도 젊은 분이 혼자 엄청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젊은 분들이 와서 자기 색깔대로 하는 것들이 좋다고 생각하죠. 다들 마인드가 ‘돈을 엄청 벌어야지.’ 이런 게 아니기 때문에. 자기 가게가 있으니까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다른 서점과도 서로 우호적으로 지내고 있어요. 지금 분위기가 딱 좋은 거 같아요.

얼마 전 이곳에서 뮤지션 ‘생각의 여름’ 뮤직비디오 촬영을 했고, 이경미 감독이 책을 소개하는 영상을 찍었다고 들었어요. 초원서점의 향후 계획이 궁금해요.
되게 많아요. 일단 초원서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서 기획 공연을 계획하고 있어요. 공간적인 제약이 있기 때문에 어쿠스틱 공연 정도로, 여기서만 볼 수 있는 형태의 공연을 기획하고 있고, 음악과 관련된 수업도 몇 개 기획하고 있어요. 맞다, 지금 필사 모임도 하고 있는데. 7월에 시작했어요. 안 해본 사람들은 되게 지루해하겠지만. (웃음) 진짜 재밌습니다.

그럼 다 같이 조용히 글을 쓰나요?
네. 한번 했는데, 글 읽고, 쓰고, 잠깐 얘기 나누고. 옛날 건전한 청년들이 하던 것처럼. 책을 읽고 어떤 부분이 좋았다고 이야기 나누고 책에 나오는 음악도 같이 들어보고요.

서점을 운영하는 데 힘든 부분도 있을 텐데요.
책 관리 면에서 힘든 건 있죠. 비 오면 엄청 신경 쓰이고, 아직 에어컨도 없으니까. 사람들이 새 책인데 너무 막 다루면 조마조마하기도 하고요. 또, 외부 일정이 있거나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일이 생겨도 여기 있어야 하는 거? 수익창출에 있어서도 고민이 없을 수 없어서 나름의 방식으로 적립 서비스도 만들었어요. 인터넷처럼 10%를 할인해버리면 운영이 안 되니까 바로 적립은 좀 힘들고, 옛날 슈퍼에서 많이 하던 것처럼 스티커를 붙여주는 거예요. 만 원에 하나씩. 9개를 모으면 하나를 그냥 추가로 붙여줘 만 원을 채워 현금처럼 쓸 수 있어요.

초원서점은 책을 판매하는 동시에 다양한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창구 역할도 하고 있어요. 궁극적인 목표가 궁금해요.
사람들이 음악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 많이 누렸으면 좋겠어요. 이상적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음악책이 좋은 게 한 권을 읽으면 엄청나게 많은 음악을 찾아 듣게 되니까. ‘이 노래 아는데, 여기에 이런 뒷얘기가 있었네’ 하는 것도 재밌고요. 음악 가이드북이기도 하지만 역사책이기도 하고, 인간사에 관한 책이기도 하고, 문학책이기도 하고, 입문서가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런 재미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제 바람이자 의무일 것 같고, 제 생존과 연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갑자기 강아지 등장)
이 아이는 ‘해피’인데 하루에 열 번씩 와요. 저기 할머니 댁 강아지에요. 원래 낯을 가렸는데 자기를 예뻐하는 걸 아니까 점점 이렇게 들어오더니 이제는 제 무릎 위로 올라와요.



▶ 초원서점: 서울 마포구 염리동 488-15 1층
인스타그램: @pampaspas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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