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아티스트들의 화려한 무대가 빛났던 올해 제 59회 그래미어워드(Grammy Awards)에서 유독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드레이크, 카니예 웨스트 같은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후보로 있는 본상 부문에서, 정식으로 데뷔한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찬스더래퍼(Chance the Rapper)가 2관왕에 오르는 대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도대체 찬스더래퍼가 누구길래? 힙합 마니아가 아니라면 낯선 이름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그의 수상을 두고 그래미가 인종차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던진 밑밥이라 떠들기도 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찬스더래퍼가 믹스테이프만으로 이뤄낸 그동안의 성과들이다. 그의 음악적 행보를 들여다보기 전에, 그래미 어워드 본상을 당당히 거머쥔 영광의 순간을 먼저 보자.

‘최우수 신인상’과 ‘최우수 랩 앨범상’을 동시에 수상한 찬스더래퍼. 수상 소감으로 "독립이라는 것은 혼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라며 자신이 걸어온 음악의 길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첫 믹스테이프 <10 Day>

힙합이 아닌 다른 길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찬스더래퍼에게 ‘깜짝’ 이력이 포착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출마 때 선거캠프에서 일했던 아버지를 따라 인턴을 한 것. 그대로만 간다면 아버지를 따라 공무원이 되어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살았을 테지만, 사실 그는 학교에서 꽤나 ‘문제아’였다. 일찍부터 힙합 음악에 관심이 많아 힙합 동아리를 결성하고, 마리화나를 소지해 열흘간 학교에서 정학당하는 등 평범함과는 사뭇 거리가 먼 학창시절을 보냈다.

오바마 대선 캠프에서 일한 찬스더래퍼(왼쪽에서 두 번째).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2012년 발표한 첫 믹스테이프 <10 Day>는 찬스더래퍼의 학창시절 경험이 오롯이 담긴 앨범이다. 미국 최대의 믹스테이프 사이트 Datpiff에 공개하자마자 다운로드 수 40만 건 이상을 돌파했다.

찬스더래퍼 <10 DAY> 전곡 듣기 [바로가기]

<10 Day> 수록곡 ’Brain Cells’ 뮤직비디오. 찬스더래퍼의 최근 음악들과는 달리 다소 묵직한 분위기를 풍기는 곡. 깔끔하고 정직한 비트와 탄탄한 플로우가 돋보인다

첫 믹스테이프 <10 Day>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아 올린 찬스더래퍼는 음반사와의 계약 체결 같은 의례적인 음원 발매 방식을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스포티파이, 사운드 클라우드, 애플뮤직 같은 무료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 적극적으로 결과물을 올려 대중들과 일대일로 소통하기 시작한다.

 

도약의 발판, <Acid Rap>

자극적이고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힙합 음악들 사이에서 찬스더래퍼의 곡들이 내뿜는 긍정적 에너지는 더욱 돋보인다. 2013년 발표한 두 번째 믹스테이프 <Acid Rap>의 ‘Good Ass Intro’, ‘Pusha Man’, ‘Chain Smoker’ 같은 수록곡들을 보라. 경쾌한 분위기의 비트 위에 얹어내는 노련한 래핑(rapping)과 긍정적인 에너지의 가사는 ‘어두운’ 힙합에 길들여진 리스너들을 놀라게 한 것은 물론, 힙합 신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Acid Rap> 타이틀곡 ‘Juice’ 뮤직비디오다. 가사 속 Juice는 마시는 주스의 의미를 넘어, ‘리스펙트(존경)’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I got the juice(난 리스펙을 얻었어)”라고 연신 외치는 찬스더래퍼의 당당한 자신감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해피 바이러스를 마구 풍기는 이 믹스테이프는 발표와 동시에 Datpiff에서 100만 다운로드를 달성하며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는 동시에, 평론가들로부터 주목을 받는다. 그해 <롤링스톤(Rollingstone)>지에서 ‘올해의 앨범’ 26위를, <피치포크(pitchfork)>미디어가 꼽은 ‘올해의 앨범’ 12위에 오르기도 했다.

 

굳히기 한판, <Coloring Book>

2016년 발표한 믹스테이프 <Coloring Book>에 수록한 'Angels' 뮤직비디오다. 곡에는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힙합 아티스트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던 찬스더래퍼의 신념이 가사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여기 래퍼들은 계약서를 위해 학위도 포기하지
내 새 음악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춤을 추게 하네
그러니 사람들이 꼬이지, OVO와 계약하라고
이건 하나님이 나를 창조할 때 나던 소리
이걸 들으면 Steve도 애플을 무료로 나눠주지

유명 래퍼인 투 체인즈(2 Chainz)와 릴 웨인(Lil Wayne)이 피쳐링에 참여해 화제를 모은 <Coloring Book> 타이틀곡 ‘No Problem’ 뮤직비디오를 보자. 찬스더래퍼의 장난기 섞인 표정과 긍정적인 바이브를 발산해내는 유쾌한 목소리에 투체인즈와 릴웨인의 타이트한 랩이 더해져 엉덩이를 들썩이지 않고는 못 배길 신나는 곡이 탄생했다.

음악시장은 확실히 변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한 음악감상이 보편화하면서 CD, LP 같은 실물 기반의 앨범 발매는 줄고, 대신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백 개씩 쏟아져 나오는 신보의 파도에 어중간한 신인들은 휩쓸려 사라지기 십상이다. 그런 맥락으로 볼 때 찬스더래퍼는 성공한 래퍼다. 언급했다시피 음원 스트리밍 누적과 믹스테이프만으로 성공을 거뒀다. 그 누구도 쉽게 시도하지 않은 길을 거침없이 헤집으며 마침내 평단의 인정을 이끌어낸 겁 없는 신인 찬스더래퍼의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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