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색소폰은 재즈 음악에서 가장 발라드에 어울리는 로맨틱한 소리를 내는 악기로, 레스터 영, 콜맨 호킨스, 존 콜트레인, 스탄 게츠, 소니 롤린즈 같은 재즈 역사에 길이 남은 스타를 낳았다. 하지만 그들과 필적하는 실력을 갖추고도 저평가된 채 쓸쓸하게 사라진 이들도 적지 않다. 럭키 톰슨(1924~2005)과 행크 모블리(1930~1986)은 한 때 정상급의 테너 색소포니스트로 인정되었으나, 쓸쓸히 재즈 무대에서 사라졌고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노숙자로서 힘든 여생을 보냈다. 이제는 열성 재즈 팬이 아니라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내기도 쉽지 않지만, 그들이 전성기 시절 남긴 명반은 기억된다.
럭키 톰슨(Lucky Thompson)
1940년대부터 스윙과 비밥 무대에서 30여 년 동안 현역 생활을 했던 그는, 콜맨 호킨스와 비교되던 정상의 테너 색소포니스트였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명반 <Walkin’>(1957)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고, 별명 ‘Lucky’와 인기 담배 ‘Lucky Strike’ 디자인을 연계한 자신의 앨범 <Lucky Strikes>(1964)은 명반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는 음반 업계나 프로듀서들을 기생충이라 강하게 비난하며 미국을 떠나 유럽 무대에서 떠돌았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1973년 다트머스 대학에서 잠시 한두 해 음악을 가르치다가 재즈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때부터 그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명확지 않지만, 1990년대 초반 시애틀에서 노숙자로 사는 모습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의 지원을 뿌리치며 여전히 피해망상 증세를 보였고, 그 후에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고생하다가 2005년에 노숙자 보호시설에서 81년의 힘든 생을 마감하였다.
행크 모블리(Hank Mobley)
스윙과 비밥 계열의 럭키 톰슨 이후, 하드 밥 계열에서 가장 저평가된 뮤지션은 행크 모블리였다. 그는 소울에 넘치는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에서도 이름을 날렸고, 존 콜트레인의 후임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 <Someday My Prince Will Come> 녹음에 참여하여 콜트레인과 함께 이름을 남겼다. 1960년대에는 블루노트에서 20여 장의 앨범을 남겼고, 대표작 <Soul Station>(1960)과 <Roll Call>(1960)은 대부분 그의 오리지널 작곡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건강 문제가 항상 따라다녔다. 더군다나 색소폰 주자로서 폐에 이상이 생기면서 파열이 우려되어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없었고, 1970년대 중반에는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10여 년 동안 시카고 지역에서 노숙자로 전전했지만,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는 동료들을 불쑥 찾아와 인사를 나누곤 했다. 옛 동료 듀크 조던이 뉴욕의 작은 클럽 ‘앵그리 스콰이어’(Angry Squire) 공연에 나타나 함께 두 차례 연주했는데, 이것이 생애 마지막 녹음으로 남았다. 그로부터 수개월 후인 1986년,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