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열리는 영화제 중 칸, 베니스,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린다. 영화제 수상 소식 관련해서 주목받는 부분 중 하나는 주연상이다. 국내에서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씨받이>(1986)의 강수연, 칸 영화제에서 <밀양>(2007)의 전도연,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의 김민희가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다. 

세계적인 영화제인 만큼 한 영화제에서 한 번의 상을 받기도 힘든데, 세계 3대 영화제의 주연상을 모두 받은 배우가 있다. 현재까지 4명의 배우가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줄리안 무어, 줄리엣 비노쉬, 숀 펜, 잭 레먼, 네 배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연기는 정량적인 평가가 불가능하기에, 영화제 트로피는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 배우에게 주는 격려에 가깝다. 다만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다는 건 그만큼 많은 이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일 거다. 영화사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새긴 네 배우의 대표작을 살펴보자.

 

잭 레먼, <의문의 실종>

잭 레먼, 이미지 출처 – 링크

잭 레먼은 <트리뷰트>(1980)로 베를린국제영화제, <글렌게리 글렌 로스>(1992)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칸영화제에서 <차이나 신드롬>(1979), <의문의 실종>(1982)로 두 번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미스틱 로버츠>(1955)로 남우조연상, <호랑이를 구하라>(1973)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대표작 중 하나인 <의문의 실종>은 그리스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가 연출한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서 잭 레먼의 남우주연상과 함께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미국에서 온 ‘찰리 호먼’(존 쉐아)과 아내 ‘베스’(시시 스페이식)는 쿠데타로 매일 총성이 들리는 칠레에 살고 있다. 어느 날 찰리가 사라지고, 찰리의 아버지 ‘에드 호먼’(잭 레먼)이 아들을 찾아 칠레에 온다. 호먼과 베시는 찰리를 찾아서 바쁘게 움직이지만 좀처럼 아들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의문의 실종> 트레일러

이 글에 언급된 배우들의 공통점 중 하나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는 거다. 잭 레먼을 코미디 영화에 주로 나오는 배우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의 연기는 <의문의 실종> 같은 사회 비판적인 드라마에서도 빛난다. 아들을 이해 못 하던 아버지가 아들의 실종을 계기로 아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아들을 찾는 과정은 아들 세대 전체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극의 전개에 따라 달라지는 잭 레먼의 표정에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혼란함을 느낄 수 있다.

 

숀 펜, <데드 맨 워킹>

숀 펜, 이미지 출처 - 링크

숀 펜은 <데드 맨 워킹>(1995)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더 홀>(1997)로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헐리벌리>(1998)와 <21그램>(2003)으로 두 번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의 수상 기록 외에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스틱 리버>(2003)와 <밀크>(2008)로 두 번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데드 맨 워킹>에서 숀 펜은 사형수 역할을 맡았다.

강간과 살인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된 ‘매튜 폰슬렛’(숀 펜)은 빈민가에서 희망의 집을 운영하는 수녀 ‘헬렌’(수잔 서랜든)에게 자신의 힘든 상황을 토로하는 편지를 보낸다. 헬렌은 매튜와 만나보기로 하고, 매튜는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한다. 헬렌은 매튜를 위해 변호사를 구하는 등 매튜의 사형을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매튜의 사형을 찬성하는 여론은 점점 거세진다.

<데드 맨 워킹> 트레일러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데드 맨 워킹’은 사형수가 형장으로 이동하는 걸 말한다. <데드 맨 워킹>은 사람이 저지르는 살인과 사형 제도 안에서 일어나는 살인을 함께 보여준다. 숀 펜과 <데드 맨 워킹>을 통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수잔 서랜든이 호흡을 맞추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연기는 뻔할 수 있는 장면조차 특별하게 만든다. 좋은 연기란 혼자 돋보이는 게 아니라, 장면에 맞게 다른 배우들과 호흡하는 것임을 <데드 맨 워킹> 속마음을 울리는 장면들을 통해 느낀다.

 

줄리엣 비노쉬, <사랑을 카피하다>

줄리엣 비노쉬. 이미지 출처 – 링크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 줄리엣 비노쉬는 <세 가지 색:블루>(1993)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사랑을 카피하다>(2010)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로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까지 받았다.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사랑을 카피하다>는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처음으로 이란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촬영한 작품으로, 줄리엣 비노쉬는 극 전체를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홀로 아이를 키우며 가게를 운영하는 ‘엘르’(줄리엣 비노쉬)는 책 강연을 위해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온 영국 작가 ‘제임스’(윌리엄 쉬멜)에게 팬임을 밝히고, 하루 동안 동네를 소개해주기로 한다. 둘은 우연히 진짜 부부인 척 연기하고, 이들의 역할극은 점점 진지해진다.

<사랑을 카피하다> 트레일러

<사랑을 카피하다>는 쉽게 정의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엘르와 제임스가 부부를 연기하는 건지, 실제로 부부인지 장담할 수도 없다. 두 사람의 수다는 가벼운 장난부터 삶에 대한 사유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사랑을 카피하다>를 분석하려다가 어느새 영화 속 시간에 녹아드는 걸 느낀다면, 그건 아마 줄리엣 비노쉬의 연기 덕분일 거다. 연기라는 걸 알지만 어느새 영화 속 캐릭터에 공감하게 만드는 게 배우의 힘이라는 걸 다시금 느끼면서 말이다.

 

줄리안 무어, <맵 투 더 스타>

줄리안 무어, 이미지 출처 – 링크

줄리안 무어는 <디 아워스>(2002)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파 프롬 헤븐>(2002)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맵 투 더 스타>(2014)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의 수상 기록 외에도, <스틸 앨리스>(2014)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맵 투 더 스타>에서 줄리안 무어는 불안에 시달리며 할리우드에 사는 배우를 연기한다.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하바나’(줄리안 무어)는 배우였던 어머니가 출연한 영화의 리메이크작에 캐스팅되기를 바라고 있다. 캐스팅을 두고 경쟁하는 배우들만 신경 써도 벅찬 가운데, 죽은 어머니의 환영이 자꾸 하바나 앞에 나타난다. 플로리다에서 온 ‘애거서’(미아 와시코프스카)는 우연한 인연을 통해 하바나의 조수가 되고, 애거서와 관련된 사연이 조금씩 밝혀진다.

<맵 투 더 스타> 트레일러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맵 투 더 스타>는 화려해 보이는 할리우드의 허상을 인물들이 품은 불안을 통해 보여준다. 줄리안 무어가 연기한 하바나는 밖에서 늘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일상에서는 죽은 어머니의 환영을 보는 등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린다. 불안한 마음을 감춘 채 불안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배우의 일이라면, 배우는 얼마나 고된 직업인가. 쉴 틈 없이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해 온 줄리안 무어조차도 연기하는 매 순간은 불안과 싸우고 있지 않을까.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