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동북아 루저들의 별’ 주성치의 연출 복귀작 <미인어>는 개봉하자마자 중국 역대 흥행기록 1위를 갈아치우고 누적 관객 수 1억 명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인어’와 ‘부동산 재벌’이 주인공인데도 말이다! 엉뚱한 설정에 짙은 페이소스와 원초적 웃음을 더한 독보적 매력으로 이 세상 수많은 루저, 언더독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생 영화’를 남긴 주성치의 대표작 네 편을 살펴보자.

 

<희극지왕>

喜劇之王 ㅣ 1999 ㅣ 감독 주성치 ㅣ 출연 주성치, 막문위, 장백지

대사 한 마디 없는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 만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인 ‘사우’(주성치). 필요 이상으로 배역에 몰입한 나머지 엉뚱한 연기 해석을 남발하는 엑스트라를 촬영현장에서 반길 리 없다. 시체 연기를 해야 할 때 걸어 다니다가 또 쫓겨난 사우는 마을복지회관에서 무료 연기 강좌를 시작하고, 거기서 만난 나이트클럽 호스티스 ‘피우’(장백지)와 좋지 않은 첫인상으로 인연을 시작한다. 첫사랑 실패 후 방황하는 여자와 꿈을 위해 발버둥 치는 남자의 처절한 인생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코미디.

<희극지왕> 명장면

 

<소림축구>

少林足球 ㅣ 2001 ㅣ 감독 주성치 ㅣ 출연 주성치, 조미, 오맹달

그야말로 ‘공포의 외인구단’ 코믹 버전 바이블. 퇴물이 된 왕년의 스타플레이어가 사회 잉여 인간 (aka 전 소림사 무술 유단자)들을 모아 축구팀을 결성하는 이야기다. 주성치는 사부가 죽고 난 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씽씽’으로 역시 주연을 맡았다. 축구계로부터 버림받은 ‘명봉’(오맹달)과 씽씽의 인연으로 결성된 축구팀 멤버는 모두 옛 소림사 제자들. 한때 서슬 퍼렇던 풍모는 온데간데없고 외모비관론자, 뚱떙이, 박봉의 청소부, 방콕론자, 돈벌레 등으로 변해 있다. 쿵푸를 축구에 접목한 요상한 경기 장면을 보다 보면 스트레스가 축구공처럼 펑펑 날아가는 신기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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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허슬>

功夫 ㅣ 2004 ㅣ 감독 주성치 ㅣ 출연 주성치, 임자총, 원화, 원추

<소림축구>가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두자 할리우드는 주성치를 주목하고, 그 첫 번째 진출작이 바로 <쿵푸허슬>이다. 194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무법조직 도끼파에 들어가 폼나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시궁창인 건달 지망생 ‘싱’을 주성치가 직접 연기했다. 거대 자본을 투입하여 완벽히 재현한 상하이 거리와 하층민 마을 ‘돼지촌’을 배경으로, 주성치 특유의 슬랩스틱 코미디와 정통 무협 영화를 방불케 하는 고수들의 쿵푸가 어우러진 코미디 명작. ‘사자후’를 내지르는 돼지촌 여주인, 현악기를 사용해 소리 없이 상대의 목을 베는 킬러 2인조,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후 혈이 뚫려 절대 무공을 가지게 된 주인공 등 다양한 인물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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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어>

美人鱼 ㅣ 2016 ㅣ 감독 주성치 ㅣ 출연 덩차오, 임윤

안데르센이 어린이들에게 ‘인어공주’를 소개한 이후 많은 아티스트들이 인어와 인간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노래했지만, 모르긴 몰라도 무협 버전의 인어공주는 주성치가 세계 최초일 것이다. 인어들의 은신처인 맑고 아름다운 ‘청라만’이 부동산 재벌 ‘류헌’(덩차오)에 의해 개발될 위기에 놓이자, 인어들은 가장 아름다운 인어 ‘산산’(임윤)을 지상으로 보낸다. 미모를 이용해 류헌을 사로잡은 후, 영원히 ‘없애 버릴’ 계획을 세운 것. 그러나 둘은 사랑에 빠져버리고, 예측할 수 없는 엉뚱한 전개가 이어진다. 아쉽게도 주성치가 주연을 맡진 않았지만, 인어와 사랑에 빠지는 부동산 재벌보단 감독 자리가 어울린다는 그의 판단은 수긍할 만하다. 중국의 1억 관객에 비해 국내에서는 4천명 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중국과 웃음 코드가 다른 건지, 아니면 볼 사람들은 이미 다른 경로를 통해 다 봤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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