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있을까?’라는 물음표를 떠올려본다. 삶을 살아내기 위해, 지친 몸을 낯선 곳에 던지고 싶은 그런 마음. 우리는 숲으로, 바다로, 강으로 길을 나선다. 국경을 넘고 하늘을 날며 지금의 삶을 낯선 아름다움과 당혹스러운 부적응 속에 빠트리고 싶어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은 없을지도 모르는데, 이미 우리가 살아버렸을지도 지금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고고학자처럼 지나온 세월의 흔적에서 낯선 세상을 발견하려 수천만 보의 길을 걷고, 애써 평소 가지 않던 처음 보는 골목길을 택해 길을 찾는다.

이런 기분에 휩싸일 때면 항상 비행기표를 샀다. 혹은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뱅글뱅글 돌곤 했다. 구름이 번져가는 형태와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의 흐름을 관찰하러 떠났다. 하지만 요즘 같은 팬데믹 시대에 그런 낯선 걸음은 허용되기 어렵다.

어디로 떠나고 싶은 기분, 조급하고 초조한 마음을 새로운 세상으로 잠시 초대해줄 그런 목소리. 초록색, 파란색, 하얀색, 노란색, 하늘색, 상아색, 자주색, 세상의 색을 눈이 아닌 귀로 느끼고 볼 수 있는 그런 노래들을 소개한다.

 

1. SURL ‘Ferris Wheel’

어느 도시든 하나씩 존재하는 대관람차. 하늘에서 구름을 마주하고 땅에서 설렘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표정을 마주하는 이 놀이기구처럼 몽글몽글 새로운 기분에 태워주는 곡 ‘Ferris Wheel’. 곡 전반의 드럼 소리가 대관람차를 타고 떨리는 심장 박동처럼 기분을 고조시키고 보컬 설호승의 맑고 상쾌한 고음은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밤하늘의 별을, 한낮의 구름에 손을 내밀고 싶게 만든다.

말씀 설(說)자를 쓰는 밴드, 98년생 동갑내기 소년들이 모인 밴드 SURL은 이름처럼 곡을 듣는 순간 내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청춘의 빛남과 아름다움의 순간들이 별자리처럼 수놓아진 어느 청푸른 여름의 한 자락 속에 황홀한 풍경을 보여주는 대관람차처럼 새로운 기쁨을 안겨주는 아름다운 곡 ‘Ferris Wheel’.

“우리 음악을 듣고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거나 어떤 상황들에 놓였을 때 공감을 하며 들어주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 SURL의 설호승, <Stage&FLO> 오프닝 멘트

 

2. 김뜻돌 ‘이름이 없는 사람‘

흔히 여행을 떠날 때 나를 찾으러 간다고 말한다. 나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들과 타국의 언어들 사이에서 무명의 나그네가 되어 현실의 나를 잠시 버려둔다. 무명의 나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 늘 불리던 이름을 숨기고 물에서, 나무에서, 들꽃 사이에서 새로운 나의 이름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물방울 방울에는 이름이 없고, 나무 한 그루 그루마다 이름은 없다. 이름이 없고 각기 모양도 다르지만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흩날리는 들꽃처럼 이름이 무엇이 중요할까?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기적인가. 무명의 나는 근사하고 새로운 나 찾기가 아닌 본래의 나를 다시 찾아내 계속 살아가길 응원한다.

‘돌 하나에도 뜻이 있다'는 뜻의 김뜻돌. 그의 청아한 목소리와 산과 들에 부는 바람 같은 연주를 듣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풀밭에 누워 세상의 살아있는 소리를 귓가에 하나하나 담고 싶어진다.

“이름이 없는 사람 길을 떠날 때 손 달린 가방을 주머니에 넣고 이정표 하나 없는 지도와 함께 눈을 감은 채 길을 찾는다” - 김뜻돌 ‘이름이 없는 사람' 중에서

 

3. 다린 ‘우리의 상아는 구름모양’

살랑이는 바람이 불던 날, 나와 네가 서로의 눈을 올곧게 바라보며 웃던 날. 이른 아침 서서히 상아색으로 물들어 가던 이불 아래 나를 지켜주던 너의 따뜻한 온기. 길을 걷다 발을 멈추고 지는 태양의 짙은 붉음을 지켜보다 석양빛으로 칠해진 서로의 뺨을 보며 미소 짓던 날. 우리의 삶 속에는 마음에 든 시 한 구절 같이 마음속에 몰래 적어둔 어여쁘고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아도 그런 마음의 구절들을 읊어 내다보면 충만하고 따스한 기분 속에 현재를 잊고 잠들 수 있다.

사랑은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행위 중 가장 빛나고 고귀한 것이다. 사랑은 나와 너를 탐구할수록 인간의 신비로움을 깨닫고 네모난 구름, 세모난 태양, 보랏빛 물, 세상을 색다르게 보게 한다. 사랑은 아마 오직 한 사람씩에만 유효한 장소로 떠나는 가장 특별한 여행일 것이다. 짙은 밤하늘에 커다랗게 떠오른 보름달같이 충만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다린. 추워지는 가을의 밤, 한 편의 시 같은 가사 속에 우리의 사랑의 모양을 그려본다.

“나의 꿈이 되어줘 아침이 와도 지지 않는 별처럼 나의 꿈이 되어줘 아침이 와도 지지 않는 별처럼” - 다린 ‘우리의 상아는 구름모양’ 중에서

 

4. 수잔 ‘깜빡’

“청춘은 다 고아지. 새벽이슬을 맞고 허공에 얼굴을 묻을 때 바람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지. 이제 우리 어디로 갈까. 이제 우리 무엇을 할까.” - 이제니 시인의 '발 없는 새' 중에서

헛된 비유의 문장들을 이마에 새기고 어디에도 소용없는 문장들이 쌓여만 갔다. 깜빡깜빡 가진 걸 잃어버리고 허둥지둥거리던 어린 날의 나. 부모 없는 아이처럼 언제나 서럽게 울고, 내 집 앞을 처음 온 것처럼 길을 잃고, 무언가 부족한 듯, 모자란 듯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무언가에 실패하거나 누군가에게 실연당해 스스로를 부정하고 탓했던 날들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의 탓을, 나의 부족했음을 포용하고 새롭게 길을 떠난다.

가는 빗줄기 같고 흙탕물로 가득한 도랑 같던 날들이 모여 새롭고 넓은 바다에 다다른다. 깜빡깜빡하던 어린 나는 앞으로 어떤 어른의 모습으로 세상을 여행하게 될까? 수잔의 시원한 미소와 목소리가 짧았던 여름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듯한 '깜빡' 라이브.

“먼 걸음 하시지 않게 더 가깝고 넓은 바다가 되겠습니다. 피서 오세요.” - 수잔 <Stage&FLO> 오프닝 멘트

 

Writer

음악 콘텐츠 기획자, 하루키스트, Psychedelic rock. <중경삼림>의 영원한 팬. 읽고 듣고 보고 쓰는 것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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