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뉴캐슬에서 목수로 일하는 남자. 어느 날 그는 평소 앓던 심장병이 악화하여 더 이상 일을 하면 안 된다는 병원의 진단을 받는다. 수년 동안 아내 병간호를 하며 근근이 살아온 그는 당장 돈을 벌지 않으면 생계를 잇기 어려운 처지다. 아, 다행히 국가엔 이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만든 고용복지기관이 있고, 보조금 제도가 있다. 그는 곧바로 고용센터에서 지급하는 질병수당을 신청한다. 그런데, 그에겐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

이 나라가 만들어 놓은 ‘제도’에 의하면, 그는 질병수당을 받을 수 있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무언가 잘못된 건가 싶어 고용센터에 전화를 걸어 보지만 한 시간 넘게 이어진 통화연결음 끝에 힘겹게 얻은 답은 결국 담당자에게 문의하라는 것. 기관에서 다시 만난 담당자라는 사람은 인터넷으로 항고를 신청하라고 참 친절하게도 알려준다. 누구보다 보조금이 절실한 그는 마우스의 ‘마’ 자도 모르는 아날로그 세대의 노인.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신청했지만, 그는 끝내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도대체, 왜?

답답한 의문을 거듭 품게 하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은 바로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다. 한편, 궁핍한 형편의 한부모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억울한 이유로 보조금을 받지 못한 케이티는 복지기관의 공무원에게 힘없이 항의해보지만, 결국 식료품 배급소에서 배고픔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두 인물은 모두 사회로부터 소외된 힘없는 약자들이다. 그런 약자를 돕는 것은 서로 비슷한 처지의 이웃뿐. 이웃의 따뜻한 도움은 물론 감동적이다. 그러나 영화는 감동 이면의 씁쓸함에 더욱 주목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외친다. 영국 정부의 복지 제도와 관료적 절차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말도 안 되는 ‘원칙’인지를. 그러한 비인간적인 원칙이 낳은 결과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그리고 이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도, 영화도 아닌 현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들은 특유의 유머와 조롱, 직설적인 화법으로 풀어내어 마치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현실적인 공감을 얻는다. 감독이 평소에 기성 배우보다 덜 알려진 비전문 배우를 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도 마찬가지.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던 데이브 존스는 노동 계층이었던 아버지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연기함으로써 다니엘 블레이크를 더욱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또한 어릴 적 런던의 소도시로 이사해 살던 경험이 있는 헤일리 스콰이어는 형편 때문에 낯선 도시로 이사 온 상황에서 현실을 직시하며 희생하는 엄마 케이티로 완벽히 분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켄 로치 영화의 진정한 결말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던 2016년 칸영화제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건, 50여 년간 이주민, 노동자 같은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거장 감독 켄 로치에 대한 존경의 인사일 것이다. 칸영화제 상영이 끝난 후 객석에서는 10분간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그러나 거장이 진정으로 원한 박수는 그런 게 아닐 것이다. 그보단 영화 속 다니엘 브레이크가 고용센터 건물 벽면에 자신의 의견을 락카 스프레이로 휘갈길 때 터져 나오는 길거리 사람들의 환호 같은 것, 그런 것을 원한 게 아닐까. 거장은 그렇게 마지막 환호를 받으며 그동안 한결같이 바랐던 소망을 더 크게 외치고 떠났다. “더 이상의 다니엘 블레이크는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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