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란 주관을 섞지 않고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미학에서는 ‘미적 관조’라는 말로, 대상을 개념이나 논리보다 직접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정신 작용 및 그 작용의 결과를 설명한다. 예술 창작이 대개 미의식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는 데 집중한다면, 미적 관조는 대상이 어떤 것이든 그것에 의식을 집중하고 충실하게 수용하는 데 목표를 둔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전시와 공연이 얼어붙은 것만 지금 이 순간에도, 뜻깊은 예술 창작과 시선은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어떤 시선, 관조만으로 창조되는 세계가 있다. 

* <월간미술> 용어사전 참조

 

여자의 일상을 관조하다, <배미정 개인전: 아는 여자>

배미정 작가는 작품에 소설을 연계해 ‘어떤 여자’들에 관해 말한다. 그는 지난해 여름부터 <아는 여자>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자신이 사랑한 여자들의 일상과 공간, 그리고 스스로 기억하고 바라보는 그들에 관해 좀 더 내밀하고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 프로젝트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직접 단편소설 저술도 병행하고 있다. 

“어떤 순간은 말하기 전에 튀어 오르는 그림이 되어 다가오는가 하면 말로 이야기로 주절주절 떠들고 싶은 장면들이 있다.”(단편소설 <아는 여자> 서문 중에서) 

대상과 대상 간 관계성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배미정의 작업은, 타인의 일상을 관조할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작가의 시선도 함께 고민한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여자들의 일상과 이를 향한 작가의 관조 사이에 환상의 공간이 존재하고, 그 환상의 공간은 마치 신기루처럼 다가온다. 전시는 10월 14일이며, 소설은 2021년 상반기 목수책방에서 출판 예정이다. 

“달은 보이지 않을 때도 존재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안다. 달처럼 내 몸 속에는 내가 알고 사랑하고 겪어왔던 모든 여자들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나는 내가 겪어왔던 모든 여자들로 만들어진 존재이며 그렇게 느끼고 있다. 세상의 언저리에서 한 번도 제대로 보이지 않다가 사라진 그녀들 혹은 여전히 중심 아닌 변두리에 있지만 삶을 지속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애쓰며 사랑하고 살아가는 그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것이 내가 그녀들을 사랑하는 방식이며 애도하고 기억하는 방식이다. 
내 손톱이 된 그녀 내 머리카락이 된 그녀 내 젖가슴이 된 그녀들의 이야기다.  계속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로 존재하는 달의 순환 주기로 아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해본다.” (<아는 여자> 프롤로그)

배미정 ‘꽃물 들이기 전’(2020), 스페이스 영등포
배미정 ‘돌멩이를 목에 두른 새’(2020), 스페이스 영등포
배미정 ‘죽지 않은 나무’(2020), 스페이스 영등포

 

<배미정 개인전: 아는 여자>

일시 2020년 9월 24일~10월 14일(수) / 월요일 휴관 
시간 12:00~18:00 
장소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신로 22-14 1층)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홈페이지

 

 

대상과 기억의 경계를 관조하다, <권대훈 개인展 : Still in the Forest(스틸 인 더 포레스트)> 

권대훈 ‘Still in the forest’(2020), 아뜰리에 아키

권대훈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찰나’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초창기 작품 활동부터 이어왔던 이미지와 대상에 대한 관조 과정 및 결과를 선보인다. 그 시작은 10여 년 전부터 그린 연필 드로잉이다. 권대훈은 어떤 대상을 바라본 후 기억 속 그것의 관념적 이미지를 드로잉으로 남기고, 이를 조각으로 제작해 실제 대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반복해왔다. 완성된 조각을 다양한 색으로 채색하는 과정에서는 실제 대상과 작가의 이미지가 모호한 경계를 유지함으로써 그것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고는 했다. 

전시 제목이자 이번 개인전의 메인 작품인 ‘Still in the forest’는 그가 숲에서 길을 잃었던 경험을 되살려, 당시 숲 속 대상들이 마치 인물의 형상처럼 보였던 순간의 미묘한 심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간 작가가 고민해온 대상과 이미지에 대한 연구가 가장 심화한 형태로 드러난 작품으로, 약 10,000개의 작은 픽셀로 이루어진 이미지가  빛의 방향과 변화에 따라 사람의 형상 혹은 숲의 이미지로 변화해 눈에 비친다. 작품 속에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는 작가의 당시 감정과 심리가 녹아들어간 것이다. 저마다 분주함과 기다림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기억 속 한 장면이 절대 평면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현실의 온전한 대상으로 지각할 수도 없다. 결국 기억 속 장면은 시선과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교와 동 대학원 조소과 졸업 후 영국 UCL 슬레이드 미술학교(The Slade School of Fine Art)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사물과 대상을 향한 리얼리즘 시각으로 뜻밖의 초자연적인 장면을 표현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세계의 인정을 바다 받아 2011년 한국인 최초로 영국왕립미술원의 현대미술 조각 부문 상인 '잭 골드힐 조각상(The Jack Goldhill Award)'을 받기도 했다. 

전시회 전경, 아틀리에 아키
권대훈 ‘Drawing 2’(2008~2009), 아뜰리에 아키
권대훈 ‘Drawing 2-IV’(2020), 아뜰리에 아키
권대훈 ‘Drawing 5’(2008~2009), 아뜰리에 아키
권대훈 ‘Drawing 5-I’(2020), 아뜰리에아키

 

<권대훈 개인展 : Still in the Forest(스틸 인 더 포레스트)> 

일시 2020년 9월 11일~10월 17일(토) / 일요일 휴관 
시간 10:00~19:00
장소 아뜰리에 아키 (서울특별시 성동구 서울숲2길 32-14 갤러리아 포레 1층)
전화 02-464-7710 / 070-4402-7710
메일 aki@atelieraki.com 
*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예방과 방문객 안전을 위해 메일과 전화로 사전예약제 진행 

아뜰리에 아키 홈페이지

 

 

암에 걸린 여자의 몸을 관조하다, <SHINING WOMAN #cancerbeauty>

일본의 시선도 하나 소개한다. 올해 초 인디포스트에 소개했던 작가 히데카 토노무라(Hideka Tonomura)(링크)가 최근 준비해온 프로젝트의 전시 소식을 직접 알려 왔다. 전시 제목은 <SHINING WOMAN #cancerbeauty>으로, 여성의 상처나 욕망 등 세상의 편견이나 기존 사회의 시선에 의해 감춰졌던 것들을 내밀히 탐구해왔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암에 걸린 여성의 몸을 관조하고 있다.

토노무라의 관심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했다. 스스로 자궁 경부암에 걸려 병마와 싸우게 된 것. 그는 좌절했지만, 동시에 용기를 냈다. 작가는 힘 주어 말한다. “이 프로젝트는 여성의 ‘무언의 시위’”라고. “우리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손에 얻었다”고. 그의 말처럼 오랜 인류 역사 속에서 여성의 몸은 철저히 대상화된 존재였다. 그러한 시선 아래 자궁, 난소, 유방 및 머리카락을 잃는 것은 곧 여성성을, 나아가 개인의 존엄을 잃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토모무라는 아픈 여성의 숨겨진 몸과 흉터를 들추어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고 싶었다. 여성성은 신체나 특정 신체 부위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고. 몸의 모든 것은 삶을 선택하는 증거라고. 그의 작품 속에서 여성의 몸은 그렇게 빛나고 있다.

<SHINING WOMAN #cancerbeauty>의 주제는 세 가지로 나뉜다. <命のポートレート/Portraits of Life>(생의 초상화), <生のポートレート/Proof of Life>(생의 증명), <魂のポートレート/Portraits of the Soul>(영혼의 초상화). 작품을 담은 사진집은 10월 25일 출간 예정이며, 전시는 10월 23일부터 11월 14일까지 도쿄에서 펼쳐진다. 그의 이전 프로젝트 <mama love>는 2021녀 프랑스 파리의 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에서 전시 예정이다.

 

<命のポートレート/Portraits of Life>(생의 초상화)

 

<生のポートレート/Proof of Life>(생의 증명)

 

<魂のポートレート/Portraits of the Soul>(영혼의 초상화)

1979년 고베에서 태어난 토노무라 히데카는 어머니의 불륜을 기록한 2008년 문제작 <mama love>를 첫 화보로 출간해 자신의 깊은 고민과 고통을 드러냈다. 한때 신주쿠 가부키초에서 일하며 주변 사람들과 자신의 삶을 기록하기도 했다. 근작 <orange elephant>(2015), <cheki>(2018), <die of love>(2018) 등에서 그의 이전 작품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히데카 토노무라 홈페이지

 

암에 걸린 여자의 몸을 관조하다, <SHINING WOMAN #cancerbeauty>

일시 2020년 10월 23일(금)~11월 21일(토)
장소 Zen Foto Gallery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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