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비트>는 재즈 베이시스트 게리 피콕(Gary Peacock)의 사망 소식을 보도하면서 그를 “실험적인 베이시스트”라 표현했고, NPR은 “다재다능하고 시대를 앞선”이라는 형용사를 붙였다. 사망 소식을 처음 전한 이는 오랜 동료인 재즈 드러머인 잭 드조넷으로, 사망 원인은 밝히지 않았지만, 가족들 앞에서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다. 1935년생으로 원래 피아노와 드럼을 연주했던 그는, 군대 밴드에서 뜻하지 않게 베이시스트의 결원이 생기면서 그때부터 베이스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중도에 음악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명상과 일본어를 배우며 3년을 보내기도 했고 귀국 후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여 관련 일자리를 찾기도 했지만, 다시 음악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재즈 베이시스트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다사다난했던 음악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몇 장의 음반을 되짚어 보았다.

 

빌 에반스 트리오 <Trio 64>(1963)

음반 <Trio 64>에 수록한 ‘Little Lulu’(1940년대 인기 만화 주제곡)

젊은 시절 로스앤젤레스에 살면서 첫 아내를 얻은 게리 피콕은, 1962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빌 에반스, 폴 모션 등과 피아노 트리오에서 연주했고, 1964년에는 레이 브라운을 대체하여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서 두 달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빌 에반스는 첫 트리오 멤버였던 스콧 라파로(Scott LaFaro)가 비운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그 충격에서 벗어나던 즈음이었다. 에반스는 예전의 드러머 폴 모션을 찾았고, 스콧 라파로의 친구 게리 피콕을 소개받아 제2기 피아노 트리오를 구성하였다. 1963년 12월 19일에 녹음된 이 음반은 팝 명곡을 피아노 트리오 형식으로 재해석한 음반으로 빌 에반스의 명반 중 하나로 꼽힌다.

 

앨버트 아일러 트리오 <Spiritual Unity>(1965)

앨범 <Spiritual Unity>에 수록한 대표곡 ‘Ghosts’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할 때 오넷 콜맨의 프리 재즈에 깊은 영향을 받았던 게리 피콕은, 뉴욕으로 건너와 앨버트 아일러(Albert Ayler)와도 함께 활동했다. 그는 존 콜트레인, 오넷 콜맨에 이어 1960년대의 뉴욕 프리재즈 운동을 주도하던 인물이었다. 게리 피콕은 앨버트 아일러의 대표 앨범 <Spiritual Unity>와 <Spirits Rejoice>(1965)에서 베이스를 연주했지만, 그와의 협연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5년 후 앨버트 아일러는 뉴욕 이스트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어 36년의 이른 생을 마감했고, 경찰은 자살로 결론을 냈으나 마피아에 의한 타살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스탠더드 트리오 <Standards, Vol 1>(1983)

스탠더드 트리오 ‘Oleo’ 연주 실황(도쿄, 1993)

게리 피콕은 뮤지션 생활과 마약으로 피폐해진 삶을 치유하기 위해 1960년대 말 일본으로 건너가 3년을 지냈고, 미국에 돌아와서도 워싱턴대에 입학해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음악 외적인 삶을 즐겼다. 그러다 ECM 맨프레드 아이허 대표의 제안으로 전에 함께 연주한 적이 있던 키스 자렛과 잭 드조넷을 다시 만나 3일 동안 스튜디오에 머물며 피아노 트리오 녹음을 하였다. 당시 유행하던 새로운 컨템포러리 대신 재즈 스탠더드 곡들을 선정하여 녹음했는데, 이때부터 이들을 스탠더드 트리오(Standards Trio)라 불렀다. 세 사람은 함께 <Standards, Vol 1>(1983)부터 <Somewhere>(2009)까지 20여 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ECM을 대표하는 정상의 피아노 트리오로 군림하였다.

 

게리 피콕 트리오 <Tangents>(2016)

게리 피콕 트리오의 리허설 연주 실황(2017)

30여 년에 걸쳐 함께 활동한 스탠더드 트리오는 2014년 11월 30일 뉴저지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공식 해산했다. 해산 후 키스 자렛의 활동은 중단되었지만, 게리 피콕은 자신보다 젊은 피아니스트 마크 코플랜드(Marc Copland), 드러머 조이 배런(Joey Baron)과 함께 새로운 피아노 트리오를 구성하고 연주 활동을 계속했다. 나이 팔십을 기념하여 <Now This>(2015)를 냈고 이어서 <Tangents>(2017)를 냈는데, 대부분 그의 오리지널 레퍼토리로 채웠다. 앨범 <Tangents>는 70여 년에 이른 뮤지션 경력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