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려고 노력하기 싫은 밤이 있다. 침대에 닿은 내 뺨의 무게가 오늘따라 왜 이리 거슬리게 무거운지. 모두가 잠든 어둠 속에 끊임없이 작동하는 집 안 사물들의 소리는 왜 이리 큰지.
창문에 부딪히는 바람의 소리는 언젠가 나를 찾아왔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이불 아래 보이는 나의 손과 발에서 지나간 이의 없는 형체를 겹쳐 그리다 어둠 속에 점점 시력을 되찾아 갈 때 즈음 그것이 나 홀로임을 인지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 불을 켠다. 창문을 연다. 맞은편 아파트에 듬성듬성 켜진 불빛 속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하나둘 불빛이 잦아들 때까지 창밖을 보다가 여전히 빛을 잃지 않는 창문을 바라보며 그 속의 사람이 잠이 오지 않는 나의 오늘 밤을 함께 지새워 줄 것으로 생각한다.
향이 증발한 여름, 반대로 서서히 깊어가는 가을의 밤을 느낀다. 미지근한 이불의 온도와 목 끝을 스치는 조금 차가운 공기. 매연으로 가득 찬 메마른 도시에서 아직 멸종되지 않은 풀벌레의 생명력이 살아있는 소리. 덜 마른 내 머리카락의 린스 향. 젖은 머리로 약간 눅눅해진 베개. 여전히 반대편에서 꺼지지 않은 타인의 불빛.
쓸쓸한 도시의 가을밤, 당신과 함께 밤을 지새워줄 곡들을 소개한다.

 

1. dosii ‘추억 속의 그대’

한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니체는 말했다. 환한 빛은 옅고 넓게 세상을 비추지만, 밤의 어둠은 그 시작이 어디인지, 그 끝은 어딘지, 그 어느 곳이든 어둠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은 없다. 도시의 밤은 그 깊은 어둠 속에 인공적인 가짜의 빛을 만든다. 가짜는 허무하고 가짜는 텅 비고 가짜는 진심을 담을 수 없다.

음악을 디깅 하고 시티팝을 사랑하는 리스너들에게 의해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발견된 dosii의 음악은 일본 버블경제의 시티팝과 달리 가짜의 빛을 탐하는 오늘날 도시, 2020년 서울의 밤을 닮았다. 원해도 가질 수 없고,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허무한 꿈같은 가짜의 빛.

“도시 속에 살아가면서 저마다 느끼는 쓸쓸함과 관계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 dosii의 전지혜, <stage&FLO>

 

2. 케니더킹 ‘I get by’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머릿속에는 하나둘 과거의 나의 과오 혹은 끝자락에서 서로를 힐난했던 실패한 관계에 대해 떠올린다. 또한 나의 신뢰를 무너뜨렸던 어쩔 줄 모르는 눈빛과 싸늘히 식어 말라가는 입술을 떠올린다. 그러한 기억들이 한 방울 한 방울 방안을 채우고 잠들지 못한 나는 차오른 기억 위로 두둥실 떠 올라 과거 속을 유영한다. 이 세상에 진정 무너지지 않는 견고하고 영원한 관계가 존재할까? 우리는 모두 완벽하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적 어떠한 관계에 미쳐있는지도 모른다. 지구가 자전하듯 변하지 않을 그런 무언가.

케니더킹의 앨범 제목은 그 중간 어디쯤 'Somewhere In Between'이다. 그때로 돌아가면 널 만나지 않을 거라는 ‘I get by’의 가사는 사실 미움과 그리움 그 중간 어디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잠들지 못하고 생각의 꼬리를 물던 어느 밤이 떠오른다.

“If I could go back in time I wouldn’t have met you”(난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널 만나지 않을 거야.) - 케니더킹 ‘I get by’

 

3. 지윤해 ‘개의 입장’

우리는 추억이란 영화 속의 배우를 사랑해 허공에 손을 휘젓고 입술을 깨물고 꼴사납게 운다. 남이 보면 바보 같고 정신이 나간 사람 같겠지만 허공에 내미는 손은 과거의 닿지 않는 사랑을 좇고 있다. 영화는 끝났지만, 영화관을 나서는 그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모두가 떠나간 좌석에 홀로 앉아 사라진 영화 속 배우를 생각한다. 바보 같고 모자란 우리의 몸뚱이는 다음날 또다시 영화관으로 향한다. 우리는 영화 속 배우를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이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과거의 사랑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개이든 주체가 누구이든 상관없다. 지윤해는 닿을 수 없고 과거로 변해버린 사랑을 노래한다. 미묘하게 떨림이 있는, 소년처럼 읊조리는 목소리와 한밤의 꿈 속으로 안내하는 베이스 소리, 사이키델릭함으로 빛나는 지윤해의 '개의 입장'

<stage&FLO> 무대에서는 초호화 세션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어쿠스틱 기타에 오존(O3ohn), 일렉트릭 기타에 실리카겔 김민수, 드럼에 전 장기하와 얼굴들의 전일준이 함께 했다.

“많이 슬펐던 날도 더러 기뻤던 날도 항상 함께였던 사람이 또 떠나버리고 길을 걷다 보면은 여러 생각이 들죠 왜 당신은 나 하나 감당하지 못했는지.” - 지윤해 ‘개의 입장’

 

4. 김수영 ‘별 하나’

까무룩 겨우 잠이 든다. 얕게 든 잠은 결국 새벽녘에 나를 깨운다. 이대로 다시 잠들고 싶다. 이제 더는 이 밤에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또다시 창문을 열어 하늘을 본다. 하지만 별빛이 너무 아름다워 그 아름다움에 나의 잠을 지불한다.

불면이 지속되는 밤, 불면증은 방안에 외로움의 단어를 채워가는 것이다. 그 단어들은 별처럼 빛을 내고 환해진 빛에 나는 더욱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런 날 김수영의 노래를 듣는다. 포근한 듯 덤덤한 김수영의 목소리는 그 별이 나의 잠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나를 위로해준다고, 토닥여 주고 다시 잠에 빠질 수 있도록 따스히 감싸 안아 준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의 밤에게 속삭인다. “잘자요. 행복하길 바라요”.

카페 언플러그드 한편에서 촬영이 시작되기 전 스태프들에게 무해한 웃음을 짓던 사랑스러운 소녀 김수영. 기타를 좋아해 노래를 시작했다는 이 소녀는 공연장 안으로 들어와 좋아하는 기타를 잡는 순간 그 누구보다 진지하고 어른스럽게 위로의 노래를 불렀다.

“날 비추고 있는 저 별 하나가 왠지 작은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 아무래도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오늘은 왠지 그냥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날 비추는 것 같은 반짝이던 별빛이 내 지친 하루를 감싸준 것 같아” - 김수영 ‘별 하나’

 

* FLO app과 Cakepop 유투브에서 스테이지앤플로 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Writer

음악 콘텐츠 기획자, 하루키스트, Psychedelic rock. <중경삼림>의 영원한 팬. 읽고 듣고 보고 쓰는 것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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