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 살았던 독일의 뮌하우젠(Münchausen) 남작은 거짓으로 자신의 모험담을 꾸며서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후일 영국의 정신과 의사 리처드 애셔(Richard Asher)가 그의 이름을 따라 ‘뮌하우젠 증후군’이라는 심리적 장애 현상을 발표하였다. 여기에 속한 환자들은 사람들의 환심이나 동정을 사기 위해 일부러 아픈 척하거나 자신의 증상을 부풀리는 행동을 반복한다. 어린 시절 과보호를 받은 아이들이나 가족 관계에서 심한 박탈감을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때로는 가족을 아프게 하거나 그들이 아프다고 속여 자신이 대리로 주위 사람들의 동정을 이끌어내기도 하는데, 이를 뮌하우젠 바이 프록시(Münchausen Syndrome by Proxy)라고 한다.

<유전>의 아리 애스터 감독의 단편 <Munchausen>(2015)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는 스릴러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종종 등장한다. 이들은 병적인 가족 관계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최근 뮌하우젠 증후군을 주요 소재로 제작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던 두 편의 스릴러 드라마를 소개한다. 뮌하우젠 증후군을 가진 엄마 연기를 한 두 배우는 훌륭한 연기를 펼치면서 각각 에미상과 골든글러브상을 받았다.

 

<몸을 긋는 소녀>(Sharp Objects, 2018)

소설 <나를 찾아줘>(Gone Girl)의 베스트셀러 작가 길리언 플린(Gillian Flynn)의 데뷔 소설을 바탕으로 HBO가 제작한 8부작 미니시리즈. 살인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고향 윈드 갭(Wind Gap)을 찾은 기자(에이미 아담스)는, 그의 친모 그리고 배다른 동생을 오랜만에 만나 어린 시절 친동생을 잃었던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잊기 위해 바늘로 자신의 몸에 글자를 새기는 이상 행동을 보이며 고향을 등졌던 그다. 드라마 전반에 흐르는 서던 고딕 스타일의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근교에서 찾은 빅토리아 시대 고택과 조지아의 작은 마을에서 촬영했다.

2018년 HBO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로튼토마토에서 92%의 높은 평점과 함께 “견딜 수 없는 슬로우 번(Slow burn) 드라마”라는 독특한 평가를 받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예상 외의 진범이 드러나므로 천천히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특히 이상 성격의 고택 안주인을 연기한 패트리시아 클락슨(Patricia Clarkson)이 골든글러브와 크리틱스 초이스의 조연상을 받았다. <빅 리틀 라이즈>의 장 마크 발레(Jean-Marc Vallee) 감독이 제작을 진두지휘했으며,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HBO 드라마 <Sharp Objects> 예고편

 

<디 액트>(The Act, 2019)

2015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집시 블랜차드’(Gypsy Blanchard) 사건을 실명으로 묘사한 8부작 드라마로, 훌루(Hulu)의 오리지널로 제작되었다. 자택 침대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디 디 블랜차드(Dee Dee Blanchard)는 전형적인 뮌하우젠 바이 프록시 증후군 환자로, 딸 집시(Gypsy)를 정신 지체아로 행세하게 하거나 육체적인 장애아로서 휠체어를 타는 것처럼 속여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동정을 유발했다. 하지만 집시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독립적인 자아가 형성되면서, 비정상적인 모녀 관계는 끔찍한 살인 사건으로 귀결된다.

아역배우였던 조이 킹(좌)이 완전히 삭발하며 연기한 집시 블랜처드의 실제 모습(우)

이 사건은 그 동안 두 번이나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후 처음으로 실명을 사용한 드라마로 제작되었는데,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집시 블랜처드는 자신의 이름과 과거사를 허가없이 제작했다며 법적 소송을 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훌루(Hulu)에서 방영한 이 드라마는 로튼토마토 89%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고, 디 디 블랜처드를 연기한 패트리샤 아퀘트(Patricia Arquette)는 프라임타임 에미와 골든글러브 2관왕을 차지했다.

8부작 드라마 <The Act>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