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찾아들어도 질리지 않는 곡이 있다. 감미로운 멜로디와 부드럽고 편안한 보컬이 담긴 방대동(方大同)의 음악이 그러하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상하이와 광저우에서 자란 그는 드러머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이 음악을 접했다. 어릴 적 독학으로 기타와 피아노를 마스터하며 음악 재능을 보였고, 1997년 홍콩에 정착한 후 곡을 쓰고 데모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레트로 블루스, 소울 등 흑인 음악의 영향을 받아 홍콩에서는 보기 드문 알앤비 음악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얻었다. 다양한 문화 체험은 그의 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모국어인 영어와 중국어(보통어)로 부르는 노래에서 동서양의 매력이 동시에 느껴진다. 중국어 노래를 들어본 적 없어도 그의 음악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Paul Tsang
styling ©, 이미지 출처 – 방대동 인스타그램

 

사랑하기에 나는 존재해

이미지 출처 – 방대동 페이스북

2005년 솔로 앨범 '소울보이'(Soul Boy)로 데뷔한 방대동은 대만의 알앤비 대부 ‘타오저(David Tao)’에 비견해 ‘홍콩의 타오저’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홍콩, 대만, 중국 등지에서 큰 사랑을 얻으며 각종 상을 휩쓸었는데,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감미로운 사랑 노래에 찰떡같이 잘 어울린다.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방대동의 노래는 2006년 발매한 ‘사랑사랑사랑’(爱爱爱). 중독적인 멜로디와 그루브 넘치는 보컬, 로맨틱한 가사는 금세 그의 음악과 사랑에 빠지게 한다. 소울보이로서의 면모가 엿보이는 방대동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해보자. 잔뜩 멋 부린 그 시절의 패션과 360p 화질의 영상이 노래와 퍽 잘 어울린다.

방대동 ‘사랑사랑사랑(爱爱爱)’

不明不白不分好歹 都为了爱爱爱
애매하지만 일일이 따지지 않는 건, 모두 다 사랑 때문이지

还是觉得孤单太失败 我爱故我在
비록 외롭고 실패할 수 있다 해도 사랑하기에 나는 존재해

어린 시절부터 소울, 펑크,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했고, 이는 그의 음악 작업에 큰 자양분이 되었다. Stevie Wonder, Michael Jackson, Jimi Hendrix, D’angelo, Musiq Soulchild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영향으로 방대동의 음악에는 1950~1970년대 레트로 블루스, 소울 등 흑인 음악의 색이 짙게 나타난다. 데뷔 당시 중화권 음악계에는 흑인 음악이 보편적이지 않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조금 더 쉽고 친숙하게 소개하고자 중국어로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방대동 ‘Love Song’

방대동의 사랑 노래에는 애절한 진심이 녹아있다. 중화권 음악 특유의 시적인 가사가 노래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데,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이 즐겨듣는 ‘Love Song’과 ‘Singalongsong’(為妳寫的歌)은 사랑 노래의 정석이라고 불릴만하다. 따뜻한 피아노 멜로디가 마음을 울리고, 방대동의 감성적인 보컬이 다음과 같은 가사를 읊는다. “그대는 여름날의 청량한 바람처럼 나를 스치고, 마음은 날아오르죠.”, “이건 당신을 위한 노래에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득 찬.”

방대동 ‘Singalongsong’ (為妳寫的歌)

쉽기만 한 사랑은 없듯, 그의 노래에도 달콤한 고백만 있는 건 아니다. 친구들의 결혼 생활을 지켜보며 쓴 ‘가까스로’(好不容易)에서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시련을 거치며 사랑을 이어가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가까스로 간신히 겨우 너를 사랑하게 됐어 (好不容易 好不容易 好不容易 愛到你)’

방대동 ‘가까스로’ (好不容易)

‘Baby Bye Bye’의 중국어 발음을 연상시키는 제목의 댄스곡 ‘BB88’에서는 자신을 울리는 못된 연인을 향해 유쾌하게 안녕을 고한다. 대만 싱어송라이터 9m88가 커버해 다시금 주목을 받은 곡으로 경쾌한 리듬과 중독적인 후렴이 돋보인다. 그는 전통적인 중국의 작곡 형식보다 훅과 리듬을 강조했는데, 특히 R&B(Rhythm&Blues)의 리듬이 음악에 미치는 영향력과 매력에 집중했다. 리듬은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고, 동시에 깊은 음악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방대동 ‘BB88’
9m88 ‘BB88’ cover

 

성공한 덕후 크러쉬, 한국 가수들과의 콜라보

방대동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Mnet의 연말 시상식인 ‘MAMA’가 아직 ‘MKMF’이던 2008년, ‘아시아 뉴스타상’을 수상했다. 중국과의 이원생중계로 진행된 무대에서 ‘사랑사랑사랑(爱爱爱)’을 불렀고 당시 중학생이던 크러쉬가 이를 보고 팬이 됐다고 한다. 크러쉬는 한 인터뷰에서 방대동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으며, 중국어 병음을 한국어 발음으로 옮겨 적은 가사를 보며 노래를 연습했다고 밝혔다. 방대동 역시 SNS에서 한국 가수들의 앨범을 추천하며 꾸준히 관심을 표해왔는데 2016년에는 크러쉬, 자이언티와 함께 협업하기도 했다.

방대동 ‘Flavor’(味道)

2016 ‘Asia Artist Awards’에서는 ‘AAA 뉴웨이브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한국에서도 꾸준히 존재감을 알려왔다. 크러쉬와의 인연도 계속 이어져 홍콩에서 열린 크러쉬의 아시아 쇼케이스 때 함께 ‘사랑사랑사랑(爱爱爱)’을 부르기도 했다. 아이유의 홍콩 ‘Palette’ 콘서트에도 게스트로 출연해 ‘사랑이 잘’을 한국어 듀엣으로 부르는 등 한국 아티스트들과의 교류가 깊어 앞으로도 다양한 콜라보가 기대된다.

성덕 실현한 크러쉬의 ‘사랑사랑사랑(爱爱爱)’

 

당신의 'Favorite Stuff'

데뷔 후 15년 가까이 활발히 활동하며 이제는 중화권 싱어송라이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선배가 된 방대동. 최근에는 프로듀싱 회사를 설립해 차세대 아티스트들을 키우며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본인의 음악적 변화 또한 두려워하지 않고 소울 음악, 피아노가 중심인 정통 R&B에서 벗어나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가미한 다채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소울, 힙합 사운드에 일렉트로닉 스타일을 섞어 장르를 넘나들며 대담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쳐나가는 중이다. 2018년 발매된 ‘Throw It Off’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잘 드러나는데, 심장 박동 같은 비트에 신스 사운드를 더해 몽환적인 느낌을 살렸다.

방대동 ‘Throw It Off’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싱글 ‘Home Sweet Home’을 발표했다. 세계적인 재난이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방대동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노래를 만들고자 했고,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Cut My Hair’, ‘Noodles’, ‘Favorite Stuff’ 세 곡을 모아 발표했다. 힘든 순간을 견디게 하는 건 어쩌면 가장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일지 모른다. 직접 만든 소소한 면 요리는 우울한 마음의 치료제가 되고, 반년 가까이 자르지 않은 머리처럼 답답한 일상은 느릿느릿한 블루스 기타 사운드로 풀어낸다.

이미지 출처 – 방대동 페이스북
방대동 ‘Cut My Hair’

'Favorite Stuff'는 리드미컬한 블루스 음악으로 부담 없는 멜로디를 사용해 자유롭게 써 내려간 곡이다. 그는 집에 머물면서 어릴 적 즐겼던 작은 일들을 떠올렸다. 용돈을 모아 산 카세트테이프, CD, 가사집. 그가 가장 사랑한 것은 앨범 크레딧을 열심히 탐구하던 추억과 그 앨범에 담긴 음표와 목소리를 자신의 삶으로 만들던 시간이었다. 젠체하지 않고 편안한 방대동의 노래는 일상의 작은 행복감을 선물한다. 나만의 ‘Favorite Stuff’에 방대동의 노래를 슬쩍 넣어보는 건 어떨까?

방대동 ‘Favorite Stuff’

 

방대동 유튜브
방대동 인스타그램

 

Writer

김혜인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