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원칙은, 영화는 행동으로 이야기하고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단순한 원칙은 대부분의 영화에서 당연하게 지켜지는 진리이지만, 왠지 코미디 장르에서만큼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액션 영화 속 액션 장면이나 공포영화 속 무서운 장면이 영화 전개에 필수적으로 맞물려 진행되는 것과 달리, 코미디 영화는 이야기 전개 중간중간에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들을 계속해서 채워 넣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코미디 영화는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를 대사를 통해서 해결하려 하는 경향이 강하고 이러한 경향은 할리우드 코미디에서 더욱더 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21세기 할리우드에서 아주 드물게도, 아직도 카메라와 편집 그리고 행동을 활용하여 웃음을 주는 감독이 있다. 바로 에드가 라이트다. 에드가 라이트의 코미디에는 다른 게으른 코미디 영화들에서는 찾기 힘든 입체적인 유머가 있다. 에드가 라이트의 치밀하게 설계된 코미디에 빠져보자.

 

<새벽의 황당한 저주>

DJ를 꿈꾸던 청년 ‘숀’(사이먼 페그)은 전자제품 판매원이 되어 레코드 판을 수집하며 살아가고 있다. 3년 동안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술을 마시고 일어난 다음날 전 세계가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혼란에 빠진다. 엄마와 여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숀은 그의 백수 친구 ‘에드’(닉 프로스트)와 함께 거리로 나선다.

에드가 라이트식 코미디 연출은 데뷔작에서부터 이미 완성형이었다. B급 정서를 지향하는 대부분의 코미디 영화감독들이 그러하듯, 에드가 라이트 역시 좀비 장르를 코미디 안에 끌어들였다. <새벽의 저주>를 패러디한 제목에서 드러나듯 철저히 B급의 정서를 지향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어떤 B급 코미디보다도 시각적으로 우수한 연출을 보여준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 트레일러

작품의 진행 과정 자체는 좀비 영화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다른 좀비 영화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루아침에 세상이 파괴되고,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과 뭉쳐 자신을 지켜내는 과정이 그대로 진행된다. 그러나 에드가 라이트의 천재성은 그 평범하고 당연시되는 과정들을 어떻게 참신하게 보여주는가에 있다. 거의 모든 장면에서 카메라와 편집을 위트 있고 리듬감 있게 활용하면서, 서사의 중간중간에 끊임없이 유머를 던진다. 대부분의 웃음이 카메라나 인물의 움직임에서 만들어지는 점이 눈을 즐겁게 한다.

본작의 백미는 퀸의 ‘Don't stop me now’를 배경음악으로 펼쳐지는 좀비와의 싸움에 있다. 모든 편집과 행동이 특유의 정해진 박자에 맞추어 진행되기를 지향하는 에드가 라이트의 천재성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시퀀스다. 노래 가사의 All Explode! 가 등장하는 타이밍에 맞추어 소화기를 발사하는 센스까지.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

‘스콧 필그림’(마이클 세라)은 게이 친구 ‘월레스’(키에란 컬킨)의 집에 얹혀살아가고 있다. 친구들과 만든 록밴드 Sex-bob-omb의 베이시스트인 그는 언젠가 자신의 밴드가 유명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중국인 여자 친구 ‘니브스’(엘렌 웡)와 사귀고 있는 와중에, 이상형 ‘라모나’(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를 만나게 되고 라모나와의 사랑을 채워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공연장에 나타난 라모나의 첫 번째 전 남자 친구와 결투를 하게 되고, 그가 라모나와 계속해서 연애하기 위해서는 7명의 전 남자 친구들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원작 만화의 스타일을 그대로 살려, 만화적인 연출을 스크린 안에 자연스레 녹여낸다. 다른 에드가 라이트의 작품들이 장소와 시간을 거의 바꾸지 않고 진행해나갔다면, 7명의 전 남자 친구와 싸워야 하는 설정상 잦은 시간과 공간의 전환이 필수적인 작품이다. 대부분의 코미디 영화들이 시공간의 전환을 전형적이고 소모적인 방식으로 단순하게 처리한다. 그러나 에드가 라이트는 오히려 잦은 장면 전환을 기회로 활용한다. 센스 있는 아이디어와 편집을 통해 장면 전환을 웃음을 줄 기회들로 활용한다. 편집의 리듬이 시공간의 방해를 받지 않으니 영화의 진행 속도는 오히려 탄력을 받고, 늘어지지 않으면서 관객의 흥미를 붙잡아두는 데 성공한다.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 트레일러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액션 장면이 그러하듯이, 본작에서도 음악을 활용하는 액션 장면들이 여럿 등장한다. 여기에 다양한 도발적인 연출들을 용인할 수 있게 해주는 만화라는 속성이 가미되니, 모든 전투 장면이 창의적인 액션 연출의 좋은 예시가 된다. 채식주의자 전 남자 친구의 채식 파워에 맞서 베이스 연주 배틀을 하거나, DJ 쌍둥이들과 밴드의 음악을 통한 대결, 발리우드식 춤과 노래로 공격하는 전 남자 친구 등의 독특하고 리듬감 있는 장면들이 잔뜩 준비되어 있다.

 

<베이비 드라이버>

어린 시절 사고로 인해 늘 이명을 갖고 살아가는 ‘베이비’(안셀 엘고트)는 언제나 이어폰을 낀 채로 살아간다. 베이비의 직업은 탈출 전문 드라이버로, 범죄 직후의 탈출을 돕는 역할을 한다. 어느 날, 여자 친구 데보라(릴리 제임스)를 만나게 되면서, 드라이버로서의 삶을 그만두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팀원들을 그를 절대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베이비 드라이버> 트레일러

<베이비 드라이버>에서는 에드가 라이트 특유의 음악을 활용한 액션 장면들을 아예 영화 전체에 삽입해버렸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들처럼 사운드 트랙을 선정하는 능력도 일품인데, 모든 컷 하나하나가 음악의 박자에 정확하게 딱딱 맞아떨어지면서 마치 음악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알맞게 기능한다. 박자에 맞춘 편집을 통해 장면을 잘게 쪼개되 각 컷의 진행 속도에 틈틈이 변주를 주면서 지나친 반복을 피해 간다. 컷의 분할이 느려지는 타이밍에는 액션의 모든 과정이 카메라에 한눈에 들어오게끔 연출하면서, 관객의 머릿속에 이미지가 확실하게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연출을 보여준다.

 

Writer

좋아하는 건 오직 영화 뿐이고 특히 68혁명 이전까지의 고다르 영화에 대한 광적인 팬이다. 스스로가 언젠가 대단한 일을 해낼 거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