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서도, 브라운관에서도 공효진의 행보는 남다르다. 1999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펼치며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개성파 배우가 된 공효진. 과거 한 인터뷰에서 그는 “드라마는 대중성을 어느정도 감안하고 선택하는 반면, 영화는 해보고 싶은 것을 위주로 선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듯 본인의 취향이 깃든 영화들은 블록버스터보다 저예산 작품이 많고, 폭력과 자극 대신 휴머니즘이 가득하다. 배우 이병헌, 안소희와 함께 출연한 최근작 <싱글라이더>와 더불어 공효진의 영화 가운데 연기는 물론 캐릭터의 뚜렷한 개성이 돋보인 작품 몇 편을 꼽아보았다.

 

<가족의 탄생>

Family Ties│2006│감독 김태용│출연 문소리, 고두심, 공효진, 김혜옥, 봉태규, 정유미, 엄태웅

<가족의 탄생>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우연히 가족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총 3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사랑이라면 죽고 못 사는 엄마 ‘매자’(김혜옥)와 그런 엄마를 애증 하는 딸 ‘선경’(공효진)의 이야기는 먹먹한 감동을 전한다. 이 영화는 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2003) 이후 별다른 출연 제의를 받지 못해 2년간 슬럼프에 빠져 지내던 공효진을 다시 일으켜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김태용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현실주의자에 냉정하고 예민한 캐릭터 선경 역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영화에는 선경의 전 남자친구 역할로 배우 류승범이 출연하는데, 공효진은 헤어졌음에도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던 류승범에게 카메오 출연을 부탁했고 류승범도 이에 적극적으로 응했다고. 두 사람뿐 아니라 지금은 하나같이 성공한 배우들의 풋풋한 시절을 볼 수 있어 반가운 영화다. 공효진은 이 영화로 제5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주연상, 제47회 그리스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획득했다.

예고편 [바로가기]
| 영화보기│유튜브GooglePlayCinefox
 

<미쓰 홍당무>

Crush And Blush│2008│감독 이경미│출연 공효진, 이종혁, 서우, 황우슬혜

공효진은 2008년, 이경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미쓰 홍당무>에서 연기 변신을 감행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안면 홍조증에 부스스한 곱슬머리, 촌스러운 패션, 신경질적인 말투와 피해 과대망상증 등 온갖 콤플렉스가 어우러진 노처녀 ‘양미숙’이었다. 배우로서 섣불리 도전하기 힘든 캐릭터였지만, 그는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 2주 이상을 고민한 끝에 출연을 결심했다. 그리고 본인의 성격과 정반대인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연기에 임했다. 2개월간의 촬영 동안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꽁꽁 언 흙을 퍼내고, 먹지도 못하는 닭발을 우걱우걱 씹고, 평소에도 촬영과 일상을 구분하지 않고 퉁명스러운 말투나 호전적인 눈빛,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 등을 습관처럼 만들었다. 본인도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하는 삽질의 추억”이라고 밝혔을 만큼 열연한 영화. 그가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선생님이자 동료 교사 ‘종철’(이종혁)의 사랑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나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면모가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안겨준다.

<미쓰 홍당무> 예고편

 

<그녀의 연기>

You Are More Than Beautiful│2012│감독 김태용│출연 공효진, 박희순

김태용 감독과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 <가족의 탄생>(2006) 이후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영화. 공효진이 출연한 몇 안 되는 단편영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능청스러운 공효진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제주 남자 ‘철수’(박희순)는 결혼을 바라는 시한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서울 여자 ‘영희’(공효진)에게 애인 대행을 부탁한다. 제주도에 내려온 영희는 시종일관 시큰둥한 철수와는 반대로 열과 성을 다해 연애 스토리를 짜고 맡은 바 임무에 적극적으로 임한다. 순박한 마스크에 힘을 뺀 박희순의 연기와 에너지 넘치는 공효진의 연기가 달달하게 어울리는 영화. 여담이지만, 공효진은 극 중 주인공의 아버지 앞에서 창(唱) 하는 장면을 위해 2~3주간 매일 발성을 익혀야 했고, 이때 판소리의 매력에 푹 빠져 제대로 배워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 영화보기 | N스토어

 

<미씽: 사라진 여자>

MISSING│2016│감독 이언희│출연 엄지원, 공효진

<고령화 가족>(2013)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에 재기한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에서 공효진은 워킹맘 '지선'(엄지원)의 아이를 돌보다 계획적으로 납치하는 중국인 여성 ‘한매’를 연기했다. 그는 까칠한 낯빛에 정돈되지 않은 눈썹, 초라한 차림새와 어설픈 한국말 이면에 어딘가 서늘한 눈빛과 알 수 없는 행동으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몰입도를 높였다. 한매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가운데, 그가 죽은 딸을 끌어안고 길거리에서 통곡하는 장면은 한매의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하며 관객의 감정을 요동치게 한다. 이렇듯 여자이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차별과 서러움을 감당해야 했던 이주 여성 한매에 완벽하게 빙의한 공효진. 이를 두고 상대 배우 엄지원은 “공효진이 아니었으면 완전히 다른 영화가 나왔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약자로 불릴 수밖에 없는 워킹맘과 이주여성의 현실은 엄지원의 호소력과 공효진의 연기 덕분에 한층 더 날카롭게 빛난다. 

│ 영화보기 │  N스토어 유튜브  |

 

<싱글라이더>

A single rider│2016│감독 이주영│출연 이병헌, 공효진, 안소희

<밀정>에 이어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thers)에서 제작한 두 번째 한국영화. 증권회사의 지점장 ‘재훈’(이병헌)은 어느 날 대형 부실 채권 사건으로 직장을 잃고 아들과 아내 ‘수진’(공효진)이 있는 호주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다른 삶을 준비하는 아내 수진을 보고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맴돌다 우연히 도움이 필요한 호주 워홀러 ‘지나’(안소희)를 만난다. 영화는 재훈의 시선과 감정선을 차분히 따라가며 숨겨진 반전을 보여준다. <싱글라이더>는 그동안 CF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해 온 이주영 감독의 데뷔작으로 시나리오 기획부터 자문까지 8개월간 이창동 감독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공효진은 시나리오를 읽고 ‘좋은 단편소설을 읽은 듯한 기분’이 들었으며, 무엇보다 40대 중년 남성 재훈이 느끼는 쓸쓸한 정서에 깊이 공감해 출연을 결심했다고. 실제로 그는 10대 시절 어머니, 동생과 셋이서 호주 브리즈번으로 떠나 대학 입학 전까지 오래 유학한 경험이 있다. 아들의 학업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호주로 건너온 주부 역할은 어쩌면 그가 맡았던 역할 가운데 가장 평범하고 현실적인 여성 캐릭터일지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의 감정선을 떠받치는 안정감 있는 연기로 절대 평범하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기러기 아빠, 이국에서 홀로 자식을 키우는 아내,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청년 세대까지 현 사회를 반영하는 이야기가 담긴 <싱글라이더>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이고,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 영화보기 | N스토어 | 유튜브 |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