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영화상은 <기생충>(2019)의 영어 자막 작업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이 만든 영화상으로, 2014년부터 국내 독립 저예산 영화를 대상으로 시상하고 있다. 조명받을 기회가 적었던 작품들을 다시 한번 언급해주고 그 공을 인정해주는, 독립영화인들에게 큰 힘이 되는 영화상이다. 

2020년에 7회를 맞이한 들꽃영화상에서, 한 해를 빛낸 독립영화들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들꽃에서 따온 영화상 이름처럼, 독립영화계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취를 내고 있다. 들꽃영화상에서 수상한, 특히 발굴의 의미가 큰 신인감독상을 받은 작품들을 살펴보자.

 

<10분>

방송사 PD 시험을 준비 중인 '호찬'(백종환)은 집안에도 보탬이 되고자 공공기관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한다. 입사와 함께 군소리 없이 밤샘 야근을 하고, 주말에 사내 등산까지 동행하는 등 윗사람들에게 성실함을 인정받는다. 일에 익숙해질수록 꿈과는 조금씩 멀어지는 걸 느끼고, 가족들은 호찬이 정직원이 되기를 바란다. 어느 날 회사에 갑작스럽게 정규직 자리가 나오고 사무실 직원들은 모두 그 자리가 호찬의 자리가 될 거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상황은 호찬의 예상과 다르게 흐른다.

<10분>(2013)의 감독 이용승은 단편영화 <런던 유학생 리차드>(2010)로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비정성시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바 있다. 런던 유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우대받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단편인데, <10분>도 노동 현장에서의 계급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0분>은 과장이 섞인 작품이 아니라,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드라마다.

<10분> 예고편

퇴사하는 직원이 호찬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여기는 말은 많은데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어요’. 호찬은 회사 사람들의 말을 믿고 따르지만, 아무도 그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안정’이라는 가치를 추구하지만, 그것을 얻기까지의 과정에서 자신을 잃게 된다면 그건 과연 의미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선택을 10분 만에 하라는 말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소셜포비아>

경찰 지망생 '지웅'(변요한)은 함께 경찰 시험을 준비하는 '용민'(이주승)을 따라서 BJ '양게'(류준열)가 생중계하는 '현피 원정대'에 참여한다. 현피의 대상은 군인의 자살 소식에 악플을 남기며 네티즌들의 분노를 산 '레나'다. 생중계와 함께 레나의 집에 찾아간 이들은 문이 열려있는 걸 발견하고, 안에 들어가서 레나의 시체를 발견한다. 생중계를 보던 네티즌들은 이들을 비난하고, 지웅과 용민은 레나가 자살한 게 아니라 타살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증거를 찾기 시작한다.

<소셜포비아>(2014)는 온라인 세계가 실제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일이 실제가 아니니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온라인에서의 모습이 실제 자신처럼 큰 의미를 가진다. 그것에 대해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소셜포비아> 예고편

온라인에서는 받은 상처도 마음의 생채기로 남는다. 익명성을 무기 삼아서 온라인에서 모진 말을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본인도 기억 못 할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남긴 악플에 누군가의 삶이 통째로 흔들린다. 온라인 덕분에 편리해진 부분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상처받을 수 있는 부위가 하나 더 늘어난 느낌이다. '온라인'이라는 내 피부의 일부가 된, 아주 연약한 부위.

 

<철원기행>

철원의 고등학교 교사로 평생을 재직한 아버지(문창길)가 정년 퇴임을 한다. 떨어져 살던 어머니(이영란), 큰아들(김민혁), 큰 며느리(이상희), 작은아들(허재원)이 정년 퇴임식을 계기로 철원에 모인다. 허름한 중국집에서 밥을 먹던 중 아버지는 이혼을 선언한다. 어머니를 비롯해 온 가족이 놀라고, 이들은 폭설로 인해 아버지의 관사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철원기행>(2014)은 가족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서로 늘 의지하고 따뜻해야만 할 것 같은 가족의 당위성에서 벗어나서, 오히려 가족이기에 주고받는 상처를 그대로 보여준다. 데뷔작은 감독의 욕심과 함께 과유불급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데, 김대환 감독의 <철원기행>은 차분히 한 가족의 이야기를 바라본다.

<철원기행> 예고편

가족에 대한 당위성은 어릴 적부터 꾸준히 학습 받는 개념 중 하나다. 그러나 가족은 늘 행복하고 좋은 집단이 아니다. 아무리 타고난 가족이어도 개인과 개인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함께이기에 견딜 수 있는 순간도 존재하지만, 함께라서 힘든 순간도 존재한다. 미워하지만 함께 하고 싶은 아이러니한 마음이 가족을 지탱한다.

 

<죄 많은 소녀>

고등학생 '경민'(전소니)이 실종되자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영희'(전여빈)가 유력한 가해자로 몰린다. 영희와 가깝게 지내던 '한솔'(고원희)부터 경민의 어머니(서영화), 사건을 맡은 형사(유재명), 담임 선생님(서현우)까지 영희의 편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결백함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영희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죄 많은 소녀>(2017)는 단편영화 <오늘은 내가 요리사>(2010), <구해줘>(2011), <오명>(2016)으로 주목받은 김의석 감독의 데뷔작이다. 김의석 감독과 주연인 전여빈 배우가 주목받은 작품으로, 특히 전여빈은 춘사영화제, 부일영화상,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등 많은 시상식에서 신인여자배우상을 받았다.

<죄 많은 소녀> 예고편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근하는 방법의 하나는 죄인을 만드는 일이다. 시스템이 잘못되었거나 많은 이들이 연루된 사건도 한 명의 죄인을 만들어서 모든 죄를 몰아주고, 그 사람을 비난하며 사건을 마무리하려 한다. 한 명의 죄인이 생겼으므로 나머지는 모두 면죄부를 얻었다고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죄’라는 폭탄을 가지고 폭탄 돌리기 하듯 서로를 살피다가, 지목되는 순간 죄인이 되는 일은 더는 목격하고 싶지 않다. 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