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은 하드록 또는 헤비메탈 음악의 원년으로 여기는 해다. 브리티시 하드록의 '언홀리 트리니티'(Unholy Trinity)라 칭송받는 3대 록밴드 딥 퍼플(Deep Purple),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가 결성된 해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은 1970년대 록의 전성기를 이끌며 팝 영역의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 같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누가 더 뛰어난 밴드인가에 대해 호사가들의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두 밴드를 비교하고 있다.

<When Rock Ruled the World> 'Deep Purple / Led Zeppelin' 편

 

기량 면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딥 퍼플

해체 수순을 밟던 영국 밴드 야드버즈(Yardbirds)의 남은 공연을 마무리하기 위해 지미 페이지가 결성해 한시적으로 '뉴 야드버즈'(New Yardbirds)라고 불렀던 밴드가 레드 제플린이었다. 반면에 딥 퍼플은 처음부터 일종의 슈퍼그룹 개념으로 시작했다. 사업 파트너들이 모여 자신들의 이니셜을 딴 기획사 HEC를 설립한 후 최고 기량의 멤버를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 합류한 존 로드와 리치 블랙모어가 중심이 되어 최강의 리듬 섹션 멤버를 찾았고, 더 나은 멤버를 찾으면 기존 멤버를 대체하기도 했다. 자연히 딥 퍼플에는 당대 최고 뮤지션들이 모였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특히 이언 길런, 이언 페이스, 로저 글로버가 합류했을 때가 최고의 시기라는 데 별 이견이 없는 편이다.

딥 퍼플 2기 시절 ‘Highway Star’ 실황(1972)

 

정신적 유대감으로 뭉친 레드 제플린

멤버 교체가 잦았던 딥 퍼플의 경우 'Mark I', 'Mark IV' 라는 방식으로 기수를 표현하였고, 전성기에는 이언 길런과 리치 블랙모어 간 음악적 불화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이와 달리 레드 제플린은 1980년 존 보냄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밴드 활동을 중단할 때까지 별다른 잡음 없이 멤버들이 정신적 유대감을 유지했다. 이들은 빈틈없이 구성한 딥 퍼플의 연주와 달리 자유로운 팀워크와 즉흥 연주를 중시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의 유대감이 밴드의 단명을 초래했다. 정상의 인기를 유지하던 중 존 보냄이 기도폐쇄로 갑자기 사망하자, 남은 세 명은 활동을 중단하고 단 12년의 레전드로 남게 되었다.

레드 제플린 ‘Rock and Roll’ 실황(1973)

 

오르간과 기타의 조화, 딥 퍼플

레드 제플린과 블랙 사바스와 달리 딥 퍼플은 키보디스트 존 로드(Jon Lord)가 포함된 5인조 밴드였다. 키스 에머슨, 릭 웨이크맨 등 키보디스트가 주도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가 주목을 받을 무렵, 그는 하드 록 사운드에 하몬드 오르간을 적용했다. 클래식, 블루스, 중세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영향을 받은 그는 초기 딥 퍼플 음악을 주도하며 음악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실황에서 하몬드 오르간을 마샬 스피커에 연결하여 찢어질 듯한 헤비메탈 음악을 선보였고, 당시 기네스북에 '가장 시끄러운 밴드'(The Globe’s Loudest Band)로 선정되기도 했다.

Deep Purple 'Smoke on the Water' Live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 레드 제플린

레드 제플린의 성공 스토리에는 항상 매니저 피터 그랜트(Peter Grant)가 등장한다. 야드버즈의 매니저였던 그는 레드 제플린의 성공을 예상하고 싱글보다는 앨범 중심으로, TV 출연보다 라이브 공연에 치중하면서 상업적인 성공을 이끌었다. 미국 음악 시장의 변화를 간파한 그는 공연 입장료 수익의 대부분을 현지 프로모터에게 뺏기지 않도록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었고, 스완 송(Swan Song)이란 자체 음반사를 설립하여 수입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도록 단속하였다. 레드 제플린은 약 3억 장의 음반을 판매하여 약 1억 장을 판매한 딥 퍼플을 압도한다. 만약 피터 그랜트가 없었다면 레드 제플린이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할 정도로 그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레드 제플린 3인의 재결합 공연 ‘Black Dog’(2007, London)

록의 황금기였던 1970년대를 이끈 두 밴드.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는 딥 퍼플의 인기가 더 높았지만,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 레드 제플린이 결과적으로 더 성공한 밴드가 되었다. 하지만 12년 만에 활동을 마감한 레드 제플린과 달리, 딥 퍼플은 이언 길런, 이언 페이스와 로저 글로버가 여전히 밴드를 이끌며 올해 8월 스물한 번째 앨범 <Whoosh!> 발매를 앞두고 있다.

 

레드 제플린 홈페이지

딥 퍼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