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넘치는 추격전과 투박한 격투 장면이 이어지다가 어디선가 많이 듣던 독특한 오프닝의 음악 ‘Extreme Ways’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 뻔히 보일 정도로 현실성 떨어지는 허구와 식상한 클리셰로 생명이 다해가던 스파이 영화에 부활의 신호탄을 쏜 작품이다. 당시 엘리트 배우 이미지였던 맷 데이먼은 근육질의 액션 배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기도 했다. ‘제이슨 본’ 캐릭터를 창조한 작가 고 로버트 러들럼의 3부작이 모두 영화화됐지만, 신화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제이슨 본 시리즈의 이모저모를 알아보았다.

 

스파이 스릴러 영화의 재발견

베를린 장벽으로 상징되던 냉전 체제가 종식하면서 스파이 스릴러 영화도 힘을 잃기 시작했다. 국제적인 음모론과 이를 수행하는 스파이들의 활약상을 그린 스파이 스릴러 영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스토리와 과장된 액션으로 인해 점점 관객들에게서 멀어졌다. 하지만 21세기 도래와 함께 시작된 <본 시리즈>는 스파이 스릴러 영화의 인기에 다시 불을 붙였다. ‘기억을 잃고 홀로 거대 조직에 맞서는 스파이’라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현실적인 스토리 라인과 맨몸의 현실감 넘치는 스턴트 액션신으로 다른 스파이 영화와 차별화했다. 다섯 편의 영화로 16억 3,000만 달러(약 2조 원)의 수익을 올리며 성공적인 프랜차이즈 영화 반열에 올랐다.

시리즈의 엔딩 크레딧 음악, Moby의 ‘Extreme Ways’ 뮤직비디오

 

원작자의 사후에도 시리즈는 계속된다

제이슨 본 캐릭터를 창조한 작가 로버트 러들럼(Robert Ludlum)은 늦깎이 작가였다. 배우와 제작 일을 하다가 40대에서야 작가로 등단하였고, 제이슨 본 3부작 <Bourne Identity>(1980), <Bourne Supremacy>(1986), <Bourne Ultimatum>(1990)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의문의 화재 사고로 인해 <본 아이덴티티> 개봉 1년 전인 2001년에 사망하여 <본 시리즈> 영화의 성공을 보지 못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스릴러 작가 에릭 밴 러스트베이더(Eric Van Lustbader)가 권리를 확보하여 <본 시리즈>를 계속 집필하여 12편을 추가로 출간하였다.

로버트 러드럼의 <제이슨 본> 3부작 표지
영화에 앞서 제작된 ABC 미니시리즈 <본 아이덴티티>(1988)에는 리처드 체임벌린이 제이슨 본 역을 맡았다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 감독

명문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배우와 작가, 그리고 제작자로서 영화에 뛰어든 맷 데이먼은 <본 시리즈>을 통해 엘리트 배우에서 근육질 액션 배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본 아이덴티티>의 더그 라이만(Doug Liman) 감독에 이어 <본 슈프리머시>부터 폴 그린그래스(Paul Greengrass) 감독과 호흡을 맞추었다. 감독을 보고 출연작을 정한다는 맷 데이먼은 그린그래스 감독과 강한 신뢰감을 형성하여 영화 <그린 존>(2010)에서도 함께 했다. 시리즈의 네 번째 영화 <본 레거시>(2012)에서 그린그래스 감독이 참여하지 않자 맷 데이먼 역시 출연을 고사할 정도였다. 덕분에 <본 레거시>는 제이슨 본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시리즈 영화가 되었다.

<제이슨 본>(2016) 개봉에 맞춰 방한한 맷 데이먼 인터뷰 영상

 

스핀오프 드라마 <트레드스톤>

트레드스톤(Treadstone)은 본 시리즈에서 자주 등장하던 용어다. CIA에서 요인 암살을 위해 극비리에 양성한 비밀 조직을 말하며, 제이슨 본은 여기에 소속된 최정예 멤버였다. 게다가 행동교정 프로그램을 통해 요원의 전투력을 극대화하였는데, 이를 모티브로 USA 네트웍이 스핀오프 드라마 <트레드스톤>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아 로튼토마토 44% 평점에 그친 채 한 시즌으로 막을 내렸다. 여기에 배우 한효주가 북한에 잠입한 트레드스톤 요원으로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으나, 더이상 그의 액션 연기를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드라마 <트레드스톤>(2019) 예고편

드라마 <트레드스톤>이 여섯 번째 본 시리즈 영화와 연결이 될 것이라 예고된 바 있으나, 드라마의 추가 제작 중단으로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유니버설 영화사는 여전히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속편 제작을 위해 스토리 아이디어를 널리 구하고 있다.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은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나 <미션 임파서블>의 에단 헌트를 견제할 수 있는 매력적인 스파이 캐릭터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