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스 마키나>(2014)와 <서던 리치: 소멸의 땅>(Annihilation, 2018)으로 인류의 불안한 미래상에 대해 경고한 알렉스 갈랜드 감독이 실리콘밸리의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8부작 미니시리즈 <Devs>를 내놓았다. ‘Devs’는 통상 IT(정보통신) 기업의 신규 개발(Development) 부서를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Deus’, 즉 신(God)이라는 뜻의 라틴어(‘u’는 ‘v’처럼 표기한다)로 최첨단 과학 기술로,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알렉스 갈랜드 감독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관심 영역을 담아 작가, 제작, 감독의 1인 3역을 맡았고, 올해 3월 5일부터 훌루(Hulu)를 통해 방영하여 로튼토마토 80%의 호평을 받았다.

미니시리즈 <Devs> 예고편

이 드라마는 전문적이고 난해하다. 등장인물 대부분 천재에 가까운 전문가들이고, 이들의 대화는 전문적인 과학기술 용어들이 섞여 있거나, 때로는 선문답처럼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드라마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상을 다시 돌려보거나 인터넷에서 ‘양자역학’, ‘결정론’, ‘다중우주론’ 같은 용어를 검색해봐야 할 지도 모른다. <Devs>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세 가지 포인트에 대해 알아보았다.

 

결정론 vs 자유의지

알렉스 갈랜드 감독은 이 드라마의 주제를 설명할 때 결정론(Determinism)과 자유의지(Free Will)라는 두 가지 용어를 대비하고는 한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일정한 인과관계의 법칙에 의해 결정되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인 셈이다. 제목의 ‘Devs’는 아마야(Amaya)라는 실리콘밸리 테크 회사의 비밀 연구소이며, 창업자 ‘포레스트’는 이곳에 엄청난 빅데이터 처리 능력을 지닌 퀀텀 수퍼컴퓨터와 천재 프로그래머들을 모아 놓고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을 이용해, 인류의 오랜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극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알렉스 갈랜드 감독의 인터뷰 영상(<Fortune>)

 

실리콘밸리의 심미적 미래상

영화 <엑스 마키나>에서 보여준 것처럼, 영상미를 중요시하는 갈랜드 감독은 실리콘밸리의 가까운 미래상을 묘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드라마 대부분의 장면은 실리콘밸리 인근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촬영되었는데, 특히 테크 기업인 아마야(Amaya) 본사 장면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주립대 산타크루즈(UC Santa Cruz) 캠퍼스로 이동해 촬영했다. 숲속 외딴 건물 내 거대한 자기장 위에 떠있는 Devs 연구소의 금빛 찬란한 광경은 모형을 만들거나 CG로 구현했고, 그 속의 퀀텀 컴퓨터 본체와 워크스테이션 또한 환상적인 모습으로 선을 보인다.

UC Santa Cruz 캠퍼스에서 촬영된 Amaya 본사
자기장 위에 떠있는 Devs 연구소
Devs 연구소 내부의 퀀텀 컴퓨터 본체와 워크스테이션

 

미스캐스팅 논란

소노야 미즈노와 닉 오퍼맨

드라마에 대한 전반적인 호평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가디언>은 캐스팅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발레리나 출신으로 영화 <엑스 마키나>에서 배우로 데뷔한 소노야 미즈노(Sonoya Mizuno)가 자신의 연기 경험에 비해 너무 중요한 배역을 맡았다는 것이다. 가장 무겁고 진지한 CEO ‘포레스트’ 역의 닉 오퍼맨(Nick Offerman)의 캐스팅 역시 아쉬웠다는 평이다. 그는 원래 코미디나 리얼리티쇼에 자주 출연했던 경력의 배우다. 두 사람의 아쉬운 연기 때문에 드라마의 진지한 주제의 전달이 미흡했다는 것. 하지만 그 외 Devs 연구소의 천재 직원들을 연기한 앨리슨 필(Alison Pill), 관록의 스티븐 헨더슨(Stephen Henderson), 천재 소년을 연기한 여성 배우 캐일리 스패니(Cailee Spaeny) 모두 훌륭했다는 평가다. ‘제이미’ 역의 진하(Jin Ha)를 통해 한국어 대화를 들을 수 있다.

<Devs>에 수록된 얼터너티브록 밴드 Low의 ‘Congregation’(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