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2019)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관왕을 차지하는 등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관객들을 흥분시킨 작품이다. <기생충>이 받은 수많은 상 중 특히 인상적인 건 미국 배우 조합상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앙상블상’을 받았다는 거다. 그해 최고의 캐스팅이라고 생각되는 작품에 주어지는 상으로, 배우들의 앙상블이 뛰어난 작품에 수여 한다. 미국 배우 조합상 외에도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도 ‘앙상블상’을 따로 수여 할 만큼, 영화에서 앙상블은 좋은 영화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배우들의 호흡이 만들어낸 마법 같은 순간을 목격하기 위해 극장을 찾을 때가 많다. 좋아하는 배우들의 앙상블을 보기 위해 영화를 선택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미국 배우 조합상과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앙상블상을 받은, 앙상블이 눈에 띄는 작품을 살펴보자.

 

<헬프>

1963년의 미국 미시시피 잭슨은 인종차별이 당연한 곳이다. 백인 주인이 흑인 가정부와 화장실을 따로 사용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곳에, 작가 지망생으로 지역 신문사에 취업한 ‘스키터’(엠마 스톤)가 살고 있다. ‘힐리’(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를 비롯한 스키터의 친구들은 모두 흑인 가정부를 고용했지만, 정작 그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흑인 가정부 ‘에이블린’(비올라 데이비스)과 ‘미니’(옥타비아 스펜서)는 차별이 만연한 곳에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며 지내는데, 스키터는 흑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로 마음먹고 에이블린과 미니에게 집필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헬프>(2011)는 캐스린 스토킷이 집필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미국 배우 조합상에서 앙상블상 외에도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까지 차지하는 등, 짧게 등장하는 배우들조차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도 앙상블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는데, 이외에도 옥타비아 스펜서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헬프> 트레일러

<헬프>는 피부색을 떠나서, 인간 대 인간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다. 흑인을 대놓고 차별하던 시대는 불과 몇십 년 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종차별을 비롯한 각종 차별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내게는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게 누군가에게는 차별이 될 수 있고, 그것을 인지할 때 비로소 세상은 바뀌기 시작한다. <헬프>의 러닝타임은 짧지만, 차별을 없애기 위해 들여다보는 일은 사는 내내 계속되어야 한다.

 

<아메리칸 허슬>

‘어빙’(크리스찬 베일)과 ‘시드니’(에이미 아담스)는 최고의 사기꾼 커플이다. 사기를 이어가던 그들 앞에 FBI 요원 ‘리치’(브래들리 쿠퍼)가 나타나고, 리치는 이들을 체포하는 대신 자신의 작전에 활용하기로 한다. 시드니는 어빙에게 도망가자고 하지만, 어빙은 늘 불안 상태인 아내 ‘로잘린’(제니퍼 로렌스)에게 아들을 맡기고 갈 수 없다며 반대한다. 결국 어빙과 시드니는 리치와 함께 작전에 투입되지만, 시장 ‘카마인’(제레미 레너)을 중심으로 정치인과 마피아가 연루되면서 일이 점점 커진다.

배우들의 앙상블을 즐기는 관객에게는 데이빗 O.러셀 감독의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데이빗 O.러셀은 <파이터>(2010),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 <아메리칸 허슬>(2013)까지 세 작품으로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앙상블상을 받을 만큼 탁월한 연기 연출을 보여주는 감독이다.

<아메리칸 허슬> 트레일러

<아메리칸 허슬>은 서로를 속고 속이는 사기극인 동시에, 자기 자신까지 속이던 인물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같은 사건을 겪었음에도 인물들의 선택은 제각각이다. 세상에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함에도 계속해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하는 건,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데이빗 O.러셀의 영화 속 캐릭터가 그렇듯이.

 

<기생충>

‘기우’(최우식), ‘기정’(박소담) 남매는 아버지 ‘기택’(송강호), 어머니 충숙(장혜진)과 함께 전원 백수로 소일거리를 하며 살고 있다. 기우는 친구에게 고액 과외 자리를 소개받고, ‘동익’(이선균)과 ‘연교’(조여정) 부부가 사는 부유한 집에 과외 선생님으로 가게 된다. 학력을 속이고 과외를 시작한 기우는 가족과 함께 좀 더 대담한 계획을 세운다.

<기생충>(2019)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 관객에게 큰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 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그 정점으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까지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한국 영화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것도 처음이고,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진행되는 작품이 작품상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

<기생충> 트레일러

<기생충>은 지극히 한국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많음에도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아마 <기생충>이 품고 있는 계급의 문제가 국적과 상관없이 어디서나 일어나는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 아닐까? <기생충> 속 인물들의 욕망이 충돌할 때, 이들 중 누가 선하고 악하다고 명확하게 구별하기 쉽지 않다. 모두가 선한 채로 공존하는 게 불가능한 계급 안에서,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아이리시맨>

‘프랭크’(로버트 드니로)는 양로원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트럭 운전을 하던 프랭크는 우연히 만난 ‘러셀’(조 페시)과 가까워지며, 러셀의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인다. 러셀을 통해 트럭 운전사 노조의 수장 ‘지미 호파’(알 파치노)를 만난 프랭크는 지미 호파의 큰 신뢰를 얻는다. 프랭크는 러셀과 지미 호파에게는 인정받지만, 딸 ‘페기’(안나 파킨)가 자신을 멀리하는 걸 느낀다.

<아이리시맨>(2019)은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앙상블상을 받은 마틴 스콜세지의 가장 최근 작품이다. 찰스 브랜트 작가의 논픽션 <I Heard You Paint Houses>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넷플릭스가 제작을 맡아서 화제가 됐다. 마틴 스콜세지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드니로, 조 페시, 하비 케이틀이 출연하고, 알 파치노까지 함께한 작품이다.

<아이리시맨> 트레일러

지난 2월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멋진 장면은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을 받고 했던 소감이 아닐까 싶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마틴 스콜세지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영화를 만들었다는, 존경이 담긴 소감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이야기가 얼마나 창의적인지 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 <아이리시맨>을 추천한다. 200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갱스터 영화의 재미와 삶의 흥망성쇠를 모두 느낄 수 있다. 200분은 영화로서는 길지 모르지만, 삶을 담기에는 절대적으로 짧은 시간이다. <아이리시맨>은 영화를 넘어 어느 순간 삶을 보여준다. 이것 또한 앙상블이 만들어낸 기적이 아닐까?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