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앳된 외모로 부드러운 미소와 동시에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예측할 수 없는 다중적인 캐릭터를 드러내는 배우라면 이제 제임스 맥어보이를 떠올려야 한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으로 16살에 스크린에 데뷔해 영국 왕립 아카데미를 거치며 탄탄한 연기력을 쌓아온 그는 자신의 캐릭터를 다채롭게 분화하는 능력을 터득했다. 그런 그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스크린에 새겨왔는지 확인해보자. 그래야만 2016년에 탄생한 ‘다중적’인 제임스 맥어보이의 매력을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1. 다채로운 첫인상

제임스 맥어보이는 다양한 연극, 드라마, 영화를 두루 넘나들며 연기력을 쌓아왔고, 그중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먼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영화계에서는 그다지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단역부터 차근차근 맡아온 그의 작품은 꽤 많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첫인상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제각각 다를 테지만, 그의 또 다른 첫인상을 느끼고 싶다면 아래 작품들을 먼저 훑어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맨틱 가이가 되기 전 맥어보이의 모습은 훨씬 신선하고 다채롭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데뷔작 <이웃방>(1995). 가냘픈 몸매로 복싱을 연습하는 앳된 얼굴의 소년이 16살의 제임스 맥어보이. 진정 미소년이다. 

데뷔 후 다양한 작품에서 꾸준히 조연으로 등장하던 제임스 맥어보이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원작으로 한 영국, 인도 합작 영화 <발리우드 퀸>(2003)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전형적인 발리우드식 춤과 노래가 펼쳐지는 사이, 그는 여주인공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사랑에 빠진다.

이후 자립생활을 시도하는 두 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룬 <인사이드 아임 댄싱>(2004)에서는 근육장애를 가진 '로리' 역을 맡아 전과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장르와 역할을 구분 짓지 않고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는 배우의 면모가 드러난다.

“성실하게 도전하는 배우 제임스 맥어보이” 하면 이 캐릭터를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2005)의 반인반수 '툼 누스'다. 그는 정말 제임스 맥어보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독특한 모습의 반인반수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이 작품 후 그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을 연기할 수 있을지 전혀 몰랐다"고 재치 있게 말하기도 했는데 웬걸, 그는 곧 여심을 정통으로 저격하는 ‘사람의 얼굴’로 돌아와주었다.

 

2. 로맨틱 가이가 되다

염소의 탈을 벗은 제임스 맥어보이는 곧장 로맨틱 가이가 됐다. 영롱한 푸른빛 눈동자를 지닌 선한 얼굴로 사랑하는 여자를 향해 한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던지는 그의 모습을 보자. 각 작품의 배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그의 존재감은 외모뿐 아니라 연기에서도 꽃을 피운다.

가문의 저주로 '돼지코’를 갖고 태어나 외롭게 숨어 지내던 귀족 집안의 딸 ‘페넬로피’(크리스티나 리치)의 저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남자는 ‘맥스’, 바로 제임스 맥어보이다. 영화 <페넬로피>(2006)에서 그는 돼지코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페넬로피를 진심으로 대하는 순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외모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감동적인 주제를 던진 영화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본 이들은 그 교훈이 무색하리만큼 제임스 맥어보이의 잘생긴 얼굴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유명한 작가 제인 오스틴의 실화를 다룬 영화 <비커밍 제인>(2007)에서는 까칠하지만 ‘제인’(앤 해서웨이)를 만나 열정적으로 사랑을 쏟는 귀족 ‘톰’으로 분한 제임스 맥어보이를 볼 수 있다. 시대극에 완벽히 동화되어 섬세한 감정 연기를 소화하며 ‘귀공자’스러운 매력을 발산한다. 명장면으로 꼽히는 무도회 장면에서부터 영화의 마지막까지 이르면 더욱 아련해진 푸른빛 눈동자의 배우, 제임스 맥어보이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제임스 맥어보이 표 애절한 로맨스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어톤먼트>(2007)를 놓치지 말자. 상대배우 '세실리아' 역을 맡은 당대 최고의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와 호흡을 맞춰 더욱 화제가 된 작품. 맥어보이는 누명을 쓰고 전쟁에 참전하게 된 상황에서도 연인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로비’ 역을 충실히 소화해냈다. 그 덕에 미국 골든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제28회 런던비평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미모 못지않은 연기력을 증명했다.

 

3. 전에 없던 남성미를 뽐내다

진한 멜로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원티드>(2008)를 통해 전과는 180도 다른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평소 자기 주장 하나 못 펴는 한심한 회사원 ‘웨슬리’ 역을 맡아 ‘찌질함’을 보여주더니, 이내 숨겨진 능력을 발휘하는 킬러로 변신해 ‘남성미’를 드러낸 것. 특히 갸날픈 몸매의 소유자로 유명한 그는 철저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만든 근육질 몸매를 선보여 팬들을 한번 더 놀라게 했다.

앞선 영화의 이미지 변신에도 여전히 부드러운 인상에 앳된 얼굴로 인식되던 제임스 맥어보이는 SF 액션 시리즈 <엑스맨> 시리즈를 통해 다시 한번 카리스마를 내비쳤다. 엑스맨 시리즈 프리퀄인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에서 ‘프로페서 X’의 젊은 시절인 ‘찰스 자비에’ 역을 맡은 그는 유쾌하면서도 진중한 입체적인 캐릭터를 선보인 것. 이후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와 <엑스맨: 아포칼립스>에 연달아 출연하며 화려한 액션물의 대표작인 <엑스맨> 시리즈에서 빠질 수 없는 캐릭터가 됐다.

새로운 장르에서 자기만의 카리스마를 구축한 끝에 영화 <필스>(2013)에서는 그 매력이 제대로 빛을 발했다. 돈과 쾌락만을 좇는 부패형사지만 능력만큼은 탁월한 '브루스'로 분한 그는 타락한 모습 이면에 숨겨진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여 영화 전체의 몰입을 주도한다. 또 덥수룩한 턱수염과 거친 인상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하며 그간의 미소년 이미지를 시원하게 벗어던졌다. 이 작품으로 제임스 맥어보이는 런던비평가협회상 남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하는 영예를 얻는다.

 

4. 마침내, 진정한 연기의 스펙트럼을 선보이다

<23 아이덴티티>

Split, 2016ㅣ감독 M. 나이트 샤말란ㅣ출연 제임스 맥어보이, 안야 테일러 조이, 헤일리 루 리차드슨, 베티 버클리

2016년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온 제임스 맥어보이의 모습은 심상치 않았다. 극중 배역부터 ‘데니스’, ‘패트리시아’, ‘헤드윅’, ‘비스트’, ‘케빈’, ‘배리’, ‘오웰’, ‘제이드’ 같은 수많은 미스터리한 이름으로 소개되는 그의 정체는 놀랍게도 23가지 인격을 지닌 ‘다중 인격자’다. 어느 날, 예기치 못한 24번째 인격의 등장으로 세 명의 소녀를 납치하게 된 다중 인격자 ‘케빈’은 점점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이 되어가고, 끝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사건이 펼쳐진다. 반전의 대명사라 불리는 영화 <식스 센스>(1999)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연출을 맡아 더욱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딱 달라붙는 빨간색 니트를 입고 삭발한 채 등장한 모습 자체로 이미 식스 센스급 충격을 맛본 이들이라면 이 영화를 직접 확인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알던 그 ‘보이’가 맞는지 아닌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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