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Didi Chinanurakchart'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하 ‘서재페’)은 매년 5월 봄의 한 가운데 열리는 대표 재즈 페스티벌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통 재즈 뮤지션부터 대중적인 팝 스타까지 단독 공연으로는 보기 힘든 뮤지션들도 라인업에 올리며 국내 공연 팬들의 갈증을 달래왔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축제가 가을로 미뤄진 상태다. 페스티벌이 열릴 가을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만큼 서재페에서 만나고픈 뮤지션을 마음껏 상상해본다.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수프얀 스티븐스, 라비나, 제프 파커가 그 주인공이다.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네오 소울 사운드, 인도 문화를 녹여낸 Raveena의 음악

이미지 출처 - 'Courtesy of Kelia Anne MacClusky'

라비나의 음악에선 마치 봄에 핀 꽃처럼 무해한 느낌이 감지된다. 라비나는 잔잔한 악기 연주를 섬세하게 배열한 소리 위에 그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보컬을 더한 네오소울을 들려준다. 라비나는 프레디 머큐리(Freddy Mercury)와 재즈 팝 레전드 아사 푸틸(Asha Puthli) 이후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드문 인도계 미국인 2세 뮤지션이다. 약 50년 전 프레디 머큐리는 인도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지우는 편을 택했지만, 라비나는 자신의 뿌리와 양성애자라는 성 정체성을 음악 일부로 내세우고 있다.

Raveena - 'I Won't Mind (Live At Luiny's)'

이는 라비나가 작곡, 작사는 물론 무대연출, 공연 셋 리스트, 뮤직비디오 감독까지 자처하는 이유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을 것만 같은 '남아시아 문화'와 '퀴어 문화'를 음악, 공연, 뮤직비디오 전반에 녹여낼 수 있는 사람은 라비나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라비나의 무대는 반짝거린다. 의상과 무대 연출에 사용된 인도를 연상케 하는 풍부한 색감도 눈을 사로잡지만 라비나의 노래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황홀하게 만드는 행복한 에너지가 있다. 유튜브에서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던 백예린의 'Square' 라이브 영상의 그과 비슷하다. 비록 봄은 거의 다 지나갔지만 어느 계절이든 라비나의 무대는 향긋한 내음과 함께 완연한 봄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Raveena <NPR Music Tiny Desk Concert> 라이브 영상

 

새로운 재즈 음악의 선봉에 선 30년 내공의 기타리스트 Jeff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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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페는 매년 팝스타부터 정통 재즈를 하는 뮤지션, 그리고 재즈에 한 발을 담근 채 다른 장르의 문법을 취하는 뮤지션들까지 라인업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편이다. 제프 파커는 분류하자면 후자에 속하는 기타리스트다. 1996년부터 시카고 포스트 록 밴드인 Tortoise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브라이언 블레이드(Brian Blade), 마카야 메크레이븐(Makaya McCraven) 같은 재즈 뮤지션과 합을 맞춰온 그가 자신의 리더 작으로 주목을 받은 건 얼마 전의 일이다. 앨범 <The New Breed>(2016)와 올해 초에 내놓은 <Suit for Max Brown>은 현대 재즈 신에 새로운 움직임을 가져온 앨범이란 평을 받는다. 이는 기타 연주자로 안주하는 대신 자신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신선한 방법으로 음악에 접근해온 제프 파커의 오랜 노력 덕분이다.

Jeff Parker x Deantoni Parks x MNDSGN Red Bull Music Academy 라이브 영상

제프 파커는 록과 재즈를 해왔지만, 힙합 장르에 오랜 관심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작곡 실력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을 무렵, 힙합 뮤지션들처럼 비트 샘플을 따고 그 위에 재즈 즉흥 연주를 조합한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Suit for Max Brown> 앨범부터는 제프 파커의 작곡 역량이 일취월장하여 여러 악기를 직접 연주해 멜로디를 만들고 선택적으로 다른 뮤지션들의 연주를 얹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덕분에 제프 파커와 그의 밴드 The New Breed의 공연은 다채롭다. 기타, 베이스, 색소폰, 드럼이 샘플 비트에 맞춰 협연하기도 하고 제프 파커가 만든 멜로디에 맞춰 즉흥 연주를 펼치기도 한다. 런던 남부에서 시작한 장르 융합적인 재즈가 음악계의 하나의 흐름이 된 지금, 탄탄한 실력까지 무장한 제프 파커와 그의 밴드의 공연은 페스티벌이 이런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는 큐레이션이 되어줄 것이다.

 

서정적인 스토리텔러 Sufjan Stevens의 초월적인 라이브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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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엔 영화 <Call Me by Your Name> 사운드트랙으로 인해 대중들에게까지 알려진 인디 뮤지션 수프얀 스티븐스. 잔잔하고 아름다운 분위기의 'Should Have Known Better' 같은 대표곡으로 인해 그를 서정적이고 시적인 음악가로 상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수프얀 스티븐스는 광범위한 장르를 소화하는 음악가, 스토리텔러이자 연주자이기도 하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인디 록, 포크록, 로파이 포크, 익스페리멘탈, 사이키델릭, 바로크 팝, 전자음악, 영화음악 등 여러 장르를 오가며 무한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심지어 음악에 쓰이는 대부분의 악기를 수프얀 스티븐스가 직접 연주하는 편이다.

Sufjan Stevens 'Visions of Gideon'

무대에서 수프얀 스티븐스는 앨범을 재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앨범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면, 공연에 온 관객들과 자신이 겪은 깊은 감정까지 나눌 수 있도록 편곡과 연출에 심혈을 기울인다. 흠잡을 데 없는 보컬과 환각적인 조명연출, 라이브를 위해 새로이 편곡된 셋 리스트는 관객들을 앨범을 초월한 세계로 데려다 놓는다. 그는 기타를 연주하며 조용히 노래하기도, 록스타처럼 벤조를 때려 부수기도, 전자음악 뮤지션처럼 신시사이저를 연주하기도 한다. 언젠가 올림픽공원을 배경으로 수프얀 스티븐스의 미스터리하고도 아름다운 음악 세계를 함께 경험할 날이 온기를 바란다.

 

Writer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신샘이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