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 영화음악감독, 연출가인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 1928~1991)는 살아생전 담배와 술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퇴폐적인 매력으로 수많은 여성의 마음을 훔쳤다. 기존의 샹송에 재즈, 라틴, 로큰롤, 레게, 뉴웨이브 같은 여러 장르를 가미하여 30여 년간 프랑스 팝의 발전을 이끈 선구자이자 제인 버킨(Jane Birkin, 1946~)의 오랜 연인이었고, 오늘날 프랑스와 할리우드를 넘나들며 사랑받는 배우이자 뮤지션 샤를로트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 1971~)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세르쥬 갱스부르와 그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꼭 빼닮은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 두 사람의 음악을 들여다봤다.

 

아버지, 세르쥬 갱스부르

192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세르쥬 갱스부르의 본래 이름은 루시앙 긴스부르(Lucien Ginzburg)다. 그는 화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아버지에게 예술가적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과 재즈 피아노를 섭렵했다. 한때는 미술에 빠져 화가를 꿈꿨지만, 그림 실력에 한계를 느끼고 일찍이 꿈을 포기했다. 1951년, 러시아 귀족의 딸 엘리자베스 레비츠키(Elisabeth Lize Levitsky)와 결혼식을 올리고 1954년부터 영화배우 피아 콜롬보(Pia Colombo)와 샹송 가수 줄리엣 그레코(Juliette Greco)에게 노래를 만들어주며 작곡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1957년, 첫 번째 파경을 맞은 세르쥬는 이듬해 이름을 바꾸고 보리스 비앙(Boris Vian)이라는 예술가를 만나며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다. 그로부터 음악적 영감은 물론이고 특유의 냉소, 까칠함, 유머러스한 독설을 체득한 세르쥬는 그해 음반사 필름스와 음반 계약을 맺고, 보리스 비앙과 그의 오랜 파트너 알랭 고라게(Alain Goraguer)의 도움으로 데뷔 앨범을 발표한다. 

Serge Gainsbourg ‘Le poinçonneur des Lilas’ (1959)

데뷔 앨범 <Du Chant A La Une!(노래를 하고 있다!)>(1958)의 반응은 예상 외로 미미했다. 하지만 수록곡 'Le poinconneur des Lilas(릴라역의 매표원)’은 기차처럼 빠른 리듬에 기존 샹송과는 차별화된 분위기로 큰 반향을 불러왔다. 오늘날 위대한 샹송으로 손꼽히는 이 곡은 지하철 매표원의 무료한 삶을 노래한다. 위 영상은 세미 정장 차림에 짧은 머리를 한 서른 살의 세르쥬 모습이 담긴 라이브 영상이다. 그에게서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반항기 어린 매력이 엿보인다.

Serge Gainsbourg 'La Chanson de Pervert'(1961)

3집 <L'etonnant Serge Gainsbourg(놀랄 만한 세르쥬 갱스부르)>(1961)는 세르쥬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녹아 있는 앨범이다. 위 영상은 시인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evert)에게 바치는 노래 'La chanson de Prevert(프레베르의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영상. 3분간 한 번도 카메라를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라. 카메라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눈빛이나 팔짱을 낀 자세에서 자의식 넘치는 태도가 느껴진다. 앨범에는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Maglia(말리아의 노래)’, 제라드 드 네르발(Gérard de Nerval)의 동명 시를 노래한 'Le Rock de Nerva'l’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한때 세르쥬 갱스부르의 연인이었던 브리지트 바르도(좌)와 제인 버킨(우). 두 사람은 1960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섹스 심볼이자 패션 아이콘이었다

세르쥬는 재즈 스타일의 5집 <Gainsbourg Confidentiel(비밀의 갱스부르)>(1963)을 발표하고 이듬해 아프리카 리듬과 라틴 비트를 녹인 6집 <Gainsbourg Percussions>(1964)를 내며 음악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또한, 솔로 음반 작업과 동시에 많은 여가수에게 곡을 제공했다. 그는 프랑스 걀(France Gall), 달리다(Dalida), 발레리 라그랑쥬(Valerie Lagrange), 미레이유 다르크(Mireille Darc),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coise Hardy) 같은 프랑스 출신 가수는 물론이고, 마리안느 페이스불(Marianne Faithful), 페툴라 클락(Petula Clark) 같은 영어권 가수를 위해 곡을 쓰기도 했다.

1966년, 두 번째 아내와 이혼한 세르쥬는 1968년 가을부터 영화 촬영장에서 만난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BB)와 사랑에 빠졌다. 당시 브리지트 바르도는 유부녀였지만 아무도 두 사람의 사랑을 말리지 못했다. 세르쥬는 브리지트를 위해 ‘Bonnie and Clyde’(1968), ‘Initials BB’(1968) 같은 곡을 만들어 선물했고, 그저 예쁘기만 한 배우를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로 발돋움하게 해줬다. 그러나 그들은 ‘Je t'aime... moi non plus(난 나보다 당신을 더 사랑해)’ 발매를 앞두고 언쟁을 벌이다 결국 헤어진다. 선정적인 노랫말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까 두려워하던 브리지트가 발매 금지를 요청한 것. 얼마 지나지 않아 세르주는 피에르 그랭블라 감독의 영화 <Slogan>(1968) 촬영장에서 만난 영국 배우 제인 버킨(Jane Birkin)과 교제를 시작한다. 두 사람은 열여덟 살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Serge Gainsbourg & Jane Birkin ‘Je t'aime... moi non plus’ (1969)

그해 11월, 두 사람은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L'anamour’, ‘69 Année Erotique’ 같은 곡을 녹음했다. 이 가운데 1969년에 제인 버킨 버전으로 발표한 ‘Je t'aime... moi non plus’는 앞서 이 곡을 거절했던 브리지트 바르도의 우려대로 세간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섹스를 연상시키는 가사와 더불어 중간중간 들어간 제인 버킨의 신음이 그 이유였다. 프랑스는 물론 여러 나라에서 방송금지를 당했고, 교황청으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해 영국 싱글 차트에서 해외 노래 중 최초로 1위를 기록하며 대중에게는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에도 세르쥬는 제인 버킨을 위해 낭만적이고(‘Ex fan des sixties’), 감미로우며(‘Yesterday yes a day’), 때론 몽환적인(‘Jane B.’) 곡을 계속해서 써줬다.

세르쥬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앨범 <Histoire De Melody Nelson(멜로디 넬슨의 이야기)>(1971)은 중년 남성과 성적 매력으로 가득한 소녀 멜로디 넬슨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앨범 표지에 윗옷을 벗은 채 원숭이 인형을 안고 있는 여성이 제인 버킨이다
Serge Gainsbourg ‘Rock Around The Bunker’ (1975)

‘Je t'aime... moi non plus’로 1960년대 후반을 시끄럽게 마무리한 그는 이후 프랑수아즈 아르디에게 몇 곡을 써주고 1975년에 새 앨범<Rock Around The Bunker>을 발표했다. 로큰롤과 블루스를 가미한 앨범은 뮤지컬 <그리스>나 <로키 호러 픽쳐쇼>를 차용하며 독일 나치의 역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의 억압을 피해 도망 다녀야 했던 슬픈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Sarge Gainsbourg 'Aux Armes Et Cetera'(1979)

1979년에 발표한 앨범 <Aux Armes Et Caetera(무기와 나머지 것들)>는 그가 자메이카 킹스턴으로 건너가 베이시스트 로비 셰익스피어(Robbie Shakespeare), 드러머 슬라이 던바(Sly Dunbar), 밥 말리(Bob marley)와 그의 아내 리타(Rita)와 함께 완성한 레게 앨범이다. 앨범은 50만 장이 넘게 팔렸으며 평단의 반응도 좋았다. 수록곡 'Aux armes et caetera'는 차트 정상을 기록하며 몇 달 동안 라디오 주파수를 독점했지만, 프랑스 국가 'La marseillaise'를 레게로 바꿨다는 이유로 커다란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후 그는 오랜 연인이던 제인 버킨과 결별하고 1981년 바하마로 건너가 또 다른 레게 앨범 <Mauvaises Nouvelles Des Etoiles(별들의 나쁜 소식)>(1981)을 발표했다. 이때 생애 마지막 연인 밤부(Bambou)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Charlotte & Serge Gainsbourg 'lemon incest'(1984)

이후에도 줄곧 새로운 음악에 몰두한 세르쥬는 1984년 펑크와 뉴웨이브를 가미한 앨범 <Love On The Beat>를 발표한다. 미국의 뉴 웨이브 음악가들과 함께 작업한 앨범은 새로운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더불어 동성애, 매춘 같은 성적인 소재들을 담고 있어 논란이 됐다. 그중에서도 당시 12살이던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와 함께 부른 'Lemon incest(레몬 근친상간)’은 숱한 파문을 일으켰다. 위 영상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샤를로트 옆에 누워있는 그의 모습은 파격 그 자체다. 이 곡은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1집 1986년 <Charlotte for Ever>(1986)에도 수록되어 있다.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프랑스 대중 문화를 이끈 세르쥬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 사이에서 태어난 것만으로 세간에 무수한 관심을 받으며 성장한 케이스다. 14살에 영화 <사랑할 때와 이별할 때>(1984)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귀여운 반항아>(1985)에서 좌충우돌 주인공을 연기하며 제11회 세자르 영화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이후 <제인 에어>(1996), <21그램>(2003), <수면의 과학>(2005), <멜랑콜리아>(2011), <님포매니악>(2013) 같은 작품으로 순수와 관능을 넘나들며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거듭해왔다. 지금부터는 영화배우뿐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로도 훌륭한 재능을 갖춘 그의 음악에 귀 기울여보자. 그와 닮은 몽롱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다 보면 뮤지션 샤를로트 갱스부르에게 또 한 번 빠질 수밖에 없다. 

Charlotte Gainsbourg ‘Plus doux avec moi’(1986)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열여섯이던 1986년 데뷔 앨범 <Charlotte for Ever>을 발표했다. 8번 트랙 'Zéro Pointé Vers l'Infini'를 제외한 나머지 곡은 모두 아버지 세르쥬 갱스부르가 작곡했다. 같은 해에는 아버지가 연출한 영화 <Charlotte for Ever>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했던 샤를로트. 아버지와 함께 부른 곡 ‘Plus doux avec moi’에 담긴 샤를로트의 앳된 목소리는 어머니 제인 버킨의 음색과 많이 닮았다.

Charlotte Gainsbourg ‘5:55’ (2005)

2005년 발표한 앨범 <5:55>의 동명 타이틀곡 ‘5:55’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잠들지 못하고 부유하는 심정을 노래한다. 어둡고 몽환적인 사운드에 샤를로트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더없이 잘 어울린다. 앨범은 프랑스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샹송 팬뿐만 아니라 일반 음악 마니아에게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Charlotte Gainsbourg ‘Heaven Can Wait’ (2010)

3집 <IRM>(2010)은 그의 필모그래피만큼 독특한 미학을 표출하는 앨범이다. 자기공명영상(MRI)의 프랑스어 표현인 ‘IRM’은 샤를로트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2007년에 수상스키를 타다가 가벼운 사고를 당해 여러 차례 MRI 검사를 했다. 이때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가 구상음악(Musique concrete)과 같은 미적 감성, 사이키델릭의 환각적 효과를 전해준 것. 이를 바탕으로 만든 노래들은 반복과 단순함에서 오는 매력을 갖추고 있다. ‘Heaven can wait’는 여기에 샤를로뜨만의 감수성이 더해졌다. 영상은 2010년, 시애틀 라디오 방송 KEXP에 출연한 그의 라이브다.

Charlotte Gainsbourg ‘Terrible Angels’ (2011)

이듬해 발표한 <Stage Whisper>는 전작 <IRM>에 수록하지 못한 미발표곡과 라이브 곡을 담았다. 평소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차림으로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라 불리는 그이지만 ‘Terrible Angels’ 뮤직비디오에서는 까만 가죽 재킷에 스모키 화장, 강렬한 안무와 액션 장면으로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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