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무렵의 레니 트리스타노(피아노) 사단(왼쪽에서 세 번째부터 리 코니츠, 원 마쉬, 빌리 바우어)

세계의 수도 뉴욕에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가운데, 또 한 사람의 재즈 레전드의 부고 기사가 나왔다. 나이 열여덟이던 1945년에 첫 직업 연주를 시작하여 92세이던 지난해 생애 마지막 앨범 <Old Songs New>(2019)를 발표한 리 코니츠(Lee Konitz). 그의 음악 활동은 75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어져 내려왔다. 오랜 시간 뉴욕에 거주하며 재즈 클럽에서 젊은 뮤지션들과 함께 계속 연주했는데, 한국계 색소포니스트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도 그 중 한 명이었다.

Lee Konitz & Grace Kelly at Newport Jazz Festival(2014)

리 코니츠는 재즈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안 되어 피아니스트 레니 트리스타노를 따르게 되면서, 원 마쉬(Warne Marsh), 빌리 바우어(Billy Bauer)와 함께 쿨 재즈의 한 문파를 이루게 된다. 클라우드 손힐, 제리 멀리건, 스탄 켄튼 등 백인 밴드 리더들과 일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1950년대 후반부터는 자신의 이름으로 음반을 내기 시작했다. 그를 대표하는 곡은 레니 트리스타노, 원 마쉬와 함께 하던 시절인 1949년에 작곡한 ‘Subconscious-Lee’(1949년 작곡)인데, 이때 녹음된 곡을 모은 앨범 <Subconscious-Lee>(1956)에 수록되었다.

Lee Konitz & Warne Marsh ‘Subconscious-Lee’(TV Show <The Subject Is Jazz>, 1958)

그는 스탄 켄튼 밴드에 있으면서 찰리 파커나 디지 길레스피 같은 비밥 스타들과 친분을 쌓았다. 같은 악기를 연주하던 찰리 파커는 당시 다른 알토이스트들과는 달리 자신의 스타일과 다르게 비브라토가 전혀 없이 연주한다는 점을 높이 사며 그와 가까이 지냈다. 하루는 찰리 파커가 자신의 꿈에 코니츠의 아버지가 나타나 언젠가는 자신의 알토 색소폰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천연덕스럽게 받아쳤다. “그건 불가능해요. 우리 아버지는 당신을 모르거든요.” 그는 언제나 유머와 농담으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TV 프로그램 <Highlights in Jazz>의 “Bird Lives” 공연 중(1973)

1973년 TV의 <Bird Lives (Tribute to Charlie Parker)>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자신이 찰리 파커와 다른 스타일로 연주한 것은 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농담을 섞으며 청중들을 즐겁게 했다. 이어서 자신은 한 번도 파커와 듀엣 연주를 한 적은 없다며 파커의 연주 테이프를 틀어 놓고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그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Birth of Cool Jazz>(1949~1950 녹음)에 참여하였을 때는, 다른 알토이스트들이 백인 뮤지션을 채용하였다며 역차별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마일스 데이비스가 이를 일축한 적도 있다.

Lee Konitz & Bill Evans ‘How Deep Is the Ocean’와 ‘Beautiful Love’(덴마크, 1965)

쾌활한 성품을 지닌 리 코니츠는 흑백을 가리지 않고 동료 뮤지션들과 잘 어울렸고, 청중들에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뮤지션 생활을 즐겼다. 앨범 <The Lee Konitz Duets>(1967)은 조 헨더슨, 짐 홀 등 다양한 뮤지션들과 듀엣으로 녹음하여, 재즈 듀엣 음반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음반이다. 최근에는 빌 프리셀(Bill Frisell), 제프 덴슨(Jeff Denson), 댄 테퍼(Dan Tepfer) 등 젊은 뮤지션들과 협연하며 뉴욕의 재즈 레전드로 남았다. 75년의 현역 생활 중 그의 이름으로 출반한 음반은 160여 장에 이른다. 10여 년 전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고, 코로나바이러스에 인한 합병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4월 15일 92년의 생을 마감했다.

지난해 11월 92번째 생일에 자신의 아파트에서 연주한 리 코니츠(피아니스트 댄 테퍼)
리 코니츠의 생애 마지막 앨범이 된 <Old Songs New>(2019). 클래식 재즈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음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