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에 국내 개봉한 <다크 워터스>(2019)는 토드 헤인즈 감독의 최신작이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에는 특별한 서정이 있다. ‘서정’은 사전적으로 ‘정서를 듬뿍 담고 있음’을 뜻한다. ‘서정’이라는 말이 낯설어지는 세상에서 토드 헤인즈는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는 서정을 영화에 담는 중이다. <벨벳 골드마인>(1998)부터 <캐롤>(2015)까지 토드 헤인즈의 팬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의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서정 때문일 것이다. 관객들은 그의 영화를 보며 묻게 된다. 지금 이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특별한 서정을 만나볼 수 있는 토드 헤인즈의 영화를 살펴보자. 

<캐롤> 촬영장에서 감독 토드 헤인즈(왼쪽)와 배우 케이트 블란쳇(오른쪽), 이미지 출처 – 링크

 

<벨벳 골드마인>

글램 록이 유행 중인 70년대 영국, 글램 록스타 중에서도 특히 '브라이언 슬레이드'(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인기는 압도적이다.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월드투어 콘서트 중에 암살되고, 모든 게 자작극이었다고 밝혀지며 팬들은 실망한다. 10년 뒤, 글램 록의 열렬한 팬이었던 '아서'(크리스찬 베일)는 기자 신분으로 10년 전 브라이언 슬레이드에 대한 특집 기사를 맡게 된다. 아서는 취재 과정에서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전 부인 '맨디'(토니 콜렛), 동료 뮤지션 '커트 와일드'(이완 맥그리거)를 만나며, 브라이언 슬레이드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간다.

<벨벳 골드마인>(1998)은 칸 영화제에서 예술 공헌상을 받은 작품으로, 글램 록이 풍미하던 70년대 영국을 토드 헤인즈만의 감성으로 그려낸 영화다. 영화 속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데이빗 보위, 커트 와일드는 이기팝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데, 제목 ‘벨벳 골드마인’은 대표적인 글램 록 뮤지션 데이빗 보위의 곡 제목에서 따왔다.

<벨벳 골드마인> 트레일러

평범하게 기자로 지내던 아서는, 글램 록 뮤지션의 진한 화장과 화려한 의상을 따라 하며 그들의 공연을 쫓아다니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다. 글램 록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믿던 청년은 이제 글램 록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바뀌는 걸 목격하기 전에 내가 먼저 바뀐 현실 속에서,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다고 여겼던 과거를 마주하는 건 반가움과 씁쓸함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파 프롬 헤븐>

'케이시'(줄리안 무어)는 큰 회사의 높은 자리에서 일하는 남편 '프랭크'(데니스 퀘이드), 사랑스러운 두 아이와 함께 지내고 있다. 주변의 부러움을 사며 지내던 케이시는 야근이 잦아진 남편을 위해 사무실에 방문했다가, 남편이 다른 남자와 입을 맞추는 장면을 목격한다. 케이시는 남편이 괜찮아질 거라고 믿는 와중에 새로운 흑인 정원사 '레이몬드'(데니스 헤이스버트)와 가까워지고, 주변에서는 케이시가 흑인과 가깝게 지내는 걸 의아하게 바라본다.

<파 프롬 헤븐>(2002)은 보수적인 미국 사회의 다양한 계급 문제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주연을 맡은 줄리안 무어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촬영감독 에드워드 래크먼은 <파 프롬 헤븐>에서 토드 헤인즈와 처음 호흡을 맞춘 이후로 지금까지 그의 작품에서 촬영을 맡고 있다. <파 프롬 헤븐>은 <십계>(1956), <황야의 7인>(1960), <대탈주>(1963) 등의 음악을 맡은 음악감독 엘머 번스테인이 2004년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파 프롬 헤븐> 트레일러

<파 프롬 헤븐>에는 다양한 계급 문제가 등장한다. 흑인과 백인은 가깝게 지낼 수 없고, 상류층과 하류층은 함께 할 수 없고,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적이어야 하고, 같은 성별끼리는 사랑할 수 없다. 이러한 계급 문제는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시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은 천국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것일까.

 

<아임 낫 데어>

저항 음악으로 사랑받는 포크 음악계의 스타 '잭', 목사가 되어 가스펠을 부르는 '존'(크리스천 베일 1인 2역), 뮤지션을 꿈꾸며 떠도는 흑인 소년 '우디'(마커스 칼 프랭클린), 잭을 연기하는 영화배우 '로비'(히스 레저), 음악적 변신으로 인해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시달리는 록스타 '쥬드'(케이트 블란쳇), 시인 '아서'(벤 위쇼), 은둔해서 지내는 '빌리'(리처드 기어). 서로 다른 7명이 밥 딜런의 삶을 보여준다.

<아임 낫 데어>(2007)는 <벨벳 골드마인>(1998)에서 글램 록을 다룬 토드 헤인즈가 포크록 가수 밥 딜런에 대해 다룬 작품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여섯 명의 배우가 밥 딜런을 연기했는데, 특히 케이트 블란쳇은 밥 딜런과 흡사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아임 낫 데어> 트레일러

평범한 전기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아임 낫 데어>는 완전 다른 방식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밥 딜런은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은 물론이고, 뮤지션으로서 노벨 문학상을 받는 등 한 가지 특징으로 요약하는 게 불가한 인물이다.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의 여러 가지 면모를 다양한 캐릭터로 보여주고, 어디까지가 밥 딜런에 대한 진실이고 허구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른다. 어떤 인물이든 매체를 통해 보이는 모습과 실제가 일치할 수 없고, 대중의 평가는 갈릴 수밖에 없다. <아임 낫 데어>가 보여준 방식은 단숨에 설명하는 게 불가능한 예술가에 대한 존중으로 느껴진다.

 

<캐롤>

1950년대 뉴욕,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는 '테레즈'(루니 마라)는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케이트 블란쳇)에게 끌림을 느낀다. 둘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함께하는 시간도 늘어간다. 테레즈와 캐롤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지만, 남편 '하지'(카일 챈들러)와 이혼 소송 중인 캐롤의 상황을 비롯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캐롤>(2015)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소금의 값(The Price of Salt)>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동성애가 질병으로 분류되던 50년대에 이 책을 필명으로 출간했다. 테레즈를 연기한 루니 마라가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으로, 투니 마라와 케이트 블란쳇의 호흡이 영화에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냈다.

<캐롤> 트레일러

토드 헤인즈는 명확하게 설명하는 감독이 아니다.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보여주는 감독이고, <캐롤>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빠지고 아파하는 순간은 누군가에게 말로 전할 때처럼 명료하지 않다. 사랑이 짙어질 때 짓던 표정을 기록하지 못한 이들에게 <캐롤>은 그 순간을 목격 가능하게 만든 작품이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