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 마살리스(가운데)와 아들들(Marsalis Family Archives)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에 상륙하면서 재즈계 원로들의 부고 기사가 간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재즈의 본고장 뉴올리언스의 정통성을 지켜온 재즈 원로 엘리스 마살리스(Ellis Marsalis Jr.)의 사망 소식은 수많은 헌정 기사를 동반하고 있다. 불과 3년 전에 지난 58년의 세월을 함께 해로한 부인 돌로레스(Dolores)를 먼저 보낸 후, 홀로 남았던 그는 지난 4월 1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을 이기지 못하고 85년의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1955년 대학 졸업 후 재즈 클럽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20여 장의 음반을 남겼고, 그 후에는 뉴올리언스 지역의 재즈 교육에 헌신한 인물이었다.

<NEA Jazz Masters: Tribute to the Marsalis Family> 마살리스 가족 소개 영상

해군에서 제대한 후 그는 아버지의 모텔 <Marsalis Mansion>에서 일하면서, 밤에는 뉴올리언스 시내 프렌치 쿼터의 재즈 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러던 중 1970년대 NOCCA(New Orleans Center of Creative Arts)가 설립되어 재즈 프로그램이 신설되자 그곳의 디렉터로 선임되었고, 석사 학위를 딴 후에는 뉴올리언스 대학과 자비에 대학(Xavier University)의 교수로, 이어서 그의 이름을 딴 EMCM(Ellis Marsalis Center for Music)에서 40여 년간 재즈를 가르쳤다. 재즈계에서 명성을 얻은 그의 제자로는 테렌스 블랜차드와 해리 코닉 주니어가 있다.

그래미상과 에미상을 받은 스타 가수 해리 코닉 주니어(Harry Connick Jr.)는 스승을 추모하며 타임지에 자신의 회고담을 전했다. 그는 고교 1학년 시절의 어느 저녁 시간에 은사였던 엘리스 마살리스에게 대뜸 전화하여 자신이 새로 창안한 화음에 관해 설명한 적이 있었다. 잠자코 이를 듣던 그는 “좋아. 나는 다시 저녁을 먹겠네.”라며 전화를 끊었다. 1년이 지난 후 두 사람이 당시 얘기를 나누던 중 선생님은 그 화음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것이었다며, 제자의 새로운 발견을 독려하기 위해 당시에는 일부러 밝히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항상 자신 만의 음악을 찾을 것을 독려하며 “자아 발견(Self-Discovery)”을 강조했다고 한다.

뉴올리언스 전통 방식의 돌로레스 마살리스의 장례식 행렬

재즈 교육에 전념하면서 재즈계에서 차츰 잊히던 그의 이름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1980년대 중반. 장성한 그의 아들들이 재즈계의 샛별로 떠오르면서 마살리스 가문의 가장으로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네 명이 저명한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다. 첫째인 색소포니스트 브랜포드는 40여 장의 음반을 낸 밴드 리더로, 트럼펫을 전공한 둘째 윈튼은 클래식과 재즈 양쪽에서 명성을 떨치며 JALC(Jazz at Lincoln Center)의 아트 디렉터로, 넷째 아들 델피요는 트롬본 주자로, 막내 제이슨은 드럼머로 활동한다. 2010년 교직에서 완전히 은퇴한 아버지는 네 명의 아들과 함께 마살리스 패밀리(The Marsalis Family)를 결성하여 음반을 내고 공동으로 NEA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살리스 패밀리 ‘Swinging at the Heaven’(2011)

그는 지난해 12월까지 뉴올리언스 시내의 유명 재즈클럽 스넉 하버(Snug Harbor)에서 매주 금요일 연주를 했다. 1980년 초반부터 이 일을 시작하여 거의 40여 년 동안 고정으로 연주한 셈이니 뉴올리언스의 재즈를 상징하는 명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뉴올리언스의 시장을 위시하여 많은 주민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뉴올리언스 Snug Harbor에서 연주하는 엘리스 마살리스(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