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팬이라면 반가울 만한 소식이 베를린으로부터 날아왔다. <도망친 여자>(2019)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홍상수 감독이 은곰상인 감독상을 받았다.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칸, 베니스와 함께 전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린다.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이들을 보면, 매번 도전을 통해 영화의 최전선을 걷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2000년 이후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영화의 최전선에 선 감독들의 작품을 살펴보자.

 

<어바웃 엘리>의 아쉬가르 파라디

평소에 가깝게 지내오던 이들이 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간다. '세피데'(골쉬프테 파라하니)는 '아마드'(샤하브 호세이니)에게 소개해주려고 자기 딸의 선생님인 '엘리'(타라네 앨리두스티)를 여행에 데려온다.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던 중, 엘리가 실종되면서 이들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작품은 이란 감독 모함마드 라술로프의 <데어 이즈 노 이블>(2020)이다.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이란 정부로부터 출국 금지를 당해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이전에도 아쉬가르 파라디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자파르 파나히의 <택시>(2015)에 황금곰상을 주며 이란 영화에 지지를 보내왔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발표 이전에 <어바웃 엘리>(2009)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어바웃 엘리> 트레일러

아쉬가르 파라디는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인물들 사이에 생기는 균열을 보여주는 감독이다. <어바웃 엘리>는 엘리가 사라지는 걸 계기로 인물들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충돌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당사자인 엘리는 사라진 가운데, 엘리에 대한 평도 계속해서 바뀐다. 엘리에 대해 말하는 이들 중에 엘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은 몇이나 있을까. 엘리에 대한 정보가 없는 관객이나 엘리와 함께 했던 이들이나, 결국은 엘리에 대해 아는 건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확신을 해본다.

 

<바바라>의 크리스티안 펫졸드

동독에 사는 '바바라'(니나 호스)는 시골의 작은 소아과에서 일하는 중이다. 바바라는 동독을 탈출하길 원하고, 정부는 바바라를 감시하고 있다. 동료 의사 '안드레'(로날드 제르필드)는 바바라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바바라는 어린 환자 '스텔라'(야스나 프리치 바우어)와 진심으로 교감한다. 바바라는 탈출을 위한 준비를 하지만, 정부의 감시를 비롯해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는 <운디네>(2020)의 폴라 비어다. <운디네>의 연출자는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으로, <바바라>(2012)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 외에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독일 감독으로는 <수면병>(2011)의 율리히 쿨러와 <나는 집에 있었지만>(2019)의 앙겔라 샤넬렉이 있다.

<바바라> 트레일러

억압이 심한 시대 속에서는 선한 의도조차도 마음대로 행하기 힘들다. 생존을 위해 모두 각박해지는 가운데, 바바라의 선택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바바라를 연기한 배우 니나 호스는 <볼프스부르크>(2003), <열망>(2008), <피닉스>(2014) 등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의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배우로, <옐라>(2007)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니나 호스의 표정은 어두운 시대에 희생과 배려로 누군가에게 희망을 준 이들의 모습을 대표한다.

 

<보이후드>의 리처드 링클레이터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는 누나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 엄마 '올리비아'(패트리샤 아퀘트)와 함께 살고 있다. 부모님은 이혼을 했기에, 아빠 '메이슨'(에단 호크)과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시간을 보낸다. 올리비아는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번 이사를 한다. 메이슨과 사만다는 자주 이사를 하는 게 불만이지만 계속해서 적응하며 성장한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비포 선라이즈>(1995)와 <보이후드>(2014)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두 번의 감독상을 받았다. <비포 선라이즈>는 후에 <비포 선셋>(2004), <비포 미드나잇>(2013)까지 두 편의 후속작을 선보이며 가장 성공적인 로맨스 3부작이 됐다.

<보이후드> 트레일러

‘비포’ 시리즈는 <비포 선라이즈>부터 <비포 미드나잇>까지 18년이 걸렸고, <보이후드>는 실제로 6살 소년이 대학생이 되기까지 12년 동안 촬영한 작품이다. 영화 속 배우들의 얼굴에서 보이는 시간은 분장이 아니라 실제 삶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결국 그의 영화를 통해 관객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 삶을 저렇게 찍는다면 무슨 장면을 넣어야 할까. 영화를 통해 나의 시간을 돌아본다.

 

<희망의 건너편>의 아키 카우리스마키

시리아에서 온 '칼레드'(세르완 하지)는 석탄 화물선에 잠입해서 핀란드 헬싱키에 밀입국한다. 칼레드는 도착과 함께 망명 신청을 한다. 칼레드는 시리아에서 탈출한 뒤에 헤어진 동생과 만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동생의 소식을 듣기는 쉽지 않다. 한편 식당을 인수하고 새 출발을 시작하는 '비크스트롬'(사카리 쿠오스마넨)은 우연히 만난 칼레드를 고용한다.

<희망의 건너편>(2017)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과거가 없는 남자>(2002)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는 등 전 세계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아왔다. 배우들이 무표정하게 등장하는 블랙코미디 영화라면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떠오를 만큼, 자신의 스타일이 뚜렷한 감독이다.

<희망의 건너편> 트레일러

영화 제목처럼 '희망의 건너편'은 어디일까. 칼레드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희망의 건너편에 무엇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희망을 품지 않는다면 희망의 건너편으로 건너갈 수조차 없지 않을까. 연민 대신 냉정한 무표정으로 진행되는 <희망의 건너편>은 미소 한번 짓지 않고 따뜻함을 안겨준다.

 

Writer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용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