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스 데이비스와 그의 아내 시실리 타이슨(1982)

영화 <마일스>(Miles Ahead, 2015)를 통해 많이 알려졌듯이, 마일스 데이비스는 1975년부터 5년 동안 모든 음악 활동을 접고 은둔했다. 그 기간에 그를 괴롭히던 마약 중독이나 자동차 사고의 후유증 등 건강 문제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자 조금씩 언론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 연인이던 배우 시실리 타이슨(Cicely L. Tyson)과 관계가 회복되어 결혼에 골인하면서 다시 왕성한 음악 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1982년 아내가 아프리카에 간 사이 다시 술을 마셨고, 뇌졸중이 찾아와 오른손이 마비되었다. 아내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재활한 끝에 다시 연주를 재개할 수 있었다. 그가 마비된 손가락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이때였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솔로가 수록된 Toto의 <Fahrenheit>(1986) ‘Don’t Stop Me Now’

그의 마지막 10년은 칩거 생활 이전과 매우 달랐다. 그는 의사의 권고를 받아들여 마약과 술을 완전히 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에 집중했다. 재즈 평론가들이나 재즈 팬들의 비난에 개의치 않고, 팝과 퓨전 음악에 다가갔다. 음반사들 역시 그의 음악적 변화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컬럼비아 레코드는 1985년에 녹음된 <Aura>를 1989년에야 뒤늦게 출반했고, 새롭게 계약한 워너 레코드는 마일스가 녹음한 수십 곡의 팝송 출반을 거부하고 앨범 <You’re Under Arrest>(1985)에 ‘Human Nature’와 ‘Time After Time’ 단 두 곡만 삽입했다. 두 곡은 각각 팝 스타인 마이클 잭슨과 신디 로퍼의 히트곡이다.

마일스의 재기를 도왔던 R&B 가수 Chaka Khan은 이웃에 살던 절친이었다. 그와 함께 공연한 ‘Human Nature’(몽트뢰, 1989)

마일스는 음악적 일탈에 대해 “지금의 재즈 스탠더드들 역시 1930년대에는 브로드웨이의 인기 팝송이었으며, 자신은 재즈 레퍼토리를 업데이트하는 중”이라는 논리로 항변했으나, 정통 재즈 팬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통 재즈의 기수이자 떠오르는 스타 윈튼 마살리스와 1986년 뱅쿠버 재즈 페스티벌에서 부딪친 것은 이즈음이었다. 마일스는 그를 가리켜 “괜찮은 젊은이지만, 혼란스러운 것 같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프린스, 주케로, 차카 칸 등 팝 영역의 스타들과 함께 계속 가까이 지냈다. 말년의 그의 앨범 <Amandla>(1989)는 펑크와 일렉트로닉의 영향을 받았고, 유작 앨범 <Doo-Wop>(1992)는 힙합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사망 2년 후 앨범 <Doo-Wop>은 그래미 R&B 부문의 최우수 연주앨범상(1993)을 수상하며 비재즈 부문의 수상자가 되었다.

마일스의 ‘Time After Time’ 실황(뮌헨, 1988)

그를 약물 중독에서 구하고 잠시나마 정신적인 안정을 준 아내와 마침내 파경을 맞게 되고, 그의 건강은 지속적으로 악화했다. 1988년 스페인 공연 중에는 졸도하여 모든 순회공연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의 병이 에이즈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으나, 매니저는 이를 극구 부인하며 단순한 폐렴이라고 밝혔다. 급기야 1991년 9월 로스앤젤레스의 병원에 정기 검진을 위해 입원했다가, 의사가 심장마비 예방을 위해 튜브 삽입술을 권하자, 극도로 흥분하며 갑자기 뇌출혈을 일으켰다. 혼수상태에 빠진 그는 수일 후 65년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하였다.

유작 앨범 <Doo-Wop>(1992)에 수록한 ‘The Doo-Bop Song’

마일스 데이비스는 1940년대부터 재즈 신을 주도한 스타였지만, 마지막 10년 동안 음악적인 외도를 즐겼다. 팝, 록이나 댄스 음악, 일렉트로닉 음악에도 손을 댔고, 마지막에는 힙합 음악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간에 그래미를 6회 수상하며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두었다. 하지만 정통 재즈 팬들의 비난은 어쩔 수 없이 그가 감수해야 할 몫이었다.